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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꽃뱀이지?(경향신문)


BY 미개인 2024-08-08



[경향신문] 꽃뱀이지?

+경향신문 은하선의 섹스올로지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페미니스트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더니 너도나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화려한 연말이다. 

그렇다면 작년에 비해 뭔가 나아졌거나 달라진 점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남성들은 성범죄 가해자의 95%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며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남성이 가해자인 성범죄 사건이 이슈가 될 때마다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여 

‘가만히 있는 나를 감히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했다’고 결론 내리는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잠재적 성범죄자’는 성범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아직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영원히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여성도 성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당했다며 분노하는 여성은 없다. 

그렇다면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남성인 자신이 의심을 받거나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많은 성범죄자 남성들 때문이지 

피해자 때문이 아님에도 왜 억울함을 엉뚱한 곳에 표출하는 걸까. 


지난 12월10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안티페미협회 회원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여서 “무고하게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성범죄자가 된 사람들이 즐비하지만, 

꽃뱀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며 ‘여성계’의 해산을 촉구했다. 

꽃뱀의 정의를 먼저 짚고 넘어가보자. 꽃뱀은 꽃과 뱀의 합성어로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여성 사기꾼을 의미하는 단어다. 

꽃뱀을 꽃뱀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문제냐고? 

그런 말 듣기 싫으면 꽃뱀 짓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과연 그럴까. 

꽃뱀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다채로운 상황들을 보면 

꽃뱀이라는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올해 있었던 직장 내 성폭력 폭로 사건들을 살펴보면 

‘꽃뱀’이라는 단어가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쓰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호식이두마리치킨 사건에서 

피해자는 비교적 거액의 합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꽃뱀’이라고 불렸다. 

‘순수한 피해자’였다면 그렇게 큰돈을 합의금으로 받았을 리가 없다는 의견이 꽃뱀 주장을 뒷받침했다. 

잘나가는 기업의 회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도 떠돌았다. 

또 다른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인 ‘한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도 꽃뱀 누명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면 ‘한샘 꽃뱀’이 연관 검색어에 함께 올라와 있을 정도다. 

꽃뱀 낙인 앞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사기꾼이 된다. 

성폭력 피해자가 꽃뱀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의심받고, 

고백해봤자 믿어주지 않을 거란 불안감 앞에서 이야기를 주저하는 피해자가 생겨난다. 

꽃뱀의 의미는 더 이상 ‘여성인 사기꾼’에 멈춰있지 않다. 

사기 혹은 거짓을 행한 여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꽃뱀으로 불릴 수 있다. 

심지어 연인 관계에서도 소위 말하는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경우 

꽃뱀 낙인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저나 꽃뱀이 두렵다면 왜 여전히 강간이 일어나는 걸까. 

강간 약물을 구매하면서까지 강간을 계획하는 남성들이 진정으로 꽃뱀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거짓말하고 돈을 요구하는 ‘꽃뱀’이 많아 두렵다면서 강간을 멈추지 않는 건 왜일까. 

꽃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남성들은 알고 있다. 

이 단어가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순식간에 둔갑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남성들은 어쩌면 오랫동안 여성들이 가져왔던 피해자의 자리를 탐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성들이 제발 벗어나고만 싶어서 발버둥쳐왔던 그 피해자의 자리를 

남성들은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 자리의 끔찍함을 한 번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마치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성별로 태어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여자로 태어나 남자 돈 뜯어먹으면서 살겠다고 해맑게 대답하는 남성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검색 중에 ‘은하선이 중학교 때부터 강간을 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글을 발견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서 읽어보니 

2015년에 인터뷰에서 했던 대답 중 일부분을 발췌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인터뷰 중 중학교 때 있었던 첫 경험에 관한 질문에서 

“당시 동네에 칸막이가 있는 다방이 있었는데, 사귀던 대학생과 거기서 키스를 하곤 했다. 

그러다 그 남자 자취방에 놀러가 내가 먼저 덮쳤다. 무척 경험하고 싶었다. 

남자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는데, 싫다고 하진 않았다. 그 남자도 그게 처음이었다. 

내 성기가 어딘지도 찾지 못해 내게 물어볼 정도였다”라고 대답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여기서의 ‘덮쳤다’는 표현은 상대방이 원하지 않았는데 

권력적 위계를 이용했다거나 물리적 힘으로 제압해 억지로 강간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당시 난 중학생이었고 상대방 남성은 법적 성인이었으며, 

그 남자가 내 성기의 위치를 직접 확인하면서 나에게 질문했다는 말에서 

내가 억지로 성기 삽입을 시도하거나 강간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전후 사정을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맥락을 삭제한 채 

‘중학교 때부터 강간을 했을 수도 있다’라는 문장을 사용한 것이다. 

