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은 신비스런 전쟁이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에 사활적인 이익(Vital Interest)을 놓고 벌어진다. 무력을 통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는 주요 이익, 예를 들면 영토적 이익을 놓고 벌어진다.
전쟁 발발 이유로부터 정치적 목표가 나오고, 정치적 목표에서 군사적 목표가 나온다. 군인들의 전투 수행은 정치적 목표를 겨냥한다. 그런데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추구했다는 정치적 목표와 유엔군의 전투 수행이 아귀가 맞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전쟁은 인류 역사상 6.25전쟁이 유일할 것이다. 이는 6.25전쟁이 흑막으로 뒤덮여 있는 전쟁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활적 이익과 전쟁의 관계는 어떠할까?
오늘날 중국은 센가꾸 열도를 돌려달라고 일본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까? 센가꾸 열도에 대한 주장을 중국이 포기할 수 있을까? 결국 센가꾸 열도 문제는 무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어느 순간 무력을 통해서 해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센가꾸 열도가 중국과 일본 입장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활적인 이익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당시의 베트남전쟁은 남북 베트남을 통일시켜야 할 것이란 이들 베트남 주민들의 염원과 공산주의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통일을 적극 저지해야 할 것이란 미국의 생각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었다. 베트남 주민 입장에서 보면 분단된 베트남은 용인할 수 없었다. 통일은 기필코 달성해야 할 성격이었다.
베트남 입장에서 통일은 사활적인 이익에 해당했다. 미국 입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산세력 확장 저지는 미국의 생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러면 6.25전쟁은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김일성이 일으킨 것일까? 김일성은 6.25전쟁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왜냐하면 북한군의 남침이 소련의 이익에 배치되는 경우 스탈린이 남침을 승인해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도움이 없이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6.25전쟁을 일으킨 국가는 소련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소련과 비교하여 GDP가 4배 이상의 국가였다. 미국이 묵인하지 않는 가운데 소련이 남침할 수 있었을까? 미국이 지구상 도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던 당시 미국이 묵인하지 않는 가운데 6.25전쟁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결국 6.25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이익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미소 패권경쟁의 일환으로 벌어진 것이다. 한반도가 미국, 소련, 중국 및 일본이란 4강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구상 유일 지역이란 점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 전쟁을 조장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이 부분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 입각하여 전쟁에서 추구해야 할 정치적 목표가 나오며, 정치적 목표로부터 군사적 목표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군인은 이 같은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미 말한 바처럼 전쟁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목표에 따라 군사적 목표가 결정된다. 전쟁 수행은 이 같은 군사적 목표를 겨냥하게 된다. 1991년의 걸프전 등 미국이 수행한 전쟁은 정치적 목표와 군사적 목표 그리고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쟁 수행이 분명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 전쟁은 누가 보아도 군인들의 전투 수행이 정치적 목표를 겨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6.25전쟁을 정치적 목표와 전투 수행 간의 관계에서 일목요연하게 기술한 책이 종전 70년이 다가옴에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왜 나오지 않았을까?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추구했다는 정치적 목표가 진정 미국이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명목상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당시 또한 맥아더의 전쟁 수행은 미국의 정치적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한국군 또한 미국의 정치적 목표를 겨냥하여 전쟁을 수행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목표는 당시 미국이 표방했던 목표와 전혀 달랐던 것이다. 6.25전쟁은 미국이 내심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를 겨냥하여 수행되었는데 이 같은 목표가 한반도를 희생시키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오늘날에도 미국은 당시 한반도에서 자국이 추구했던 정치적 목표와 실재 전투 수행을 연계시키는 책을 발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더.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에 관해 많이 저술했다. 그런데 이들 책은 사단장으로서의 본인의 경험에 관한 것이다. 백선엽 장군을 포함하여 당시 한국군들은 트루먼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를 지원하는 전투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당시 미국이 한반도 전쟁에서 진정 추구한 정치적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남북통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당시의 전투 수행을 남북통일이란 정치적 목표와 연계시키는 경우 아귀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6.25전쟁에서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가 추구한 정치적 목표는 38선 북진 이전에는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었던 반면, 북진 이후에는 남북통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목표는 1950년 12월 말경에는 재차 전쟁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6.25전쟁을 연구하는 사람, 대부분의 한국인은 당시 유엔군의 정치적 목표가 이와 같았다고 알고 있다. 지구상 어느 전쟁에서 이처럼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가 지속적으로 바뀐 경우가 있는가? 아마도 6.25전쟁이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목표가 분명해야 승리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가 3차례 바뀌었다는 점에서 6.25전쟁은 승리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전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의 전쟁이었다. 소위 말해,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가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3차레 바뀌었다면 6.25전쟁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후 다듬어진 전쟁 이론 측면에서 상당히 벗어난 경우다. 이 같은 전쟁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한국 육군대학은 물론이고 많은 군사 기관에서 6.25전쟁이 상기처럼 진행되었다고 교육시키고 있다.
소위 말해 유엔군의 정치적 목표가 3차례 바뀌었다고 교육시키고 있다.
6.25전쟁을 주도했던 에치슨의 글, 트루먼의 발언 등을 살펴보면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추구한 정치적 목표는 앞에서 언급한 3가지 경우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앞에서 말하는 목표는 명목상의 목표였다.
자유진영 국민들에게 공산세력의 위협을 절감하게 만들고자 한다는 정치적 목표를 통해 한반도 전쟁에서 추구해야 할 군사적 목표가 나온 것이다. 당시의 군사적 목표는 가능한 한 장기간 동안 처절하게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해야만이 자유진영 국민들이 공산세력의 위협을 절감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및 중공군과 비교하여 유엔군은 참혹한 방식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예를 들면, 원산을 하루 24시간 40여 일 동안 함포와 항공기를 동원하여 폭격했다고 한다.
평양에서 철수할 당시 평양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1952년 당시 미국의 저명 언론인 스톤(I. F. Stone)은 본인이 저술한 "6.25전쟁의 비사(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란 제목의 책에서, 미국의 6.25전쟁 수행 모습을 보며 미국인으로서 진정 부끄럽다고 말했다. 6.25전쟁을 참혹한 방식으로 진행하는 유엔군의 모습을 스톤은 적나라하게 파해치고 있다.
중공군과 북한군이 지나간 자리와 비교하여 유엔군이 지나간 자리가 너무나 참혹했다고 말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남북한 주민은 적게는 300만에서 많게는 60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인들이 저술한 자료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1930년대 초반부터 1945년까지 진행된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통해 희생된 일본인이 300만이 않 된다는 점에서 보면 6.25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형태로 진행된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6.25전쟁이 이처럼 참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미국이 이 전쟁에서 추구하는 목표와 관련이 있었다. 냉전 승리의 초석 마련 차원에서 이 전쟁이 참혹한 방식으로 장기간 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6.25전쟁이 미국, 소련 및 중국 입장에서, 특히 미국 입장에서 패권 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국가가 추구한 목표는 이승만 또는 김일성 중심의 남북통일이 아니었다. 이들 국가의 패권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서 한반도가 초토화되고 수백만의 남북한 사람이 희생된 것이다.
이 같은 6.25전쟁을 보며 오늘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인해 재차 이 같은 비극적인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같은 비극적인 전쟁이 재차 벌어지면 안 될 것이다. 이처럼 하고자 하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안보를 한국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외세에 의존하면 곤란할 것이다. 6.25전쟁이 남한과 북한이 싸우는 전쟁이었다면 그처럼 많은 인명이 죽을 수 없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한반도에서 강대국들이 전쟁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를 강대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오늘에 사는 한국인들의 책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