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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의 며느리..


BY 2006-09-18

추석이 가까이 오니..주부로서도 마음이 휑하다.

한 집안의 며느리이고..

그 집안의 역사에 남을 나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무겁지 않을 수 없다.

 

벌초를 끝내 놓고..어르신들과 집안 이야기를 한다.

막걸리 사발이 잘도 비워진다.

\' 제수씨도 한잔 하세요.\'

사발에 한잔 따라 주신다.

\' 깰만 하면 트림 나오고..트림 나오면 또 취하고..

  아휴 힘들어요\'

당췌 막걸리란 놈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막걸리 약한 제수씨 속사정을 응대 해주시니..속으로 고맙다.

 

\' 벌초하고 나면 속이 다 개운해..돌아가신 분들도 머리 깍고

  나면 시원 할 거야 \'

\' 좋겠지요..나도 머리 깍아야 하는데..아들 머리 깍자.\'

말을 서로서로 거들며, 괜실히 아들이 있어 뿌듯한 듯..

자신이 아들이어서 좋고, 또 그 힘을 믿는 듯..

그렇게 시간은 간다.

 

조상에 대한 예의는 연세들수록 남자들이 더 하다.

그것이 사실은 한 집안의 자존심이고 주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말 없이 과일을 깍고, 먹을 거리를 내주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난 이 집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음식을 하고..아이들 건사하고..남자들 시중 들고..

부모님 말씀 경청하고..

사실 아직도 난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지는 못했다.

처음엔 소리 높여 나의 권리와 부조리와..현명한 척..억척을

떨었던 때도 있었다.

그 화살은 꼭 남편에게 돌아갔고..

가느니 마느니로 실랑이 한적이 꼭 있었다.

거친 말이 오고감은 아무것도 아니요.

술이 떡이 되어 돌아온 남편 앞에서..

너는 술이라도 먹어 풀지만..

나는 어쩌란 말이야.. 콧물 줄줄 흘리며 울다가..

그냥 픽 쓰러져 자는 남편을 깨우고..엎어치고 매치고..

그렇게 신혼 시절의 명절은 악배덕배 했다.

그래도 아침이면 남편 따라 간다.

죽상을 해가지고...가서 또 죽어라 일한다.

씩씩 거리며..왜 해야해..힘들어 미치겠다구..

 

지금 생각하면..참 귀엽기도 하고..예쁘기도 하고..

어쩔땐 그렇게 철없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뭘 모르는 상태..오히려 그것이 순수함을 더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뭘 아는 때가 오면.. 챙길 것이 사실은 더 많아진다.

부모 맘도 챙겨야 하고..가족들의 분위기도 챙겨야 하고..

식성과.. 관례와..그리고 인사를 꼭 빼 놓지 말아야 한다.

결은 익숙함이다.

 

며느리로 자리매김을 한다는 것은 애를 낳아주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 그 집 며느리 요번에 아들 낳았어\'

\' 우리 아들..딸 아들 둘 낳고..선생하고 살잖어\'

\' 요번에 집 샀데..애들이 셋이야 \'

자식이 있다는 것은 벼슬이고..책임이고..큰 물건이다.

이 물건이 잘 되고 못 되고는 후일이고..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떤 벼슬보다 값이 꽤 나간다.

그래서 자손이 든든한 집안은 아무도 건들지 못한다는

우월의식을 갖고..한 마을의 든든한 지주 역할까지 한다.

결은 그래서 자식이 있어야해.

어머님 말씀이시다.

 

이 위대한 사업을 하는 것이 내 역할이고..

이 위대한 사업을 잘 일구는 것이 며느리의 몫이라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도..숙명적으로 인식하고..

일궈나가는 것이 며느리다.

여자와 며느리는 다르다.

여자는 분류를 할 수 있는 집단이지만..

며느리는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순수 혈통 이어야 한다.

며느리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며느리는 오직 베풀어야 한다.

며느리는 희생의 산물 이어야 한다.

이렇게 나는 길들여진다.

 

그런데..언제인가 부터..

사실..한 십년 그 집의 며느리로 살다보니까..

나는 어느새 내 맘보다 더 악독한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있더란 말이다.

격식을 갖추는 꼴이 나부터 나오더란 말이다.

친정에서 행여 니 시어머니..어쩌고 저쩌고..하면..

난 어느새..아니야를 외치고..그건 엄마 생각이 잘못된거야..

라며 엄마를 질타하고..

아들 오늘 벌초해..꼭 따라가서..할아버지 산소, 할머니..산소..

잘 봐둬야 한다.

그리고..이 묘는 몇대 할아버지, 몇대 할머니란다..

알겠니!

변하는 내 모습이다.

 

부딪치는 과정속에 점점 중용의 인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현명한게 뭔지..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타협을 모르던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 집안을 알아감으로

생각과 폭을 넓히는 것이다.

 

이 감정의 폭을 참으로 깊다.

어릴적 할아버지 집의 마당은 참으로 넓었다.

그러나..지금 할아버지 집의 마당은 초라하고 좁다.

보는 세상의 폭이 달라졌다는 증거다.

 

후일 자손이 나를 평가함에 무엇이라 말할지..

그 또한 지금 나의 몫일 수도 있다.

왜 그것이 자존심이 될 수 있으니까..

\' 그 집 자손..그려..니가 그집 자손이여..

  훌륭한 분이지..\'

남에게 이런 찬사를 듣기란 사실은..희생밖에 없다.

왜 희생을 하고 살아야 하냐고..

자아가 강한 사람은 말하겠지만..

넓은 폭으로 볼때 희생만큼 깊은 뿌리를 내리는 것도 없다.

 

한 집안의 며느리란 업을 난 갖었다.

그 업이 사실은 좋고..나쁘고는 후일 자손들이..

판단 할 테지만..

그건 후일 일이고..

지금..내가 간직한 마음은..

내가 만든 음식 가족이 맛있게 먹어 좋고..

내가 즐겁게 웃는 것이 가족들 모두 편안하게 해서 좋고..

내가 어른들 말 잘 들으면..

내 자손이 그것을 보고 잘 배우겠지..

그 습은 변하지 않으니까..

절대 철학이니까..

 

며느리란 업연속에서 나는 또 알아간다.

그 많은 가문 가운데..왜 내가 이 가문을 선택해서 왔고..

그 가문의 역사속에 내 이름이 꼿꼿하게 있을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숙제는 늘어간다.

 

\' 작은 엄마..한 접시 더 주세요..\'

그래..내가 니들 작은 엄마다..

살도 피도 썩이지 않았지만..

난 너희들의 작은 엄마..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