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거나 굼뜨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모두가 한 운동회에 참가해서 누가 누가 젤 빨리 성공하나.못하나 그런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인데..그런 선수한테 넌 틀렸어 너무 느려서..머리가 나빠서 안 돼!
더군다나 얼굴은 모델들처럼 탈렌트처럼 이쁘지 않거나 못 생겼으면 일단 제외되는 경쟁사회다. 나는 못 생겼고, 배운 것도 없고 학벌도 없고. 물론 모아 놓은 돈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 아직 성공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번쩍번쩍 대는 휘황찬란한 환경은 나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었으며, 남의 통장에 돈이 아무리 많이 있다고 자랑하는 앞에서도 그게 나하곤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통장주인이 먼저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나는 비관만 하지 못했다.
사는 게 무지 바쁜 현대사회다. 즉 현대인은 사느라 바쁘다.
사는 것은 일상이다. 그 흔한 일상들을 열거 한다면
월요일은 매 번 약속이나 하듯이 한 주일을 맨 첫머리인 월요병에 시달리느라 그렇고
화요일은 분리수거 때 못 내놓은 쓰레기 봉투들고 다니느라 바쁘고.
수요일은 아들놈 학교에서 아니면 학원 잘 다니나 안 다니나 감시겸 참견도 해야 되고.
목요일은 언제 인 줄 모르고 지나가기 바쁘고
금요일은 어랄라 내일이 벌써 토요일이네...
그렇다고 일요일은 잘 지내나..것도 아니다.
일주 일이 이런데 한 달이 우습고 일년이 언제 도망 갔는지 잘 모르고 보낸 시간에
웬 느림이니 굼벵이니 나를 찾으라니 별 쓸데없는 애기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그런 때가 도래 되었다는 신호다.
한 동안 전철역안에서 도를 아시나요? 하면서 접근하는 시퍼런 젊은이들이 있었다.
무슨 종교를 퍼뜨릴려고 포교사였는 지 모르지만 나는 이들에게 느낀 건 단 하나.
현대인이 이제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이 생겼구나 했다.
즉 빨리 달리는 고속도로만 있는 게 아니고 구 도로에서 구불구불 달리던 경운기도 같이 존재하고, 천천히 걷는 것을 뭐라고 하면 촌스런 사고라고 따돌림 당하는 시대가 물들어 온 다는 것이다. 느림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린다. 우리나라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외국에 관광객중에 제일 좋아하는 손님이 한국인이란다. 밥도 빨리 달라고 주문을 하여 빨리 먹고 후다닥 가버리니 식당주인이좋다고 한다. 원체 빨리 먹느라 우린 걸리지 않는 병도 키워서 걸린다. 위장이 역류를 해서 소화가 안된다고 하는 병 우리나라에 젤 많단다. 성질도 무지 급하다.이런 병에 약은 천천히 밥을 씹어먹기가 약이란다. 별 일도 아닌 것에 급하게 열을 내고 뒷목이 뻣뻣하다네 열 오른다네. 뭐 이런다. 병원가면 영낙없이 스트레스 받았다고 그렇다고 하는 데.이런 증상에 한 템포 숨쉬기를 느리게 하는 연습을 시킨단다. 심장이 빨리 뛰면 빨리 죽어 급사가 우리나라가 세계 제 1위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좀 그냥 내 버려두는 근성이 다아 어디로 갔는지 안부를 묻고 싶을 정도이다. 신문을 봐도 뉴스를 봐도 모두 시간이 없다고 좀체 기다려 주는 여유는 안 보인다. 무슨 괴물이 금방 쫒아 올 것 같으니 어떤 방공호를 짓고 모두 그 곳에 가서 얼른 가서 숨어보자는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만 보인다.
이러니 방송을 봐도 신문을 보다가도 괜히 울렁증이 시작된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괜히 옛날 말씀만 맞다고 천 번 만 번 인정한다.
웬지 휴대폰도 끄고 싶을 때가 있고.
잘 보던 드라마도 궁금하지 않을 때가 있으며.
차는 세워두고 걷고 싶을 때가 생기며.
일부러 맛이 없는 요리를 혼자 먹고 싶을 때, 혹은 잘 나가는 직장도 때려 치우고 싶을 때도
인터넷도 한 일주일 푹 쉬어도 세상 하나도 변한 게 없었더라...
괜히 내 걱정엔 내가 한 발 뒤처져 좀 모자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남의 관점이다.
남도 내가 그렇게 보던 말던 본인 인생은 잘 관리하고 잘 사는 것을 확인한다.
나 아니면 못 해낼 것 같은 그 일상에 심한 중독이 되었다.
현대인은 착각의 귀재들이다.
그런 것 같더라식의 두루뭉술 대충 얼버무려 합리화는 나에게도 덮쳐 온다 .
조심해야 한다.
일단은 모든것을 점검할려면 잠시 갓길에 정차해주는 자동차처럼 우선멈춤도 할 수 있어야
현대인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