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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토리스 프로젝트 (2)


BY 미개인 2020-06-16

2. 사라진 클리토리스

The Huffington Post  |  작성자 

 

1947년, 찰스 마요 고스 박사는 클리토리스를 삭제했다.

물론 인체에서 삭제한 것은 아니고, 인체 해부도에서 삭제한 것이다.

고스는 중요한 고전인 ‘그레이 해부학’ 25판의 저명한 편집자였다.

해부학에 관한 모든 것에 있어 사실상 가장 권위있는 책으로 국제적으로 칭송 받는 ‘그레이 해부학’은

1858년에 런던에서 헨리 그레이 박사(저자)와 헨리 반다이크 카터(일러스트레이터)에 의해 처음 출판된 이래,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책으로 여겨져 왔다.

고스가 편집자로 지명된 것은 명예직이었지만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고스는 이미 이 분야의 선도자로 자리를 굳혔고, 학술지에 왕성하게 글을 발표했고, 예일과 컬럼비아 의대의 교수로 있었다.

자신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이 분야에서의 위치에도 불구하고, 고스는 새로 맡은 편집자라는 역할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스는 오래 전부터 헨리 그레이의 책을 존경해 왔다.

‘그레이 해부학’이 ‘킹 제임스 성서’와 ‘두 도시 이야기’와 함께

“영어 산문의 가장 좋은 예” 세 가지에 들어간다고 의대생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고스는 그 이전 판들의 편집자들과 마찬가지로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의학적 발견과 예전의 부정확함을 수정할 때만 손을 댔다.

하지만 그는 의학계에서 거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이상한 수정을 했다. 그는 클리토리스를 삭제했다.


30판 편집을 맡은 카마인 D. 클레멘테 박사는 80대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그레이 해부학’의 미국 출판사인 리&페비거와 일할 때,

각 판의 편집자들은 편집에 대한 전권을 가졌다고 밝혔다.

즉 25판에서 클리토리스를 빼기로 한 것은 고스 혼자서 내린 결정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클레멘테는 클리토리스를 뺀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지만, 고스가 애초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가지고 추측해 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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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도의 클리토리스, 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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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도에서 사라진 클리토리스

하지만 고스가 편집을 했던 시기를 생각해 보면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고스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주장이 학계를 지배하던 시절에 교육을 받았고 초기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 중에는 클리토리스를 통한 오르가슴은 미숙하고 유치한 것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도 있었다.

“클리토리스를 통한 성생활을 배제하는 것은 여성성의 발달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숙하고 유치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글에서 밝힌 의견이다.

박식한 고스가 프로이트의 ‘배제’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이 사건 자체가 그냥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클리토리스가 사라진 것이 프로이트의 인기 있는 가르침 때문이었는지, 고스에게 목적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어떤 직원이 실수를 했기 때문인지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유야 어떻든, 클리토리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두꺼운 의학 책에서 사라진 것은 이게 처음은 결코 아니었다.

고스 박사의 이야기는 악랄한 해부학자의 이야기도, 심지어 나쁜 의도를 지닌 편집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문화 구성이 과학처럼 사실 그대로를 담을 것 같은 것조차 쉽게 왜곡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사례다


클리토리스의 역사


130~200년

3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 Credit: Universal History Archive / Getty Images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가 추측하다

로마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였을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는 클리토리스를 인정하며

“그렇다면 남성의 몸에 있는 기관은 여성의 몸에도 다 있는 것이며, 둘 사이의 다른 점은 하나뿐이다.

즉 여성의 경우 그 기관이 몸 안에 있고, 남성의 경우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의 몸이 궁극적으로 이상적이라고 간주했고,

여성은 불완전한 몸을 지닌 남성일 뿐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점을 생각하면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그 후의 그 어떤 문화보다도 클리토리스를 편하게 여겼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들은 클리토리스가 페니스가 되다 만 것이라고 보았다.

갈레노스가 클리토리스에 대해 쓴 글에서 사용한 표현을 보면 그런 시각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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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년

3말레우스 말레피카 표지.Credit: Wellcome Images

마녀의 망치가 클리토리스를 ‘악마의 젖꼭지’라고 부르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럼, 즉 마녀의 망치는 마녀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한 논문으로 출간되었다.

이 논문은 2세기 이상 마녀를 잡고 정체를 밝히며, 고문하고 죽이는 행위에 대한 확고한 가이드 역할을 했다.

이 논문에서는 흥분해서 피가 몰린 클리토리스를 ‘악마의 젖꼭지’라고 부르며,

이것은 악마나 사악한 마법과 관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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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5년

샤를 에스티엔느가 처음으로 클리토리스를 절개하다

프랑스 저자이자 해부학자인 샤를 에스티엔느는 대규모 해부 절개를 했다.

