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396

여자의 꿈..


BY 2006-11-15

다시 햇살이 비추네요.

변덕스런 날씨는 일진하고도 상관이 있습니다.

오늘은 원숭이날..무신일 이지요.

무신날은  속좁은 원숭이가 재주를 부리니..

당연히 변덕스러울 수 밖에..

매사가 불리하니..마음 비우고 화내지 말고,

잘 넘어가길 빕니다.

 

아침에 호빵 하나를 사와 커피와 마셨습니다.

뜨끈하니 좋은데.. 아침 일찍 나간 남편이 생각납니다.

아침상도 못 받고, 조그마한 체구가 더 말라서..

요즘들어 짠한 생각이 더 드네요.

호빵 주면 맛있다고 하겠는데..

왠지 목구멍에서 안내려 가네요.

 

내가 가끔 여자이구나 싶을때가 있어요.

좋은 옷을 보면..남편 생각이 나고..애들 생각이 나고..

고생하는 엄마 생각...예쁜거 좋아하시는 시어머니 생각..

두루 생각하다가 그냥 만지작 거리다 와요.

아직은 좋은 옷 입을 때가 아니다 보니..눈으로 감상을

해도 기분은 좋아집니다.

 

여자..이 묘한 정체성에 대해 며칠전 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 세시쯤 연세가 육십이 넘으신 손님이 오셨어요.

곱게 늙으신 어르신은 자리에 곱게도 앉으십니다.

관상을 보아도 교양이 있어 보이십니다.

\" 내가 궁금한게 있어요\"

\" 네..말씀하세요\"

\" 저기..창피한데..\"

\" 우선 여기는 사주 보는 곳이니..사성을 넣어야 해요

  년월일시를 불러 주세요\"

\" 그렇지요..태어난 시간은 모르는데..\"

\" 시간을 알면 좋지만...그럼 주무시는 모양을 보고

  이야기 하지요\"

 

태어난 시를 모를때는 십이지의 자는 모습과 본인의

자는 모습을 대비해서 시간을 정합니다.

 

이러저러해서 사성이 다 풀어졌습니다.

남편과 일찍 사별 하셨습니다.

문과 간이 들어 있으니..교직쪽 아니면 나랏밥을

먹는 일을 하셨겠습니다.

성격은 온순하고 차분하나..뚝심이 강해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성정이 있으니..

사시는 동안 많이 외롭고, 속 눈물을 흘리셨겠습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더니..입을 여시네요.

 

네..맞습니다.

 

남편도 선생님 이셨고, 본인도 선생님 이셨습니다.

사는 것은 그냥 그냥 그럭저럭 잘 살았는데..

외로움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다며..눈시울이 붉어지십니다.

 

그런데요..

제가....입을 열지 못하고 망서리십니다.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저기..제가 남자가 또 있나요?

지금..남자친구가 있으세요?

예..

 

여기서 제가 역설을 할게 있습니다.

여자는 절대 혼자 살지 못해요.

몸은 혼자 살 지언정..

절대 마음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여자 입니다.

아무리 세상 고난을 다 겪고..남자라면 치가 떨리는

아픔을 겪었어도..여자는 혼자 살지 못해요.

늘 마음속에 속정 깊은 남자를 원하는 것이 여자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못 되게 굴어도..

처음 첫날밤 서로 사랑하는 장면을 안고

사는 것이 여자이며,

남자가 아무리 때리고 구박해도..

추운날 따뜻하게 안아주면..

그 애정으로 또 살아지게 되는 것이

여자 입니다.

못된 놈 ..나쁜 놈..죽일 놈..욕을 입에 달고

살아도..그 놈이 아프면 제일 먼저 속이 상해

눈물 흘리는 것이 여자 입니다.

 

정말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는지..

그 여자의 속마음이 그 남자의 품을 떠나지 못합니다.

고진 백살을 먹어도..

 

다시 손님은 말을 잇습니다.

아내와는 6년 전에 사별했데요.

자손들은 다 잘 살아요.

 

직업은 요..

구두방을 해요. 그런데...제가 염려스러운 것은..

혹시 나랑 살다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나 해서..

 

고운 피부 위로 눈물이 짖어집니다.

천상 여자지요.

 

이 사람 만나면서부터 내가 기분이 참 좋아요.

참 젊은 사람 앞에서 별 말을 다하네..

 

웃어 드렸습니다.

 

자상하지도 않고, 무뚝뚝한데..내 말도 잘 들어주고..

애들 이야기하면 자상스럽게 어떡해 하라고 잘 일러줘요.

편하고, 고맙고 그래요.

 

네..고개가 절로 끄덕입니다.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상대는 말을 해야 할 상대입니다.

당신과 말이 통하고, 의견이 통해 서로 장단 맞출 상대..

힘이 있어 돈을 벌겠어요.

애 낳을 걱정을 하겠어요.

그저 둘이 입씨름하면서 노후를 정리하는 것이지요.

 

손님의 걱정은 이런 상대가 먼저 가실까..

새삼스럽게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한번 보내 본 속이라...그 어떤 누구의 속 보다도

더 쓰리고 아프다는 것을 아시는 것이지요.

행여..남자 잡아 먹는 팔자 지녔을까봐..

젊은 청춘에는 애들만 보고 살았는데..

애들도 다 짝지워주고 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다면서..

두런두런 말씀이 길어지십니다.

 

그런 팔자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삼재 넘어 가거들랑 그때 합치세요.

올 넘어가고 내년에요.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에 환한 빛이 이러집니다.

 

합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

사별한 후의 만남이란 서로 소중한 부분을

더 잘 아는 것이므로..인생의 종착역까지..

좋은 반려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았던 감정 하나로 십년을 살고..

이십년을 살고..마지막까지 그 애뜻함을 간직하고 갑니다.

 

첫날 밤..우리 신랑이 옷고름을 풀어 주는데..

가슴이 어찌나 뛰던지..그리고 그 저고리를 살포시 개어

놓는 거야..내일 기분 좋게 입으라고..ㅎㅎㅎ

 

머리 희끗한 어르신의 너스레가 메아리 됩니다.

 

여자는 그 기분으로 삽니다.

하루 내 맘 알아준 기분으로..

하루 내 살 다독여준 기분으로..

백날 서방이라는 빽으로..

그 많고 많은 세월의 첫 하루를 위해..사는 것이

여자인듯 합니다.

 

별덕스런 날씨가 이제 공중제비를 끝냈네요.

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

마음은 벌써 집에 있습니다.

 

저녁에 맥주랑 오징어랑 사놓고..

얼른 오시요..한잔 하십시다.

왠일...이라며.

눈가가 자작해서 다가올 남편이 떠올라..행복해지네요.

 

여자의 꿈은 이렇게 소박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