열 네살이었을 겁니다. 삼십년이 더 지난 그 일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집니다.중학교에 진학하여 가정을 배우던 시간이었는데 그 가정 선생님 지금도 이름이 생생히 기억나네요. 김정자 선생님.
선생님은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었을까! 작은키와 짙은 화장, 강한 억양이 우리들에게 좋은 인상은 아니었죠. 그런데 어느날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교실에 들어오셨는데... 얼굴이 장난이 아니었죠.
양 볼에 거뭇한 지도같은게 그려져 있었거든요. 그게 기미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하거나 혹은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면 생긴다는 정보를 줏어 들었죠.
그런데 그 해 가을쯤 내 얼굴에도 그런 자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나로서도 무지 큰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기에(새 어머니와의 갈등)당연히 기미가 생길만 하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지만 그 나이의 소녀에겐 절망과도 같았죠.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말입니다.
이이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별다르게 감 출 방법도 없고 소녀의 한숨은 나날이 깊어갔습니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기미를 없애는 방법을 보게 되었습니다. 굵은 대파 꽃을 따서 짖찧어 그자리에 바르는 거였습니다. 나는 파 꽃을 찾으러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습니다. 통통한 줄기에 달린 하얀 파 꽃을 찾는 일은 그 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죠.
어느 집 텃밭에서 나는 드디어 파 꽃을 발견하게 되었고 가슴졸이며 몇 송이의 파 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요. 마치 봉숭아를 으깨듯 파 꽃을 으깨어 얼굴에 바르고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매워 계속 눈물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난 기미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까짓 것쯤은 참아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기에 참을 수 있었던거죠.
그 즈음엔 파 꽃만 눈에 뜨이더군요. 몇 번더 그렇게
으 깬 파 꽃을 바르고 얼굴을 수세미로 문지르고 그러다 결국 진짜 문제가 생겨 병원으로 가야했던 아릿한 추억이 생각납니다.
너무 일찍 성숙했었나요?
그래도 기미에 대한 나의 추억으로 인해 가끔 오동통한 파 꽃봉오리를 만질때마다 그 생각을 떠 올리곤 합니다. 그러면서 혼자 피식 웃곤 하지요.
파 꽃봉오리 한 번 만져 보세요. 정말 사랑스럽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