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몇 명과 섹스 해봤어?"라는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섹스라고 하면 '남성 성기를 여성의 질에 삽입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 정의는 순결에 대한 가부장적 집착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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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섹스를 하기 전에 물어봐도 되는 것들이 있다. 상대가 성병 검사를 받았는지, 섹스하고 싶은지, 어떤 섹스를 좋아하는지 등등.
그러나. ‘이제까지 몇 명과 섹스해 보았는지’는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
상대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넘겨짚기가 잔뜩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넘겨짚기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섹스를 하는 남성들은 정력이 넘친다, 섹스를 하는 여성들은 헤프다’라는 이중잣대가 존재한다. 이 논리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상대의 성 경험을 숫자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상대의 성적 가치를 판단하려는 것이다.
상대의 ‘숫자’는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문제가 있는 질문에는 문제가 있는 답이 따르게 마련이다. 너무 적다, 즉 경험이 부족하고 섹스를 잘 못 한다고 여겨지거나. 너무 많다, 즉 헤프다, ‘사귈 상대가 아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대체 무엇에 비교해서 너무 많거나 적다고 판단한단 말인가? 성적 파트너 숫자에 있어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섹스 및 친밀함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이 정상인지를 물을 게 아니라, 누가 ‘정상’(normal)을 결정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애초에 순결(virginity)이란 게 뭘까?
‘섹스한 사람이 몇 명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려면 일단 섹스가 무엇인지 두 사람이 동의해야 한다.
일단 우리 사회는 ‘섹스’를 상당히 좁고 이성애 규범적인 방식으로 정의한다. 섹스라 하면 ‘보통 남성이 페니스를 여성의 질에 삽입하는 섹스’를 가리킨다. 이 정의는 순결에 대한 가부장적 집착에 빠져있다.
순결은 여성에게 ‘재산이자 아이 낳는 존재’ 이상의 가치를 거의 부여하지 않는 이성애와 종교적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다.
순결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성애 섹스가 아닌 섹스나 삽입이 아닌 섹스는 ‘진짜’ 섹스로 ‘쳐주지 않는다’는 걸 암시한다.
이 논리에 의해 삽입 섹스를 하지 않은 사람은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LGBTQ 섹슈얼리티의 넓은 부분이 무시된다. 삽입 섹스와 오럴 섹스는 둘 다 지극히 친밀한 성행위인데, 삽입 섹스는 섹스한 것으로 인정되고 오럴 섹스는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게 말이 되나?
예를 들어 삽입만 빼고 모든 걸 여러 번 다 해본 사람은 한번만 삽입 섹스를 해본 사람에 비해 경험이 더 많다. ‘몇 명과 해보았느냐’는 질문은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할 뿐 아니라 실제로 묻고 싶은 질문, 즉 ‘너는 경험이 얼마나 있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지도 못한다.
섹스는 숫자 놀이가 아니다
한 형태의 섹스에만 집중하면 이 좁은 범위 밖의 관계나 성적 경험의 중요성을 깎아내리게 된다. 내가 가진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있었던 관계의 일부는 전통적인 의미의 섹스를 하지 않은 관계였다. 그리고 최고의 성적 경험과 발견 중 일부는 나 혼자 한 것이었다.
섹스를 숫자 놀이로 바꾸면 자동적으로 시합이 되어 버리고, 승리자와 패배자가 나온다.
‘숫자’는 상대가 어떤 섹스 파트너인지,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숫자를 물어보면 당신은 중요한 질문들을 놓치게 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잘 자각하고 있는지, 소통과 존중을 아는 파트너인지, 당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걸 편안하게 느끼는지 등등의 질문 말이다. 섹슈얼리티는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인데, 왜 숫자를 세고 있나?
~발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고,발기를 하면 죽기 전에 서둘러 삽입을 하고 달려서 사정을 해야 한다는,
무식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일반(?)의 성 의식은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어디선가,여자들은 임포텐스에 걸린 남성을 더 좋아한다는 투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발기는 하지 않으나 사랑은 하는 그들의 섹스 행태는 삽입 위주가 아니라 파트너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행위 위주이기 때문에,
분위기 조성,애무,오랄 섹스 등의 성적 행위에 충실하고,
그런 남성의 태도가,단단하고 크기만 한 흉기로 쑤셔 대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여성의 입장을 쓴 글이었다.