그는 ‘인체 장기의 절개’라는 책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전부 기록했다.

클리토리스에 대한 에스티엔느의 연구 결과는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하고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그는 클리토리스를 여성의 ‘수치스러운 장기’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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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년

3이탈리아 파두아대학에 걸려 있는 레알도 콜롬보의 초상. Credit: University of Padua

레알도 콜롬보가 클리토리스를 ‘발견’하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클리토리스’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는 이것이 “여성의 즐거움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것을 밝히고 ‘비너스의 사랑’이나 ‘비너스의 다정함’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부위가 페니스와 상당히 비슷한 식으로 기능한다는 것도 관찰하고, “만지면 조금 단단해 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기록했다.

그는 내부와 외부 클리토리스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는 발기 조직을 암시한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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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3제인 샤프의 책 '산파일의 달인'

조산사가 해부학에 통달하다

영국에서 조산사로 일하던 제인 샤프는 이렇게 기록했다.

“클리토리스는 남자 성기처럼 일어났다가 내려가며, 여성들을 욕정을 느끼게 하고 성교에서 기쁨을 얻게 한다.”

그녀는 글 말미에서 클리토리스를 “여성의 페니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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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년

31672년 레이니어 드 흐라프의 여성 생식기 그림. Credit: Wellcome Images

레이니어 드 흐라프가 클리토리스를 찾아내고,
이것을 놓친 동료들과 선배들을 꾸짖다

“우리는 마치 이것이 자연의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 부위를 언급하지 않은 일부 해부학자들이 있다는 것에 지극히 놀랐다.”

네덜란드 의사이자 해부학자 레이니어 드 흐라프의 글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절개해 본 모든 시체에서, 우리는 눈과 손으로 이 부위를 아주 잘 감지할 수 있었다.”

놀란 드 흐라프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중 가장 종합적인 클리토리스 해부학적 구조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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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3게오르게 루드비히 코벨트의 클리토리스 그림. Credit: BIU Health Paris

힘 없는 해부학자가 파울을 선언하다

독일 해부학자 게오르게 루드비히 코벨트가 클리토리스를 연구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각 부위를 비교해 보았을 때 여성의 신체 구조는 남성의 신체와 전반적으로 유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코벨트는 내부와 외부 클리토리스의 세밀한 구조도를 그린 최초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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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3지그문트 프로이드. Credit: Universal History Archive / Getty Images

프로이트가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을 비난하기 시작하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오스트리아 신경과 전문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성 심리 발달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소개한다.

미 성숙한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이 있고 성숙한 질 오르가슴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클리토리스는 사춘기 이전에 오르가슴을 느끼는 부위이지만,

사춘기부터는 건강한 여성이라면 대신 질 오르가슴을 느끼기 시작해야 한다고 썼다.

“여성성으로 변화함에 따라 클리토리스는 예민함 전체 혹은 일부, 그리고 동시에 중요성도 질에게 넘겨야 한다.”

이 잘못된 결론이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졌고,

틀렸음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이론이 서방 세계 전체에서 성과 성생활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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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3정신분석가이자 작가였던 프랑스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가까운 관계였다.Credit: Universal History Archive / Getty Images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 자(Ruler)를 사용하다

프랑스의 마리 보나파르트 공주는 정신 분석가이자 나폴레옹 조카의 손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삽입을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해결책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클리토리스가 질에서 너무 멀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세우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직접 연구를 진행했다.

의사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여성 243명의 클리토리스와 질 사이의 거리를 쟀다.

그리고 A ,E. 나르자니라는 필명으로 ‘브뤼셀-메디컬’이라는 의학 저널에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그녀의 연구는 클리토리스가 질에서 먼 여성들은 질 삽입을 통해 오르가슴에 도달하기가 더 어려운 반면,

클리토리스가 가까운 여성들은 훨씬 쉽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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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31901년 '그레이 해부학'에 나온 여성 해부학 그림. Credit: Clitoral Conventions and Transgressions: Graphic Representations in Anatomy Texts c. 1900-1991 / Gray’s Anatomy

‘그레이 해부학’이 클리토리스를 버리다

1858년에 런던에서 초판이 출판된 이래 ‘그레이 해부학’은 인체 해부학의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받아왔지만,

1948년에 나온 25판은 클리토리스를 슬쩍 삭제했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

24판에서 클리토리스를 심도있고 정확하게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부 일러스트레이션에 등장하기는 했다.