게다가 ‘홍준표 돼지 발정제 사건’을 비판한 내 글을 인용해 

‘강간 모의는 잘못됐다면서 본인이 했던 동의 없는 섹스는 문제가 없느냐’는 취지의 글까지 

함께 올린 것은 나에게 분명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였기에 그 글의 작성자를 고소했다. 

그리고 오늘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다녀왔는데 조사 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은 나에게 

“남녀를 떠나서 여자 중학생도 남자 대학생을 강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남자라고 마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덮쳤다는 표현이 강간을 의미할 수 있어서 그 사람이 오해할 만했다. 

일반인들이 그 인터뷰를 본다면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나를 강간범으로 몰아갔다. 

피해자로 조사를 받으러 갔던 나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나는 인터뷰의 맥락상 덮쳤다는 표현은 먼저 주체적으로 섹스를 원했다는 의미이지 

상대방이 거부하는데도 폭력적으로 성기 삽입을 감행했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며 내가 강간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러한 내용을 퍼뜨린 것은 문제적이라고 말했으나, “강간을 안 했다는 것은 본인의 주장일 뿐”이라는 말까지 수사관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다. 

어쩌면 수사관이 나를 합의금을 노리고 별것도 아닌 일을 고소까지 한 

‘꽃뱀’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나는 당시 내가 의제 강간이 성립되는 나이인 만 13세였다는 이야기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라고 하더라도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강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몇 번이나 여자 중학생도 성인 남자를 강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수사관 앞에서 

나는 세상의 ‘평등’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네가 말했잖아. 그게 강간이면 이것도 강간이겠네. 너도 강간했을 수 있어’라며 

맥락을 삭제하는 것이 ‘평등’을 향한 길인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평등’한 수사인가.


‘남자도 성폭력 많이 당한다. 요즘에 얼마나 꽃뱀이 많은 줄 아냐. 

거짓말 치고 남자 돈 뜯어내는 여자들 정말 무섭다. 여자인 게 무슨 벼슬이냐. 

여자보다 남성이 더 살기 힘든 세상이다’라는 말에는 

남성인 성폭력 피해자의 존재가 쉽게 묻히곤 하는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보다 사실을 축소시켜 

피해자를 어떻게든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싶어하는 더 큰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가해자가 재빨리 달려가 피해자의 의자를 빼앗아 앉으면서까지 

피해자가 피해자로도 남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현실. 

그 현실을 폭로하려는 이들을 ‘그렇게 따지면 너도 가해자’라며 비꼬는 사람들이 만연한 진실 속에서 

정작 피해자는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 할까. 

강력 성범죄 사건의 타이틀에까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라는 표현을 쓰면서 

끊임없이 성욕과 성폭력을 연결짓는 끈끈한 ‘강간문화’에도 절망하지 않고 싸워왔던 여성들의 역사는 왜 이리도 쉽게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는가. 

만약 여성들이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앉아왔던 피해자 자리를 남성들이 모두 ‘선점’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자도 여자들이 당했던 만큼의 성범죄를 당하는 세상이 혹시 당신들이 원하는 ‘평등’한 세상인가. 


https://eunhasun.blogspot.com/search/label/%EC%84%B9%EC%8A%A4%EC%B9%BC%EB%9F%BC


~이 글을 읽는 동안 왜 이렇게 불편하지?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여성예찬로자이며 성평등,퀴어 인정을 하는 사람인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남자는 다,여자는 다...식의 고리타분한 의식이 보여서 그런 것 같다.

극단적인,남자 자체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이 보여서 참 슬프다.

나는 요즘 은 하선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이 많음에도 공유를 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존재 중 하나가 꽃뱀이고 제비이다.

성을 매개로 이성을 등쳐먹거나 사기를 치는,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인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집단이기주의적 발상으로 일관하는 것 같아 불편했던 것이다.

남자가 다 성폭력범이거나 제비가 아니듯 여자가 꽃뱀이란 말이 아니잖은가?

물론, 모든 여자는 다 창녀다라고 일갈한 구시대적 유물 프로이트가 있었고,

여자는 강간을 원한다는 식의 말을 서슴지 않았던 가치관이 

30~40년 정도 전의 시절엔 공공연하게 떠벌여져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어디서도 그런 말을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시절임에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들이 있다.

본문의 사례들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여자 인생 뒤웅박 팔자라며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 한 번 펴 보려는 여자가 차고 넘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이야 차라리 결혼을 안 하고 말겠다는 여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놈팽이 하나 잘 물어서 팔자를 고치려는 여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제비족들이나 꽃뱀들도 엄존하는 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좀 더 오픈된 의견을 피력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소리를 하는 수사관 등에게 화를 내기보단 조목조목 따지며 여유롭게 대처를 해서 

놈의 면상에 똥바가지를 끼얹듯 무안을 줬다는 경험담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짝 아쉽지만 나는 여전히 은 하선씨의 팬이다!

절대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 싸우길...


   --미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