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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생각하면 눈앞이 앗찔해진다


BY 김현규 2000-04-28

갓 시집와서 얼마 안된때의 이야기다
난 만혼이라 할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지만 친정집에 별다른 아이들이 없던지라 난 나이만 먹었지 아이처럼 생각고 아이처럼 행동하곤 하다가 막상 시집을 오고 보니 손에 익지 않은 살림살이랑 어른앞에서 하는 행동거지 하나 하나가 모두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특히 시외가의 시외숙모님 앞에만 가면 왜그런지 주눅이 들고 어렵기가 그지 없었다. 어쩌다 집안일이 있어 방문하는 일이 생길라치면 늘 불안하고 신랑 눈치만 보며 빨리 집으로 갔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아마 신혼의 겨울이었던것 같다. 마침 시외숙모님 회갑이 되어 시외가엘 갔을때였다. 겨울이어서 손님들께 대접할 고추가루 넣어 발갛게 끓인 국이랑 감주가 부엌에서 똑같은 크기의 국솥에서 끓고 있었다. 난 젊은새댁이라 그냥 방에 가만 앉아 있기도 쑥쓰럽고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마구 두손 걷어부치고 할 만큼 주변머리도 없는지라 눈치만 보다가 손님들이 드시고 난 상치우기를 거들게 되었다. 남은 음식이랑 모두 제자리에 도루 넣고 손 대지 않은 국은 국솥에 붇는다든지 하는 일을 했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아차 실수... 뚜껑을 열면 커다란 솥에서 올라오는 김때문에 어느것이 국 솥이고 어느것이 감주솥인지 순간적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찰라 나도 모르게 감주 솥에 고추가루 섞인 국그릇을 부어 버린 것이었다.
붇는 순간 아차 실수다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가 찼었다. 이노릇을 어찌해야 한다지! 난 그만 울고 싶었다. 괜히 감주 솥옆에 붙어서서 보글 보글 끓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감주를 노려보곤, 것두 아무도 있나 없나 눈치까지 살펴가면서 흐드러진 파조각 하나 올라오면 국자로 얼른 건져 내고 또 무우 조각 하나 올라오면 건져내고 고추가루가 깨알같이 작은것이라도 올라오면 하나 건져내고 이렇게 하길 10여분 아무래도 큰것들은 건져 올릴수 있어도 가루로 섞여버린 그많은 고추가루를 건지는덴 한계가 있었다. 난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그만 남편을 졸라 소리없이 집으로 와버렸다 . 그 많은 감주를 그후 다 어떻게 했었는지 그후에도 물어보질 못했었다 그리고 이제 내나이 쉰을 넘어버렸지만 아직도 그때 그일을 고백 못하고 말았다. 룰론 이제 남편에겐 말했지만 지금도 시외가엘 갈때면 그일이 생각나고 난 괜히 죄스런 마음에 아직도 시외가가 그리 편한곳이 못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고백하는 것이 옳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