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연님의 '우리 시대의 아줌마란!' 을 읽고...
칼럼니스트 김 연씨는 우리 시대의 아줌마들은 그 어디에서도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들인가?' 라는 여운을 남기면서 아줌마 사진전을 다녀와 뒷맛이 개운치 않다 고 했다.
경멸과 측은함, 내지 슬픔마져 느끼는 이 시대의 아줌마들 속에서 이미 아줌마인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면서 말이다. 어떤 홍보물에서는 아줌마를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서 뻔뻔하고, 주책스럽고, 몰상식한 집단이라고 말한 것도 읽었다.
크게 웃는 것, 화장을 짙게하는 것,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를 입고. 밥을 많이 먹고 수다떠는 것, 직장에 계속 붙어있어 싱싱한 젊은 여성들을 사회 진출을 못하게 가로막는 걸림돌, 정도로 생각되는 아줌마! 바퀴벌레 취급을 받으면서 심신의 긴장이 풀려버린 여인들.
백화점 세일 때 푸라스틱 바가지 하나라고 더 얻으려고 기를쓰며, 속터진 만두처럼 품위를 잃고, 백화점 시식코너에선 가족을 다 거둬 먹이고, 식당 밥그릇에 아이 오줌까지 뉘일만큼 뻔뻔하고, 지하철 빈자리엔 칼루이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가 앉고, 속치마가 보이건 말건 상관없이 입벌리고 코를 고는 아줌마! 게다가 과소비, 환경오염, 과외주범, 부동산투기, 심지어 고관 옷로비 사건, 치맛바람 등등 아줌마! 그 이름이 어쩌면 이 사회를 책임져야 할 주범인 것처럼 불명예스런 주목을 받는다고 했다. . 상당부분 부인할 수 없는 아줌마인식에 대해 억지로라도 변명하고싶은 마음이다. 눈만 뜨면 아줌마들을 만나야 하고, 살 비비며 함께 살아야 할 아줌마들에 대한 연민이 곧 자신에 대한 나르시즘이기도 하다. 내 며느리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던 날 나는 첫마디로 "수진이 아줌마!" 라고 불렀다.
겨우 25세인 그녀는 피식! 웃으며 시어머니의 농섞인 호칭에 알아들을 듯 어색한 웃음을 웃었다. 황홀한 처녀시대를 마감하는 새로운 생애에 대한 도전을 암시하는 의미있는 이름이 '아줌마'였다. 우리 집에 조심스레 드나들던 아들의 연인의 자리에서, 당당하게 중전마마로 받으들여지는 순간이었다. 이 집의 모든 것. 즉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위임하는 호칭으로 그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이름이 바로 아줌마였던 것이다.
아줌마! 멋진 이름이다. 그는 한 가정을 책임지고 한 남자의 행복을 좌 우할 귀중한 호칭이다. 아줌마는 이 사회의 핵인 가정의 중책을 맡고, 핏줄을 이어나갈 생명계승의 명령을 받은 명예로운 호칭이다. 사전에 보면 아줌마란 부녀자에 대한 통칭이지만, 아버지 항렬의 여자에게 붙여주는 단어이다.
즉 어버이란 의미를 간직한 단어인 것이다. 누가 아줌마가 되지 않고 진정한 생명의 신비과 가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아줌마라는 이름 속에 숨은 고난극복의 억척스런 생존력을 감히 누가 과소평가 할 수 있으랴. 내 친구가 미국 이민을 갔다. 이민살이의 설움을 밤새워 눈물겹게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은 homesick이 걸려 저녁마다 지는 해를 쳐다보며 청승맞게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점점 병이 깊어가고 가정에 대한 책임마져 감당할 수 없게 된 남편을 위로하며, 잔디깍는 기계조차 없어 바느질 가위로 잔디를 깍으면서, 세탁소에 나가 다림질도 하고, 눈물겨운 세월을 극복했다. 엘리트교육을 받은 자부심을 빨리 내동뎅이 치고 삶의 현장으로 발 벋고 뛰어 드는 아줌마! 억척스런 생존의 강인함을 보여준 이 아줌마!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더구나 자식들을 책임지기 위한 희생은 이 사회를 버티어낸 구심력이 아닐는지...다음으로 아줌마에 대한 불만은 주로 외모가 낡아지거나 후패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에겐 수밀도(水蜜桃)처럼 촉촉한 눈물이 있질 않 은가? 가족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듯한 이면체면 가리지 않는 그들의 밥맛 떨어지는 끈적거림도 있지만, 최근에 모tv의 칭찬합시다! 라는 프로 에 나왔던 한 여인의 삶을 보라! 아줌마의 매력을 미끈한 다리의 매력이나 빼빼로 같은 가는 허리로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화장끼 없는 주름진 밝은 미소를 누가 추하다 하겠는가? 마더 테레사의 거룩한 미소를 아줌마 같다고 추하다 할 것인가? 그리고 아줌마들의 자신감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들은 통달한 자유로움으로 삶의 대담성을 드러낸다. 누구에게도 위선할 필요가 없고, 오직 실용성과 낭만을 조화시키는 특유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시장바닥에서 콩나물 값을 깍는 지독함과 호텔에서 7000원짜리 커피를 마셔대는 폭넓은 조화를 도모하는 자신감 말이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이며 누이같은 아줌마들을 그 누가 감히 고물자동차 보듯, 뻔뻔한 정치가 얼굴보듯 비웃으랴. 더러운 곳을 훔쳐내는 걸레를 든 그녀의 거친 손마디를 누가 세상을 더럽힌 주범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줌마 그들은 지구가 멸망할 그 순간까지 꿈적않고 버티어낼 안정감과 무섭도록 질긴 실용성과, 뚜렸한 주관을 가진 대담성으로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며 더럽고 부끄러운 역사를 씻어내는 정화수가 될 것이다. 아줌마! 즉각 어머니의 품속처럼 보드랍고, 질경이꽃처럼 수수하고 강인한, 가까운 이름! 그래서 너무 만만해 보였던 것은 아닐는지...
아줌마 향수에 젖는 이현이 할머니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