샥띠의 러브탄트라 명상 | 샥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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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그 기쁨에 이끌려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성의 은총 속에 있을 때
“누구라도 이 기쁨을 경험하게 할 거야!”라며 아이처럼 순진한 소명감으로 들떴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축복과도 같았던 그 경험 이후, 나는 수많은 실수와 모험과 시도를 감행하면서 나를 찾아온 사람들과의 작업을 통해 우리 성생활의 현 주소를 실감하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어 왔다. 이 여정은 ‘섹스의 황홀’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를 어떻게 하면 실제적인 경험으로 안내할지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고맙게도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성을 통해 자신의 몸을 새롭게 만났고,
자신의 몸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냈으며,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성적 희열을 경험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하던 초반에 나의 주 관심사는 사람들의 몸을 빨리 깨워서
내가 경험한 아름다운 세계를 그들도 체험하게 해주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순진하고 기특한 나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고, 좌절감과 무력감 속에서 매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성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면 몸의 즐거움을 찾는 여정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러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행위를 통해서 황홀한 쾌감을 느끼거나 오르가슴의 극한 경험으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온전한 섹스를 경험하려면 성행위 이전에 준비되어야 할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선행되지 않으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이 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
또 나는 주로 자위를 통해 성적 희열을 경험한 경우여서 파트너와 조율하는 것의 중요성이 상당 부분 간과 되어 왔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완전한 섹스를 즐기려면,
섹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을 씻어내고,섹스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하며,사랑하는 마음을 전혀 훼손하지 않으면서 섹스에 담아내기까지의 과정에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섹스 이전에 위의 사항들을 마음으로 준비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아무리 황홀한 경험을 원한다 해도 첫 발을 내딛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성욕의 차이가 심한 커플, 사랑하지만 섹스에서는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커플, 성욕은 있지만 어떻게 조율할지 몰라 실패를 거듭하는 커플 등 수많은 사례들을 접하면서, 진정으로 섹스를 즐기려면 성행위에 집중된 테크닉을 익히는 것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감정적 유대 관계를 욕망에 담아내고, 섬세하고도 민감하게 파트너를 읽어내는 정서적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섹스’는 단순히 ‘육체적 성행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남녀가 관계를 맺으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갈등을 내포한다. 성(性)과는 무관해 보이는 갈등의 원인을 찾아들어가 보면 그 밑바닥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성적 갈등이 숨어 있기 일쑤고, 성적 갈등의 밑바닥에는 전혀 성적이지 않은 문제들이 성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또한 성적인 갈등이 사실은 재정 문제로 남편과 겪은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남편이 나에게 오는 이유가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에게 성적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어서라는 것을 알기까지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성적인 것과 비(非) 성적인 것의 관련성을 알고 그것을 적용하면서, 섹스를 배우고 몸의 즐거움을 깨우는 과정이
연인이나 부부의 본질적인 갈등 해결 뿐만 아니라 개인 삶의 전체적인 문제를 헤아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간 나는 개인적 삶의 여정을 걸어오면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만나고 해결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의도치 않게 경험된 성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탄트라(Tantra) 명상의 길에 발을 내딛었고, 그와 함께 나의 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탄트라 명상은 성적 희열을 삶의 모든 영역으로 가져와, 혼란스러운 부분들을 정돈시키고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거해주며 삶 가운데에서 외롭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섹스의 즐거움에만 초점을 맞춘 협소하고 편협한 태도와 구분해, 몸, 마음, 영혼을 통합하고 건강한 삶으로 회복시켜주는 섹스 통합 치유 프로그램의 필요를 느꼈고, ‘힐링 섹스(Healing Sex)’ 프로그램으로 정교하게 다듬어냈다.
힐링 섹스는 자신의 본질에 대한 의문으로 삶이 허하고 고달픈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에너지를 일깨워 삶을 기쁘게 환영하도록 도와주고, 수많은 갈등으로 점철된 관계를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로 조율시키는 내적 지혜와 힘을 길러주는 치유의 명상이다.
우리 사회는 담론 현장에서 섹스를 직접적으로 다루기를 주저하고 망설인다.
섹스의 참 맛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적 자아를 만나지 못했기에 여자가 여자로서, 남자가 남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애정 가득한 신의 배려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 축복과 사랑을 몸으로 경험하고 깨달은 사람은, 내가 볼 수 없는 내 등을 누가 덮쳐 해칠까 염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자신의 뒤를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긴다.
섹스라는 나눔과 교감의 장에서 성적 행위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완전한 인간으로 설 수 없다. 성적 행위 후 늘 허전하고 부족할 것이다. 더 허탈해지거나 더 단절감을 느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비난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섹스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아야 할 때다. 그 진실을 찾는 길에 이 책이 작으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 탄트라(Tantra)란 무엇인가?
탄트라는 힌두교의 수행 전통 중 하나로, 세속을 떠나 수행에만 전념하는 ‘은자의 수행’ 전통과 달리
도시에서 세속의 삶을 살아가면서 깨달음의 길을 걷는 ‘도시의 수행’이다.
은자의 수행이 삶의 현장을 떠나 삶의 이치와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개인적 수행이라면, 도시의 수행은 욕망의 물결이 넘실대는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온갖 욕망과 감정과 생각들을 거부하지 않고,
세속의 삶에서 인간의 본질과 삶의 진리, 우주의 이치를 찾아가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인간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거부하지 않고 경험으로 열어 놓음으로써, 인간의 속성을 헤아리고 인간의 삶을 통찰하며 우주와 맞닿아 있는 근본 자리를 찾아간다.
