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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한니발 랙터 의 환생?


BY 2004-07-27

마치 공포영화 처럼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이라는 인물이 이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인간 이기를 포기한 짐승이 아닐까? 어쩌면 살인을 즐기는 공포의 살인마가 되어 버린
평범했던 젊은 아버지가 어쩌다 이렇게 인면수심이 되었는지, 가득이나 덥고 짜증나는
시절에 놀라움으로  더 더욱 이 사회가 혼돈에 빠진듯 하다.

동물의 섭리는 약육 강식으로 힘센 놈이 약자를 잡아 먹고 산다는 지극히 자연법칙을
따르고  존재 하지만 , 인간 이란  이성과 도덕으로  공존하면 살아가야 하는 섭리를
따라야만 모두 살수 있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태초의 살인은 성경에서 나오는  카인 이 동생을 죽이는 것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
아버지의 귀여움을 차지 하고 있던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  인간세계의 살인이 시작
되었다고도 할수 있다.
숱한 살인 사건들을 접하지만  이번 유영철 사건은 연쇄 살인 이면서도  살인의 목적이
대단히 특이한 점이 있다. 원한도 없고  돈을 강탈 하기위한 살인도 아닌 살인을 즐긴것
같은  섬뜩함 때문이다.살해방법도 끔직하다.

우리나라에도  놀랄만한 연쇄 살인 사건들이 기억 난다.

1963 년 내가 중학교 시절 유명한 고재봉 도끼살인 사건이 있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인
가족 6명을 도끼로 살인 했다해서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고. 70년대 김대두 라는 사람이
17명을 죽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82년 의령 에 한 순경이 내연의 처 와의 불화로 총과 수류탄을 터트려 무려 55명을
살해 하고 35명이 부상을 당하는 끝내 본인은 자폭을 하고 죽었다.

그뒤1986년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 . 그 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더 더욱  기억이 나는 사건이다. 한동안 빨간 색 옷을 입지 못하고 늘 귀가길엔
의경들이 보초를 서고 덕분에 그 지역엔 범죄가 없었다.

그 화성 살인 사건을 소재로한 "살인의 추억 " 이라는 영화가 히트를 치고 아직도 모코메디
소재에 "향숙이"가 아직도 불리워지고 있다.

수 많은 소재의 공포살인 영화가 많았다. 양들의 침묵 이라는 무서운 영화 에 나오는
한니발 랙터 박사 . 그 영상은 기억 할쩍 마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무서운 영화였다.

지금 유영철을 보면서 그 한니발  의 살인마 얼굴이 오버랩 되어 더큰 충격을 주고있다.

 

왜 그랳을까? 모든 일엔 원인이 있다. 사람을 때리거 나,미워하고 ..얼토당토 하지않은 이유
일 지라도 그 근원적 이유가 있다. 이 번사건의 이유는  자신의 삶속에서 소외되고 배재된
삶의 형태에서 상징적 대상을 미끼로  자신의 증오심을 아무 이유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자 했던 선의의 피해자와 가족들의 원한을 어찌 할것인가?

우리들 도 그 대상의 대열에 희생자가 될뻔한 것이 아닌가? 그 렇게 일이 벌어지는 동안
에도 이 사회는 몰랐고. 뻔뻔하게 자신의 숙소에서 그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는데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다니 ... 이 무관심이 결국 "유영철을 만들어낸것이 아닐런지..

사회가 복잡하게 돌아갈수록 ,빠르게 돌아갈수록 그 대열에 함께 하지 못하는 약자들이
있다. 어리거나 노약 하거나 여성 이거나 혹은 장애 이거나.. 언듯 보면 멀쩡한 사람들
까지도, 그러나 낙오자는 있게 마련이고 앞서 가는 사람 역시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사회는 제도를 통해 가능 한 함께 살아 가도록 해야 하는 데 우린 아직 그시스템
을 구축 하 지 못하고 있다. 어느 사회이던  똑 같을 수는 없다. 공산주의가 아니니까..

하지만 가장 살기 좋다는  민주주의를 택 하여 살고 있는 이사회가 이 나라가 발전하고
행복해 질려며는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을 완성 해야만 한다. 아직 준비도 덜된 2만불
시대를 희망할 뿐이지 아직 1만불 시대도 넘지 못한 주제에  ..  아직 우리는 부족한 사회임
이 증명 되고 있다. 부익부 빙익빈 이 더욱 심화 되고 있는 현상만 보아도.
이웃에 누가 사는 지 무엇을 하는 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보니 .이렇듯 살인마가
등장하는 살벌한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일 께다.
살인 하는  방법들이 영화로 드라마로 뉴스로 공개되고, 천하에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살인범을경찰이 보디가드 마냥 보호 하고 피를 토하고 죽어도 시원치 않을 피해 가족에게

발길질을 하는 이나라는  어느 나라 인가? 미친 경찰이 아니던가?
자살도 범죄 이지만 살인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이제 이 비극적 사건이 생겨나는 것은 제 2의 제3의 사건도 올수 있는 사회에 진입 했다는 것이다. 이젠 언제 내 목숨이 파리목숨이
될지 ,긴장 하면서 살아야 하는 시대 인 것이다. ..

그런 사회를  없앨려면 이웃들이 소외 되지 않는 따듯한 사회를 우리 서로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는 부족하고 비워진 공간들은 시스템으로 만들어 작동시켜 이 비극적 사회 공포의사회
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가득이나 밥을 굶을 정도로 힘든 경제 여건 속에서 더한  무대상 증오로인해 어떤 사건이 일
어날지   전혀 없을 것이라고 장담 할수는 없을 것이다.

여름날, 마치 꿈을 꾼듯한 이 영화의 한 극본 같은 사건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내 딸들이 아들들이 마음 놓고 거리를 다닐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재발 방지 시스템을 구축 하고 제발 경찰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민중의 진정한
지팡이가 무엇인지를 심어  투철한 첨단 경찰이 되어 주길 기대 한다.
그래도 한가닥 경찰의 힘을 믿고 마음 이나마 편하게 하구 살수있게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는 데 목숨까지  살인마 들에게 내놓고 살수 있는 가?  참으로 우울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