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 해외
인터뷰
나의 진정한 성적 자아를 발견하기
: 왜 나는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였나?
[https://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18/jan/20/why-i-chose-polyamory-anita-cassidy]
‘Discovering my true sexual self’: why I embraced polyamory
내 남편과 나는 12년의 결혼 생활을 하며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남편은 나 하나로 만족했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을 원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 남편 마크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3년 전, 나는 남편에게
남은 40년 동안 오직 당신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못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내 삶은 내가 믿지 않는 “모노가미”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12년을 함께하며 각각 아홉 살, 일곱 살인
두 자녀를 낳았다. 나는 엄마로써 최선을 다했다.
천 기저귀를 사용했고, 직접 요리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 감정(emotional)과 성적(sexual)으로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마크는 의외로 우리의 결혼 생활을
다른 파트너에게 오픈 하는 것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편이 진짜 원하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상담을 시작했다.
“섹스”는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약 폴리아모리가 어렵다 생각했으면,
생각한 대로 어렵게 느낄 것이다.
우리가 결혼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함께 읽고, 대화하고, 탐구하는 데 보내지 않았다면
다자관계를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자관계를 받아들이고
내 또다른 자아의 다른 면을 발견해나갔다.
많은 사이트를 가입했는데, 내 자신에 대해서나,
선호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물어 봤다.
어떤 질문들은 ‘네/아니오’ 로 답할 수 있지만,
어떤 질문들은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질문들은 이전에도 답해본 적 없는 질문들이었고, 내 자신에게도 질문 해 본 적 없는 질문들이었다.
나는 전통적인 관계는 밀실 같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당신이 누군가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그 소중하고 멋진 사람을
모든 소통 가능한 문과 창문을 닫음으로써
필사적으로 혼자 모든 것을 간직하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밀실에는 산소가 부족해서 공기는 상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 접촉이든 갈망하게 되며, 그로 인해
충동적으로 성적인 실수를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왜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불꽃 같은 감정에 여지를 두지 않는가?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이 나와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거라 여겼다. 나의 가족은 이런 상황을 지지했지만, 엄마는 여전히 양면적인 태도를 취했다.
엄마와 나는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이야기했고,
결국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내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다만 마지막엔 나 혼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셨지만, 결국 그것 또한 나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 자신과 그의 욕망에 대해 깊게 파고든 결과,
파격적인 성향/관계(미국은어:kink scene) 로 기울었다가 폴리아모리를 선택 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생각에 대한 유혹이 있어서 마크와 함께 알아봤고, 우리는 폴리아모리를 못할 뻔 했다.
마크가 그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을 고려하면,
나는 폴리아모리를 할 수 있을 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강압적으로 보여질 수 있겠으나, 그렇게 나는 완전히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패티쉬 클럽에 제일 처음 갔을 때, 나는 내 마음의 집과 나의 잃어버린 가족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나는 안드레아와 2년 정도 사귀었다.
우리는 커플로 지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나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은 안드레아가 유일하다.
나는 안드레아를 사랑하고 그와 만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지만, 그와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는 떨어져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에게 추파를 던지고 전화번호도 물어 보는데, 나는 가끔 질투가 나기도 한다.
안드레아가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반면, 마크와 나는 모노가미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너무 많이 변했다.
여전히 가정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함께 양육했다.
우리는 함께 지낸다.
우리는 같이 상담도 받고, 크리스마스도 함께 보낸다.
여전히 함께 읽고 배운다.
우리는 가능한 것은 유지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의사소통을 더 잘하는 방법을 배웠고,
내 생각엔 아이들이 혜택을 많이 본 것 같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함께할 사람이 한 명이면 괜찮지만 엄마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행복함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매우 내 의견을 존중하여 주었고,
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 어느 순간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이해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다.
하지만 모노가미도 애매모호하긴 마찬가지다.
당신은 당신만의 폴리아모리를 하면 된다.
다만 나는 두세 명, 혹은 그 이상의 파트너를 원하는지 확실치 않다. 내가 최근에 만난 두 명과는 연인이 되기를 원하지만, 나는 서두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끊임없이 섹스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나는 감정과 정신이 공유되기를 바라므로 시간을 들여 그 관계를 구축한다.
반면 모노가미는
다른 사람이 득점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골을 넣어야 하는 경쟁 같이 느껴졌다. 믿을 수 없도록 자유롭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을 그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친구만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가?
단 한 명과의 플라토닉 관계에서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왜 단 한 연인에게서만 얻으려 하나?
나의 다자연애는 문화적 규범을 거슬러 헤엄치는 큰 도전이었다. 현재의 파트너의 지지 여부와는 관계 없이 감정적으로 깊은 관습의 뿌리를 지우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세 사람과 성적인 관계와 정신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안드레아와 나는 미래를 바라지만 기대는 없다. 우리는 광범위한 커뮤니티의 일부이고, 발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80세가 되어서도 단 한 사람과 벤치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그 공동체에서의 일부이고 싶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은색 탄환(마귀를 물리치는)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 하나의 신, 단 한 명의 파트너. 하지만 삶이란 복수형이다.
개인이 생각하는 관념은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생각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집단 무의식이다.
남편 마크의 시선
나는 최근 몇 년 간 아니타가 완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아니타가 “모노가미가
아닌 것” 을 알아 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을 땐, 그렇게 놀랍지만은 않았다.
우리의 관계에서 아니타가 원하는 것을 나 혼자서 주지 못한다는 것을 듣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녀가 행복해 지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게 비록 그녀가 다른 종류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일지라도, 나는 아내를 지지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나는 “윤리적인 수준의 모노가미가 아닌 것” 과 관련된 주제들에 관해 많은 것을 읽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옳은 일 같지 않았다. 나는 모노가미로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지속되도록 준비를 해왔었으나, 아니타는 또 다른 파트너를 만났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나는 전적으로 아니타를 지지한다. 나는 아니타가 폴리아모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직함과 의사 소통에 관하여 나와 공유한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점들은 모노가미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사실이고, 이 경험이 내 미래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기를 원한다.
내가 언제나 여전히 원하는 것은 한 명의 파트너와 장기적으로 함께하기를 바라고, 삶에서 겪은 풍부한 경험들을 함께 공유하고, 삶의 여정이나 어쩔 수 없는 변화라 할지라도 함께 즐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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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와 마크는 (좋게) 헤어져 1년 넘게 별거 연애 중이고,
아이들을 공동 양육 중이다.
//폴리아모리도 또 하나의 다른 사랑 관계입니다. 모노가미의 상위에 있는 가치는 아니죠. 어떻게 조금이나마 폴리아모리와 다자연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나요?
~최근 '졸혼' 개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음은,문명과의 일체의 접촉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묘하게 연결이 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
아님 말랑께롱!^~^
--미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