또한 탄트라는 인체 안에 숨겨져 있는 자연의 생명 에너지인 '성력'을 일깨워, 기쁨과 환희를 통해 갈등과 충돌 속에 있는 내적 자아를 조화롭게 균형 잡아주고, 자아를 확장하는 환희의 명상법이다.
~탄트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이론 서적 등을 검색해 메모하게 됐으며, 위 글의 필자인 샥띠님의 책과 함께 구해 볼 생각이다.
다소 이해가 가지 않거나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경험하지 못 하고 사는 사람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가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일단은 배우는 자의 자세로 접해 볼 생각인 것이다.
한 때 코어가즘 등을 주장하며 직접 체험을 하고 있다는 사람을 탐구해 본 적도 있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비공개로 블로그를 닫아 버리는 바람에 실패를 한 경험도 있는데...
글쎄~내가 클리토리스를 소유하지 못한 입장이니,그들의 교만이나 까탈스러움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단지 5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도 도전을 하고 싶게 만들어 주는 뭇 여성들에게 경외심을 품을 뿐이다.
파도파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성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고,심오한 부분까지를 맛 보고 싶은 욕심을 어이할꼬?
위의 글에서 성의 경이로움을 체험 한 게 10여 년 전이라 했는데,
그리고 주로 자위를 통해 성의 희열을 느껴 왔다는데
그 희열과 경이로움의 차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너무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고,
꼭 알아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아 패스!
남자인 내게도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일단 탄트라의 실체부터 파악하는 데 매진해야 할 것 같다.
내가 30여 년 전부터 이끌고 목격해 온 것들은,
그리고 나눠서 체험시켜 온 것들은 뭔지???
또한 소음순이 평균보다 컸다는 것 외엔 별다른 특징이 없었음에도,어린 나이에 삽입하자 마자 구름위를 노닐며 깔깔대며 황홀경에 빠져든 친구나 ,
전희도 거의 없이 삽입을 했음에도,바로 질 안에서 거친 요동이 일어나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 하는 친구의 경우 등,
성기의 구조나 성감에 따른 차이점 등에 대한 고찰은 없이 내가 체험한 그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취지도 가상하긴 하나 너무 무리하지 않은지...
그리고 10여 년 간 추구한 바의 얼마를 이뤄왔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이,
당신이 느끼고 있는 것은 저질이니 그것들에 대한 생각을 모두 버리고 내가 이끄는대로 따라 와서 보다 고품질의 세계에 입문하라 충고하는 것도
왠지 무시를 당하는 것도 같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으면서 거부 반응이 드는 것도 사실이니...
일단은 나 나름대로의 탄트라 소화를 추구해 보고 안 되면 제자로 들어가서 한 번 배워 보지 뭐~^*^
사실 지금 그러고도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것도 있고...
반가운 것은 각종 강연을 이끌면서 그 내용을 공개한다는 것인데,
이전의 그 교만한 여인처럼 뭐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그리고 그것을 독차지 하려는 듯한 교만함이 보이지 않아서 고맙다.
'나누고는 싶지만 결코 공짜로는 안 알려줄 테다!'하는 상술도 사실 선생으로서의 자세는 아닌 것 같고...^^;;
'남 주려고 배운다'는 어떤 철학자의 변이 아니더라도,
나의 경우는 너무 비천한 것이어서인지 모르겠으나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고,
그로 인해 깨어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즐거워서 30여 년 간 나눠왔는데,그런 나로선 반갑고 고맙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한 때 섹스지상주의자임을 자처하며 ,
섹스를 배려의 행위라 명명하고,
그래서 섹스가 즐거우면 나머지 일상도 즐거워질 수 있다고까지 강조를 했지만,
섹스 하나만 잘 한다는 소릴 듣고 이혼을 당하고 보니
그런 주장을 할 근거가 사라져 지금은 거의 언급도 안 하고 있는데,
위의 글에선 비슷한 논조의 주장을 하고 있다니~!
나의 섹스지상주의는 설익어서일까?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는 마당이지만,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에 대해선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통 생각하는 유치한 섹스의 정의는,자지를 보지에 삽입하고 얼마간 씩씩대다가 사정을 하면 끝나는 것일 텐데,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고,
육체적 관계 이외의 훨씬 큰 비중의 배려의 몫을 주장하는 것엔 전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늘 강조해 오는 것처럼 남녀 모두에게 가장 큰 성감대는 바로 뇌이다.
그리고 남성은 육체적 관계에 탐닉하지만 여성은 분위기에 약하다는 이야길 하는데,
그것 역시 수박 겉 핥기 식의 편협한 관찰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은 사랑 없이는 섹스를 할 수 없지만,남성은 사랑이 없이도 섹스를 한다는 것도 일부의 경우임을 간과하고 있는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걸 지적하고...
오르가즘 없는,아니 오르가즘까진 아니어도 여성의 만족이 없는 섹스가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만족스러워 하는 여성을 보며 에너지를 얻지 않을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또한 오르가즘을 세포의 부활 현상이라 알려준 구성애 선생의 이론인지 전언인지를 믿지 않을 자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런 면에서 위 글의 '힐링 섹스'개념엔 전적으로 공감을 표하며 ,
'완전한 인간으로 설'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동참하여 추구하고 체험하고 나누자고 강력히 외치고 싶다.이 연사...^*^
자~우리 모두 손에 손 잡고 배우고 익혀서 나누고 기여하며 살아가자!
휴먼토피아(^*^)를 완성시키는 그 날까지...
--미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