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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BY 2006-06-16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멀리 멀리..아주 멀리까지 갈 수 있기에 타기로 했다.

사람의 머리는 요술밥통이라..

힘든 일이 있으면 도망 먼저 가려고 한다.

내가 지금 그 짝이다.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더라도...

간다는데 의의를 둔다.

요술 밥통 쉬러 가려고 자전거를 탄다.

 

앞에 고물을 실고 있는 할머니가 계시다.

지나치다..끙끙 거리는 모습에 눈이 간다.

난 내리막이고, 할머니는 오르막이다.

정차하고 뒷 똥구멍을 민다.

할머니 쳐다 보신다.

웃었다.

고맙다고 하신다.

왜..할머니는 고물을 주우실까..

물어봐야지..

 

아이스크림을 사서 할머니 곁에 앉았다.

해는 아침이래도 중천이다.

\" 맛있지요?\"

\" 맛있네요\"

\" 말씀 놓으세요\"

아이스크림만 드신다

\" 자손은 얼마나 두셨어요?\"

\" 셋..\"

\" 다 여우살이는 시키셨어요?\"

\" 아직 막내놈이 못 갔어..얼른 갔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랑 똑 같이 말씀 하신다.

그래서 미소졌다.

\" 할머니..몇살 이세요?\"

\" 원숭이 띠여\"

\" 그럼 ..63살이네요?\"

\" 몰라..그럴거야..\"

\" 생일은 몰라요?\"

\" 생일은 무슨 생일..그 까짓껏..\"

대충..

이말만 들어도 자손들이 챙겨주지 않음을 느낀다.

두런두런 오고감이 많다.

아이스크림을 언제 먹었냐다..

 

\" 자네들이나 내 팔자나 똑 같애.\"

가슴 아픈 표현이다.

고물을 가르키며 하신 말씀이다.

\" 막둥이나 얼른 짝지워주면 가야지..후딱 가야지..\"

이도 우리엄마와 똑 같이 하는 말이다.

\" 얼마 벌어요. 할머니..\"

\" 그런 걸 뭘 물어..\"

그만 일어나신다.

출근 시간도 되었고, 나도 가야 했다.

 

고물..

인생은 고물이 아니가 한다.

쪽쪽.. 필요 할때는 쓰다가..쓴물 단물 다 먹고.. 나머지는

다시 우그러지는 고물..

필연처럼 내 인생도 고물 처럼 느껴져 울컥 했다.

 

무엇을 보고 느낀다는 것이 구접스럽다.

할머니를 보고도 느끼고, 고물을 보고도 느끼고..

아침을 보내는 것도 느끼고..

오늘 일진이 빡빡하다는 것도 느끼고..

그래도 느끼며..깨달음도 있으니 조오타..

 

어젯밤 꿈에는 절집으로 올라 갔다.

산을 돌아 구비구비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무릉도원을 지나..

나무 겉대로 지은 한적한 절집에 들어서니..

장삼 위에 가사를 두른 스님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신다.

큰 스님이 열반 하셨단다.

뵙지는 못했다.

쓸쓸한 기분 뒤로 분주히 스님들이 움직이실 뿐이다.

나는 쳐다만 본다.

 

고물 할머니를 만난 것이나..

꿈 속에서 만난 절집이나..

도긴 개긴 이다.

 

나의 정서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

이것은 예전 그때나..지금의 생각이나..한치 틀림없이 똑

같다

그저 소탈하게 사는 모습이 좋고..

내 내면은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니..

 

옷을 홀랑 벗은 것 처럼..

부끄럽고 가슴 떨린다.

 

할머니 왜 고물을 주우시나..했더니.. 막둥이 장가 보낼라고..

난 뭘까?

오늘도 내일도 느끼려고 산다.

 

아침 일찍 핸드폰이 울린다.

\" 애기 이름 지으려고요\"

 

그래 지어줘야지..

자전거 타고 휙 돌았으니...

오늘도 철학이 고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