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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는 딸.


BY 2006-09-27

저녁이 되면 손톱 사이에 먹물이 번지어..

왠지 손이 추해진다.

자판을 두들기고, 글씨를 써야 하니..

손톱 밑이 아플 정도로 바짝 자른다.

문득 오늘 따라 손이 참 고맙다.

\' 손아 너도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손으로 나왔느뇨.. 딱한 것..\'

푸념하며 내 손을 스스로 어루만져 주었다.

 

잘 아는 언니 이야기를 하겠다.

인연이 깊어 종일 수다를 떨어도 할말이 퐁퐁 샘 쏟는다.

\" 그래..요번에 미국 가니까..기도 잘 해줘\"

\" 알았어요\"

\" 양말도 속옷도..이불도 새로 사야하고..

  머리가 시끄러워 죽겠어\"

\" 죽긴 왜 죽어요. 언니 자랑하는 거지.\"

\" 딸 보다 내가 더 들떠 있어 \"

\" 그런거 같애 \"

딸을 미국 유학 보낸다.

예쁘고, 장학생이고, 스스로 유학까지..참말 잘난 딸이다.

 

\" 보내면 심란하겠네\"

\" 뭐가 심란해..속이 다 시원하지..\"

\" 한동안 또 보고 싶어 매일 우는 거 아니야 \"

\" 울긴..00이도 안우는데 내가 왜 울어\"

\" 그래..안우나 보자..몇칠이나 밤을 새려나..\"

\" 속이 다 시원하다 \"

속심이 아닌 줄을 알고 있는 나는 의연한 척 하는 언니가

더 안스럽다.

 

글쎄..내 뱃속으로 나은 자식과 남의 자식의 차이가 무엇일까!

 

직장 잘 다니는 아들 둘이 있는 언니는

막둥이로 업둥이 딸을 맞이 했다.

벌써 이십이년전이겠네..

 

한밤중 내내 아이 우는 소리가 나더란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 인줄 알고..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그래도 모성의 본능 이었는지..느낌이 이상 하더란다.

그때 차인벨이 울려..나가 보니..동네 아줌마 몇명이

아이를 들고 서 있는 눈초리가..왠지 차갑더란다.

이사온지..삼개월 조금 넘어서 였으니까..

 

대문앞에 있던 아이는 배꼽도 안 떨어진..

제대로 씻기지도 안아..애기 몸에서 쉰내가 폴폴

나는데..그냥 눈앞이 노랬단다.

벌려진 대문 앞이 언니집이요..온 책임을 언니에게

전가 하듯 아기는 언니 품에 안겼다.

 

\" 다른 생각은 안들고..혹시 어디가서 낳아 가지고 와서

  이런 생쇼를 하나..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한참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단다.

한숨만 나오더란다.

영아원으로 보내자니..인생이 불쌍하고..

키우자니..형편은 뻔하고..

덜렁 애기만 있고, 하늘 본게 몇일 인지..이름은 있는지..

아무것도 확인 할 길이 없었단다.

 

본능인지 언니 가슴을 마구 비비더란다.

아마 모유를 먹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세월이 말해 주는지..정이 말해 주는지..

도저히 남의 손에 줄 수는 없고..나섰다가도 그냥 돌아 오고..

내 애도 못 키우는 판에 업둥이가 왠말이냐..다시 돌아

영아원 앞을 수십번 돌았단다.

 

그런데..그 기간동안 애기가 해죽 해죽 웃더란다.

도저히..사람이 할 짓이 아닌거 같아..가슴을 몇번씩

내리쳤단다.

아..이 무슨 팔자인가!

 

그러는 동안 육개월이 홀딱지나고..

편지 한통이 날라 왔단다.

자신은 미혼모이며, 애기를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몇년몇월몇일몇시에 낳았으며..

잘 부탁합니다. 라는 사연이 담겨져 있더란다.

 

\" 참 점집도 많이 다녔다. 혹시 이 집 씨인가해서..\"

 

아직도 의문문 이라며 남편을 약간은 의심한다.

점잖은 아저씨는 피식 웃는다.

더불어 나중에 인연 되걸랑..늦둥이 하나 봐야겠다며

농을 늘어 놓으신다.

 

이런 사연으로 딸과의 인연은 시작이 된 것이다.

머슴아만 둘 있는 집에 딸은 꽃과 같은 존재다.

뽀뽀하고, 여우 떨고..

오빠 둘 싸우면 해결사 노릇을 하고..

아빠 출근 할때는 구두 깨끗이 닦아 놓고..

언니 아파 누워 있을때 물이라도 떠다 주고..

학교 가서 인정 받지..

집에서 애교 덩어리지..

버릴게 없는 딸이다.

 

근데..정말의 성정은 심었던 것은 언니였다.

바른것 그른것..그리고 해야 할 것..안 해야 할 것..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어쩜 그렇게 반듯하게 일려주는지..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무뚝뚝해도 밑면에 깔린 사랑을 묘하게 전하다.

 

화가 나면 화 대신 메모를 준다던가..

잠자는 아이 머리 맡에서 기도하는 한다던지..

간혹 노래방에 데리고가서 같이 신나게 스트레스 풀던가..

이렇게 가족은 조화를 이뤘다.

 

헌데 한번은 묻더란다.

왜 내 혈액형은 다르냐고..

그 일로 나와 인연이 되어..

딸과 언니..나는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 딸이 큰 나라로 간다.

한동안 언니는 많이 힘들것이다.

\" 그때 혹시 고양이래도 해꼬지 했으면 어쩔뻔 했어..

  그것만 생각하면 아찔해\"

웃었다.

\" 얘..내 뱃속으로 낳았어도 그렇게 이쁠까!\"

당연하지..

 

난 인연을 믿는다.

믿음이란 또 다른 신앙을 창출해낸다.

사람을 변화 시키고..

사람을 어울리게 하며..

사람을 올바르게 만들어 주는 힘을 갖은 것이 믿음이다.

 

언니가 믿었던 것은 인간대 인간의 애정을 믿었던 것이다.

비록 한방울의 피도 썩이지 않았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재탄생을 믿었던 것이다.

 

우리 인생엔 무엇이 와서 우리를 놀라게 할지.

무엇이 우리를 깨닫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살아 있는 활력은 세월이 흘러 결과로..

인과 응보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인과 응보..참 깊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