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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부는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BY 2007-01-06

그러니까  태고부터 성매매자는 따로 있었다.

조선시대에 내 노라하는 벼슬아치들이 출장가서 일은 안하고

기생이나 관노들을 끼고 정작 일은 안해서 이걸 상소를 하여 이르는 벼슬아치들도 많았다.

 

인도의 오랜 신전을 보면 벽에 부조로 별 게 다 새겨져 있다.

난잡하게 난교를 부리는 성행위도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고

그 옆에서 다른 배우자인지 차례를 기다리는 여인이 새겨져 있다.

나도 이런 것을 보았을 때

플레이보이지나 포르노를 보는 느낌과 전혀 다른 감흥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도의 신전에는 안에 보다 바깥에 면이라면 모두 다 그림을 그리듯이 조각으로 채웠다.

거기를 들여다 보면 그 시대의 일상이나 사건들, 문화들을 엿 볼 수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술에 취한 매춘부라고 새겨놓은 부조가 있는데

양 옆에 부리는 종이 있고 보디가드역활 하는 남정네가 서있다.

 

그 당시엔 매춘부들은 75개의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75개의 학문이라는 것은 지금의 어느 대학의 교수라고 할 지라도 자신의 전공과목을 중점적으로 연구한다고 해도 부전공이 74개라고 해도 벅찬 양이다.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갗춰야 매춘부라는 칭호를 얻는다고 했다.

수천년전의 매춘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왜일까.

 

멀리 볼 것없이 조선의 매춘부라면 누가 떠오를 지 당연하다.

해방전후에 평양에 기생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기생들은 배우는 학과가 있었다.

바로 풍악을 비롯 글과 예에 몰입해서 가르쳤던 것이다.

 

요즘만큼 성매매니 성도덕이 문란한 시대인 만큼

이런 역사를 되짚어 볼 수록 알아볼 게 참 많다.

 

덧) 다음편에\" 민주주의를 알려 준 매춘부\" 연재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