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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유행 멈추어야 한다


BY 2004-04-23

엊그제 모친의 갑짝스런 응급 상황으로 새벽에 응급실을 갔었다.
다행히 구토 증세와 열이 가라 앉기에 잠시 위급 상황을 넘기고 기다리던 중

급하게 엠블런스가 도착 하며 하얀 시트를 덮은 체 들어 오는 환자가 있었다.
갑자기 부산해진 응급실  관심을 주지 않아도 저절로 상황을 알게 되었다.
수원 영통의 한 아파트 19층 에서  26살 처녀가 술에 취해 엘리베이타를 타고 올라간후
떨어져 사망 한 사건 이였다 자살 이였다.

엄마의 상황도 좋지는 않았는 데 그 사실이 내겐 큰 충격으로 닥아와 못내 마음이 쓰렸다.
26살 꽂다운 처녀는 왜 죽음 을 택 했을까? 술의 힘을 빌었지만 어떻게 그 높은 곳에서 몸을
날릴 용기가 생겼을 까? 현실을 극복 할 방법이 없었을까?  가까운 친척들이 왔던데...
왜 그처녀는 혼자 라고 느꼈을까? 왜 포기 했을까?....

   

나 역시 한때 젊어  자살을 시도 했던 적도 있었다. 누구나 성장기에 한번쯤은 생각도 해보고
어설픈 실행도 해본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으리라 생각 한다.

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끊임 없는 의문으로 날을 새며 고민 하고 그 의미를 찾아 헤메고,
결국 스스로 탄생을 원하지 않았던 반면 , 스스로 죽움만은 택할수 있다는 어설픈 논리로
시도 했었던 어린 날, 결국 몇일 만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 그래 죽음 은 원치 않아도 언제
어느때이든 올것 이기에 열심히 살아 보자 라는 결심이 오늘 날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자아를
만든 계기 가 되었었다.

 

그러나 작금 에 우리곁에 보여지는 자살의 모습은 매우 다양한 사회의 속에서 풀리지
않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유명한 분들의 명예실추에 따른 자존심 상실에 따른 선택 이라고 볼수 밖에 없는 자살,

생존에 관련되어 모순된 제도에 따른 자기 희생성 자살 , 생존의 절박한 상황에서의 포기성
자살 ,  ........ 수 없는 동기로 이루어 지고 있는 자살의 유형들을 다 알수는 없지만 , 같은
울타리에 사는 이웃으로서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 할수 도 없고 어쩌더 그랳냐고 혀만 차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일것 같다.

가장 맘이 아픈 유형은 생존의 포기로 오는 자살 사건 들이다.

요즘 그심하게 늘고 있는 카드빛에 몰려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의 문제 이다.
몇천 만원이  죽음을 몰고 가는 단초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의 목숨이 이 삶이 몇천만원
이라는 단위로 환산 될수 있는 것일까?  수백억원을 주고도 가질수 없는 것이 생명일 진데,

생계가 막막 하여 밥 한솥해놓고 죽은 소녀 가장의 이야기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사회가
그 소녀를 죽였다고 보아도 된다.
핑게 없는 무덤이 없다고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다 이해 할수는 없다.

그러나  생계 때문에 죽음 을 선택 하는 사람들을 양산 할수는 없다고 본다.
자본주위 국가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살수 밖에 없는 구조 이지만 , 우리가 사는 이땅에선
함께 살아나갈 방도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익부 빈익빈 이라는  구조이지만 ,  최저의 생활이 보장 되는 나라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너무도 미약 하다 그 중에 진짜로 도와주어야 하는 이웃들을
빨리 정확하게 찾아내어  삶의 희망을 꺼뜨리지 않도록 작은 용기라도 주어야 한다.

 

이제 정치판도 새로 짜였고 어떻허든 변화가 올것이라고 예측을 하지만 .. 우선해서  약자들
의  생존권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듯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는 불건전
사회 일수 밖에 없다.

가장 주범이 되고 있는 카드사 들의 금융사들의 빛독촉 방법이 바꿔야 하고  이를 극복 할수 있는 제도가 누구도 공평히 누릴수 있는 실질적 제도 이여야만 한다.

 

우리 아줌마 들이 할수 있는 것은 내집 밖 울타리 밖 이웃의 삶도 관심을 가지고 좀더 열린

마음으로 살아 가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라 생각 한다.

없어도 살만 했던 옛날을 기억 하면서,  따듯한 마음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드는 동력이 되는
주체 가 아줌마  가 아니면 누가 할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