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이라 함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이라 합니다.
.....
누런잎이 이제 점점 다 떨어져 갑니다.
신원사 내려오는 길에 낙엽길을 밟았어요.
바스락바스락..
맨발에 밟히는 느낌이 참 좋더군요.
진짜로 바스락 거리더군요.
몰랐습니다.
초입에..큰스님 앉아계시던 의자가 있었습니다.
다 헐은 의자는 주인도 잃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그냥 만져줬어요.
겉껍데기 밑으로 나와 있는 상판속도 손가락으로
집어 넣어주고..\" 너도 참 귀하다 \"
읊조리 말은 허공속에서 메아리 됩니다.
손님을 뵈면...
어떤 날엔 좋은 그림을 감상한 것처럼 기쁠때가 있고,
어떤 날엔 슬픈 영화를 본것처럼 내내..여운으로 한켠이
쓰릴때가 있어요.
사람이 곧 그림이고, 영화고, 음악이고...
전생이고..미래생이고..지금의 모습이고..감동입니다.
커피를 드리고..신원사 같던 이야기를 했어요.
\" 고향 같아요. 왜 그렇게 푸근하지 모르겠어요\"
커피를 한모금 하시더니..말을 꺼내십니다.
\" 맞아요. 좋죠..한번씩가면 그냥 무조건 좋더라구요\"
두모금을 넘기십니다.
\" 전 도시에서 자라 시골 정취는 잘 몰라요.
근데..이상하게 시골 정취가 맘속에 늘 환타지처럼 있어요.
전생 삶이었나 봐요\"
먹이 갈아지며..이야기에 끼어듭니다.
\" 먹 갈리는 소리는 차분해서 좋더라..\"
커피를 다 마신 손님은 먹가는 내 손을 멍하니 보십니다.
눈망울이 세월을 말합니다.
오십 여섯인 이 손님은...
.....
방한칸에 다섯식구가 살았답니다.
아이들..남편밖에 몰랐답니다.
남편은 작은 회사를 다녔는데..착하기만 했나봐요.
예전엔 연탄불이 많았잖아요.
두 아이를 연탄가스 중독으로 먼저 하늘로 보내고..
남편은 그 충격에 술만 먹었데요.
술 먹고 들어오던 남편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병수발로 있던 방한칸 전세금 마져 다 썼데요.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만 갔데요.
어느날..집주인이 와서 한다는 말이..
\" 돈 쌓아 놓고 사는 거 아니고...집세를 줘야 우리도 살지.
00 엄마 사정 모르는 것은 아닌데...언제까지 봐 줄수도 없고..
요번 달까지 방 빼줘요.\"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손님은 이 말을 흉내내십니다.
그리고서 한다는 말이..
여자 팔자가 쎄니까....뭐라고 궁시렁 거리며 나가더랍니다.
몇날 며칠을 잠을 자지 못했답니다.
이건 아니야..이건 아니야..
현실을 인정 할 수 없는 아픔..그리고 꿈 이었으면 하는 마음..
까마득한 망막함이 목을 졸라 오더래요.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팔자..내 팔자가 세서...
남편과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부탁하고...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란 일은 다 했답니다.
닦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지금은 큰 시장에서 마트를 하십니다.
딸도 좋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남편은 금 세공 기술을 배워 일을 조금씩 하신다 하시네요.
그러면서 하신다는 말씀이...
\" 그 집주인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살 수
있었겠나...나 한테는 은인 같어요.\"
천지가 다 부처님 도량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중생이라는 탈을 써 부처님을 못 알아 볼 뿐..
모두가 부처이며..깨달음의 산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 대단하세요..훌륭하시네요\"
우리에게 시련이 없다면..절대 수승한 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시련의 밑자락엔 작은 실오라기의 성공이 분명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음과 양이며..
두 법칙은 우주에 꼭 같이 공존 합니다.
누군가 내 탓을 한다면..
은인으로 삼으세요.
욕을 하고, 날 매섭게 갈구 더라도...
그 욕을 발판 삼아...못 알아 보았던..
잠재의식을 깨우세요.
이것이 깨달음 입니다.
문득 저는 세상에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구나..
라는 진리가 떠오릅니다.
제 몫이 다 있다더니..이말이 꼭 옳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문의 진리든..인생의 진리든..그 진리는
언제나 같습니다.
인간의 아픔을 극복하고자는 기본에서 부터 시작을 합니다.
잘 살아서...많이 배워서...
이것이 아닌 자신의 처지에서 어떡해 고난을 헤쳐 나갔느냐!
그리고 지금 행복하느냐!
\" 말이 길었지요?\"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 좋다고 말했습니다.
손님도 웃습니다.
막막한 삶이어도 분명이 나올 구멍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막하다는 탈만 쓰고..허우적 거리면..
까만색만 보이지..빛이 안 보입니다.
그 빛을 보세요.
보지 못하면 이것도 내 탓입니다.
은인....
참 귀한 분입니다.
누런잎 사이로 살포시 더 젖어드는 빛..
누런잎은 그 빛을 받아 더욱 누런해지지요.
얼른 소멸하고..다음 봄을 기다립니다.
이 추운날..봄이 멀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봄은 꼭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