나도 최근 만난 여친에게서 들은 칭찬 중 하나가,
'자기는 섹스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나 만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좋아!'라는 것인데,
그런 데이트를 즐기다 보니 미처 섹스의 즐거움을 모르는 채 단순한 호기심을 느꼈을 뿐이던 그녀들도 결국은 섹스를 즐기게 된다.
섹스 중독증 환자였던 나보다 더 즐기게 되는 것도 보게 된다.
나의 최근의 섹스 행태는 '삽입은 ,사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이다.
거의 99퍼센트는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즐기고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데 집중한다.
삽입 섹스를 하더라도 사정이 목적이 아니라 그녀에게 생소한 느낌을 선사하고,
그로 인해 그녀가 오르가즘을 느끼게 만드는 게 주 목적이다.
물론 그렇게 사정 컨트롤을 하면서도 그 촉감이나 ,그로 인한 그녀의 리액션을 즐기긴 하지만 사정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그러다 사정을 못 하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별로 아쉽지 않다.
최대한 컨트롤을 하다가 막바지다 싶으면 후련하게 사정을 한다.
완전한 발기가 되지 않았더라도 5분 안에 사정을 하며 ,
폭발하는 것 같은 기쁨을 누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그녀에게 선사한다.
단단하게 발기한 상태에서 서둘러 사정을 하는 기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
그러면 뭐 하나?그녀는 말똥말똥한 채 "끝난 거야?"하는데...
그것보다는 애무와 커닐링거스,사정 컨트롤을 하면서 그녀를 기쁘게 만들고 끊어질 듯 말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 좋고,
그렇게 그녀를 만족 시킨 후 폭발감은 좀 덜할 수 있지만,부드럽게 마무리를 하는 기분이 훨씬 좋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빼지 않고 그대로 꼬옥 끌어안은 채 사정 후의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립서비스,마사지 등으로 후희를 선사한다.
그럼 그녀들은 대부분 여자로서 인정을 받고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며 행복해 한다.
먼저 하자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요즘은 파트너들이 나보다 더 열광한다,몰두한다,만나고 싶어 한다.
만나지 못하더라도 문자나 전화 등을 통해 마음으로 사랑을 전하고 싶어 한다.
나보다 훨씬 어린 -심지어는 스물네 살이 어린 친구도-그녀들이 나를 보고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깨물고 싶어 한다.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그녀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준다.
째진다!^*^
주변에 이제 막 딱지를 뗀 남자 친구가 있어 좋겠다며 추켜세워주면 ,
이 얼빵한 친구는 하고 또 해도 또 하고 싶어서 미치겠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며 자랑(?)을 한다.ㅋㅋㅋ
얘야~그러는 사이 너의 와이프가 한 번이나 좋아하더냐?
슬슬 피하진 않고?ㅋㅋㅋ
한 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좀 하고 살자!
더군다나 당신을 만나기 전의 횟수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제부터 당신이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마 횟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거든,매번 몇 번의 오르가즘을 이끄는 지,그녀가 얼마나 좋다고 하는 지에나 신경 쓰라.
여자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오르가즘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는데 백 번 천 번을 삽입하고 싸 봐라!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녀는 정나미가 떨어져서,몸이야 그러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멀리멀리 떠나게 될 것이다.
이혼을 하게 되든지 ,섹스리스로 가든지 ,당신 몰래 외도를 하면서 즐기는 파트너의 뒷바라지나 하게 될 것이다.
즐섹!
* 허프포스트 Canada의 글을 번역, 편집했습니다. Sara Kloepfer가 Bellesa(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축복하고, 힘을 주기 위한 플랫폼)에 최초 게재한 글입니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c28c63e4b0817069670b95?utm_hp_ref=kr-s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