25판에는 클리토리스는 온 데 간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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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3알프레드 킨제이 박사. Credit: Arthur Siegel / LIFE Images / Getty Images

‘킨제이 보고서’가 베일을 벗기다

1948년 ‘인간 남성의 성적 행동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에 이어,

미국 생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는 이와 짝을 이루는 책 ‘인간 여성의 성적 행동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 킨제이는 아주 과감하고 그 전까지 제대로 논의된 바 없었던 주장을 했다.

“성관계는 여성이 쾌감을 느끼는 가장 좋은 수단이 아니다…… 클리토리스가 여성 쾌감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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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31970년 5월 윌리엄 마스터스와 버지니아 존슨. Credit: Bettman / Corbis

마스터스와 존슨이 클리토리스를 언급하다

킨제이는 수천 명의 여성들이 직접 알려 온 성적 경험담에 기반해 결론을 내렸다.

섹스 연구자 윌리엄 마스터스와 버지니아 존슨이

이 결론을 가지고 연구실에서 클리토리스 오르가슴과 질 오르가슴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들은 연구실에서 사람들이 섹스하는 것을 직접 관찰해서 유명해졌다.

그들은 발표한 연구 결과를 통해 성적 반응이라는 면에서 질 오르가슴은 클리토리스 오르가슴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클리토리스가 최고라는 킨제이의 이론을 크게 지지하는 결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성숙한 오르가슴과 미성숙한 오르가슴이라는 신화를 끝내는 결정적인 방법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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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헬렌 오코넬 박사의 '클리토리스 해부학' 그림. the Clitoris” report

헬렌 오코넬이 클리토리스의 진정한 구조를 밝히다

오스트레일리아 비뇨기과 의사 헬렌 오코넬이

이제까지의 클리토리스 해부학에 대한 거의 모든 믿음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오코넬은 해부를 통해 외부와 내부 클리토리스의 전체 모양을 파악해 냈다.

크기가 무척 클 뿐 아니라 신경 말단이 많이 모여 있다. 클리토리스에는 페니스보다 신경 말단이 두세 배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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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피에르 폴데가 최초로 클리토리스를 3D 초음파 촬영하다

끔찍한 여성 성기 절단 피해자를 치료해 보고자,

선구적인 외과의 피에르 폴데 박사는 오디예 뷔송 박사와 함께 최초로 클리토리스를 3D 초음파 촬영했다.

폴데는 최초의 성공적인 여성 성기 절단 치유 수술도 개발했다.

음문에서 반흔 조직을 제거하고 내부 클리토리스를 조금 노출시켜, 여러 환자에게 성감을 되찾게 해주었다.

* * *

2014년

질 오르가슴은 근거가 없다는 새 연구가 나오다


이탈리아 연구팀 푸포+푸포가 ‘임상해부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논란을 일으켰다.

질 오르가슴과 G스팟은 둘 다 근거 없는 믿음에 불과하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내가 그리도 존경하던 프로이트가 클리토리스를 경시하고 유치한 것으로 치부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당시 여성의 성을 무시하던 사회 분위기 상 어쩔 수 없었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반발일까?
최근엔 잘난 체를 하는 상당수의 여성들이 질 오르가즘은 없다,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이 있을 뿐이고 질 오르가즘은 환상이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런 여성과 직접 논란을 벌인 적도 있는데,
자기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은 다 거짓이라고 말하는 걸 보곤 아연실색했었다.
난 클리토리스로도,질로도,항문으로도,
심지어는 대화 만으로 뇌를 자극함으로써도 오르가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임을 주장하고 싶은 1인이다.
실제로 다 겪어 보기도 했기에 당당히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근원엔 클리토리스란 성감의 단추가 있음을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식사는 애피타이저가 없어도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
섹스는 전희가 없이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중요한 클리토리스를 소중히 여기고 다뤄주길...

모든 이론을 다 배제한 상태에서 내가 느낀 클리토리스는 남성의 페니스와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남성의 회음부의 페니스 말단의 성감이 좋은 것처럼 ,
여성의 클리토리스의 말단 부근이 바로 G-spot일 것이란 주장을 최근 한 친구에게 설한 바가 있는데...
남성의 회음부가 아주 능수능란한 스킬로의 애무와 오랄이 가해질 때
사정을 할 때와 비슷하게 짜릿해지는 것을 경험해 본 본인으로선 정설이기라도 한듯 주장하는 것이다.
G-spot 역시 충분한 흥분과 능숙한 자극이 있지 않으면 좀체로 존재를 드러내지도 않고 ,
성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 비슷하다.
스무 살 무렵에 오랄 만으로도 회음부를 애무해주며 사정하는 기분 이상의 클라이막스를 경험시켜 준 친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