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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극락은...


BY 2007-01-12

그 심한 고통 뒤엔 늘 희망이 있다.

맑아짐이 있다.

그리고 새로워진다.

 

꾸불꾸불한 산의 허리를 돌고..돌아..

내가 도착한 곳은 참선과 기도의 도량 수도암 이었다.

곳곳이 빙판길이라...어지간한 담 가지고는

차를 몰고 가지 못한다.

남편에게 무조건 졸랐다.

가요..가요..

오늘 꼭 가야 한다구요.

\" 그럼 가까운 곳으로 가요..\"

\" 아니요..꼭 수도암으로 가고 싶어요\"

\" 천처가 기도 도량이고...부처님 손바닥  이라며..\"

\" 꼭 수도암에 가서 할 일이 있어요\"

\" 참..\"

한숨을 쉬는 남편에게 무조건 해달라 재촉을 했다.

한참을 이리저리 전화 하더니..갑시다..라고 말한다.

미안했다.

 

특별한 여자..떠나고 싶으면 떠나야 하고..

세상 살이 별 상관 없이 그저 마음 쓰이는 대로 사는 여자..

 

특별한 남자..화 잘 내지 않고

아내의 특이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남자..

 

애 셋 낳고 같이 사는 남자와 여자의 궁합이다.

 

남편의 운전 솜씨는 매우 좋다.

가끔..군시절 1호차 운전병 이었다며..

이제는 회장님 모시는 정기사라 이야기 하지만..

내심 아무말 없이 비위 맞춰 주는 자상한 그이가 미덥다.

 

멀리..가파린 길을 올라 올라..

수도암의 전경이 눈에 들었다.

청초록의 지붕과 엇 비스듬 하게 깍긴 대지가 눈에 든다.

어쩜 이렇게 기운은 묘 할까..

까마귀의 울음도 짖고..까치의 울음도 짖다.

비구 스님들의 일손도 멀리서 보인다.

암자의 전경은 몽유도원도의 한장 같다.

군데군데 눈이 소복히 빛을 그대로 받아 윤기가

사르르 흘렀다.

그대로 누워도 좋을 듯..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

산사의 흐름은 잘 정리된 극락국처럼 위엄이 있었다.

 

발길을 올려 대적광전 안으로 들었다.

얼핏..어디서 많이 본 듯..석굴암 부처님처럼 눈에 든다.

범어로 태양이란 뜻을 갖은 \' 비로자나 부처님\' 이시다.

석불로.. 풍만한 그  위용이 날 반긴다.

 

속으로 조아렸다.

\' 이제 왔어요. 뵙고 싶었어요..\'

정성들여 염주를 돌린다.

찬바람은 콧잔등을 시원스럽게 얼게 한다.

훈김이 이내 콧잔등을 녹인다.

얼마 있다...무릎이 깨지는 아픔을 느낀다.

살이 욱죄이는 고통이 온다.

 

....

점점..어느새 몸이 무거워진다.

자연스레 눈을 감는다.

입에서 흘러 나오던 석가모니불도 자취가 없어진다.

 

번뇌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셀 수 없는 많은 파장이 몸을 감는다.

몸과 마음이 따로다.

마음은 숙이고 또 숙이지만..

몸은 아프다..아프다를 반복한다.

분리된 신체는 번뇌의 기습으로

어디가 선이고 어디가 악인지..

뭣 하러 이 짖을 하고 있냐고..계속 지껄인다.

아프면 그만 해야지..

해서 뭘 얻으려 하냐고..

니 몸이 아프다고 지껄이잖어..

그래도 몸은 조아린다.

아무말 없이..

 

문득 백년도 지탱 못하는 이 몸이 뭐라고 이렇게 무겁나..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대지는 넓으나..조아리는 미천한 중생이 까만 바닥에

쓸쓸히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그림만 보인다.

얼마를 했을까..

 

지금도 까마득하다.

 

찰라는 이렇게 늘 까마득하다.

목탁의 잔잔한 음성이 메아리 된다.

꼭 울림통의 운율처럼..

 

잠시..

 

조금 있으니 몸이 가벼워진다.

다시 생기가 일었다.

몸과 마음이 가볍고 생기가 생긴다.

몸이 움직이지 않고..이제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 하나가 되는 것이다.

황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무 바램도 없고..그저 기쁜 몸 하나다.

무엇 때문에 절을 하냐고 묻냐면 이 기분 때문이라고...

나는 지금 풍만해진다.

 

맑아지는 기분을 이해 하시런지..

사람이 늘 기쁘고 즐거워지는 연습이라고..

그리고 지혜가 생기는 어떤 찰라의 과정이라고 ...

이해 하시런지..

 

남편은 조용히 나를 본다.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특별한 말이 없어도 그 마음을 읽는다.

 

큰 스님들을 뵈면...늘 웃는다.

전에 왜 저 스님이 나를 보고 웃나..

참 희얀하다..그랬는데..

지금은...어머..내 맘을 보였네..쑥스러워라..

 

기도는 마음을 꼭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목소리..얼굴..몸짓만 보아도 알게 된다.

이것을 심통..내지 신통이라 하는데..

기도의 힘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해가 넘어간다.

스산했던 바람도 내 마음따라 없어졌다.

극락도 없어지고 바램도 없어졌다.

그저 무릉도원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그렇게 가벼워진다.

 

어깨에 흘렀던 땀이 솔솔..비천처럼 날아간다.

난...가벼웠다.

 

파르스르한 얼굴빛이 아직 가시지 않은 스님은..

염불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아직 가시지 않은 업을 생각하실까...

이 염불을 왜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실까...

아니면 극락으로 들어가실까..

 

아직 염불이 끝나지 않은 수도암을 멀리 두고 오며

아쉬워 중얼 거렸다.

 

무엇을 하든..그 소임대로만 하여라.

순간 주워진 그 시간에 맞춰서 그 소임대로만 하여라.

대신 마음을 다해 하거라..

 

석양은 때에 맞춰 하루를 마감한다.

여지 없이 제 소임을 다 한다.

......

......

 

헌데..

눈을 감으면 생각 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똥통이다.

 

글쎄..

저기 여의도 한 복판에 수도암의 똥통이 있다면...

어떨까..

명물이 될수도 있겠다.

전후방 한 이백미터까지는 아무 건물도 없을 게야..

그 비싼땅에 말야..

 

이불속에서 혼자 웃는 나에게..

남편은 말한다.

잘자..

음..

눈을 감은 과거는 무릉도원이고..느낌이고..똥통이다.

그리고 들어간다..부처님 품으로...

 

극락은 다른데..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낸 하루에서 극락은 있었다.

다만..내가 극락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

극락을 보는 방법을 배우려면...

고통을 느껴야 한다.

 

고통 뒤에는 꼭 극락이 보이기 마련이다.

추하추동...그 흐름의 거스림이 없는 것처럼..

 

마지막은 늘 똥통이다.

먹으면 먹는대로 그대로 확인하는 똥통.

참..이 몸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