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마지막날
온가족이 고추대를 뽑고 밭을 새로 가느라 진땀을 뺏습니다.
푸르른 오월에 우리는 부푼 설레임을 품고 고추 모종을 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고추를 보며 마냥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진영이와 막내 아현이 까지 온가족이 고추를 심기위해 손을 맞잡았고,
아현이 새끼 손가락 만한 고추가 달리기 시작했을때는 마냥 신기해 하며 밭고랑을 오고 갔었는데...
장마비가 계속 되면서 병이 돌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온 밭으로 번져갔습니다.
탄저병이라고도 하고 문둥병이라고도 했습니다.
다들 약통을 들고 사는데, 우리만 환경 농업 한답시고 약은 근처도 가지않았는데
천주나 되는 고추가 시름시름 말라 갈때는 속이 타서 더이상 견딜수 없어 농약방을
찾았습니다,
만육천원어치 세종류의 약을 사다가 알려주는대로 3회씩이나 살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병든 고추를 손이 닳도록 가위질을 해가며 겨울 말린게 두가마
정도입니다.
고추는 물에 약한데 우리 밭이 너무 습했던게 치명적이었습니다.
하얗게 말라버린 고추밭을 볼때마다 한숨이 나와 더이상 견딜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총동원해서 인당 150주씩 뽑게하고,말목도 정리하며 살균하고
비닐 포장도 말끔히 걷어냈습니다.
모종 값 10만원에 약값 ,비닐 포장 값,돼지거름,석회비료 그리고 우리 가족의 노동력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 엄마 , 고춧가루 사먹는게 낫겠어요..."
" 아무리 불확실한 투자라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잖냐?-만약 엄마가 너희들 장래 희망이 불확실하다고 포기하고 투자를 안할수 있겠냐?-농사는 자식 키우는거랑 똑 같은거란다-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 올 학기말땐 얼마나 점프할래? "
아쉬움과 아픔을 뒤로하고 저녁을 서둘러 준비했습니다.
마당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노릿노릿하게 구워지는 고기를 보며 낮동안 시름은 언제였냐 합니다.
밥상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하루만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을까?
" 우리 농사가 5천평만 되어도 내일 출근 걱정 안하겠지! " 하며 남편은 소주 한잔을 꿀꺽 마십니다.
몸은 고되고 바쁘지만 그래도 살만한것 같습니다.
오손도손 얘기 나누며 밥상머리에 마주 앉을 가족도 있고,
고추는 실패했어도 가을을 기다리는 콩밭과
파릇하게 살을 돋우는 배추밭과
또다시 밭을 일구려는 희망이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