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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바람은 무죄?


BY 연화자 2000-04-13

아마도 이 공간을 다시 또 찾은 것은 수다가 그리웠을까요?
친구가 그리워서겠죠?

다른 글을 보니 오늘 출근하신 남편분들이 비단 우리집뿐만은 아니더군요. 남편은 엄청 바쁜 벤처라 그야말로 밤낮으로 바쁘기 그지 없습니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거나, 신문에 나는 사람들처럼 코스닥에 상장되어 돈이 -억-억 하지도 못합니다. 입버릇처럼 늘하는 말이 우리도 언제가는 억억한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그말들을 때마다 지겹기 그지 없습니다.
돈이 필수악이라, 생활에 필요는 하지만 억억할 만큼 돈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두다리뻗고 편히 자는 것도 , 아파트살면서 문 제대로 안 잠그고 다니는 것도 , 어딜가던지 편안하고 베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모두 별로 가진 것이 없어 불안하고 어쩌고 할 것도 없기 때문인데
돈이 갑자기 많이 생겨 그것을 관리하느라 신경을 쓰야 할 형편이면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생기기 마련이지 않을까요?
하여간 돈은 별로 탐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탐나는 것이 있습니다.
오손 도손 즐겁고 정감넘치는 가정의 분위기입니다.
저희집이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일요일 시간이 생기면 제가 김밥을 싸고, 남편을 장소를 물색해 인근 산이나 절로 잘 가는 편이고, 집에 있는 동안에는 제가 남편에게 종알종알 잘도 떠들어대는 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근본적으로 남편이 너무 바쁘다는 겁니다. 물론 일때문이지요.
저나 남편은 부산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이 곳 경기에 온 것은 남편직장때문에 4년전 이었죠. 큰아이 낳고 두어달 지나서 이사를 와서는 여기서 연년생을 또 낳고, 애 키우느라 바쁘고 정신없는 가운데 , 워낙 멀리 떨어져있으니, 도와줄 이 하나 없어서 스스로 하다보니 김치는 제법 담는 솜씨가 되었고, 음식솜씨는 잘 늘더라고요. 보름이면 오곡밥도 지어먹고, 여름에는 식혜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으니 정말 시원하데요. 복날이면 어김없이 삼계탕빠지지않았고, 동지땐 팥죽이요, 겨울엔 호박전이나 호박죽도 자주 해먹다보니, 무슨 날이라는 날은 꼭 챙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김장도 물론 스스로 해야 했죠.


제가 살림에 재주가 생긴 것을 남편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사실, 제 남편은 저보다 한살 연하라, 우리 연년생 남아 두녀석들보다도 어쩔땐 더 버겁기 그지 없습니다. 아이들은 습관을 들여가는 과정인데, 남편은 그것이 전혀 안됩니다.
아이들이야 매를 들면 무서워서 금방 엄마말을 드는 특효약이라도 있는데 남편은 제가 모든 것을 챙겨줘야할 형편입니다.
삼형제중의 막내인 남편은 왜 그리도 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시키기만을 좋아하는 지, 처음엔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도리라 생각하고, 이래라면 이러고, 저래라면 저래서 남편이나, 저나 별로 불만이 없었는데, 제가 반기를 점점 들기시작해서 이젠 정말 손을 떼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러분은 이 심정을 이해할까요?
제가 초반에 길들이기를 잘못했다고, 선배주부들이 조언을 해주더군요. 그러니, 사랑에도 지혜가 필요하다고 깨달은 지금은 너무 늦어버린 것같더군요.

연년생남아둘을 놓아 객지생활하려니, 몸조리고 뭐고 제대로 될턱이 있나요? 피곤했다하면 이곳저곳 온 몸 구석구석 사정없이 쑤셔댑니다. 오늘도 남편없이 애둘 (5세,4세랍니다)을 데리고 경기도 박물관엘 좀 다녀왔더니, 너무 쑤시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이 곳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애들이 좀 순하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운동신경만 남들보다 월등하게 발달하여 같은 또래들 활동량의 2-3배를 움직이는 애들이라, 애들에게 엄마노릇좀 한답시고,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항상 파김치가 됩니다.

그런 틈바구니속에서, 요즘 제 마음에 봄 바람이 불어서일까요?
왜 이렇게 마음이 적적하고 위로받고 싶고, 나도 한 번 공주가 되어보고 싶고 그런지, 이 마음 가눌 길 없네요.
부산에 두고 온 바다와 산도 그립고, 친한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고, 친정식구들 -우리아이들에게 한정없이 잘해주는 친정식구들도 보고싶고, 바람이 나려는지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고 언덕배기에 척척늘어진 개나리 노란 빛이며 진달래 분홍물이 다 제마음 같고 그럴까요?

너무 바쁜 남편은 스스로도 힘들겠지만 , 제가 이렇게 몸이 안좋고 한 날 만큼은 일찍 들어와서 애들과 좀 놀아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아무 잘못도 없는 남편이 괜실히 원망스럽네요.

제가 남편을 붙잡고 울기도 많이 울고, 술을 입에 못대는 제가 병나발을 불어도 보고 힘든 심정을 호소한 적도 여러번이지만, 근본적으로 남녀의 정서가 너무 차이난다는 결론만을 얻은 채 한번도 남편에게 따뜻한 말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요일 출근도 좋고 야근때문에 집에 못들어 오는 것도 다 좋은데 , 한번씩 제 얼굴봐서 뭔가 좀 아니다 싶은 날은 "힘들었지"한마디만 해달라고 누차 부탁을 했는데도, 경상도사나이의 무뚝뚝하고 무딘 성격탓인지, 그 말한마디 한번을 못해주더라고요.
그러니 제가 남편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을까요? 큰 사고 안저지르고, 돈 낭비안하고, 별탓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 그자체만으로 만족할까요? 그보다 못한 사람 엄청많으니까요?

글쎄요, 제가 바람이 날려고 그러는 지, 오늘처럼 이렇게 온 몸이 쑤시고, 아픈 날은 그저 누구라도 좋으니, 따뜻한 말한마디해주는 이 간절히 그립네요.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정말 찾아가서, 이수다저수다 할 것없이 왕수다떨고싶고 그런데 여러분, 누가 제 심정이해하시는 분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결혼생활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