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켰다. 글쎄 미국 산 지 십년이 넘었지만, 뉴스를 틀면 웬지 해외토픽에 나오는 남의 나라 이야기 같고, 골치 아픈 시사용어에 총기논란에 골치가 아파 아예 채널을 E채널이라는 패션 및 연예계정보 방송이나 집안 장식과 개조 전문방송인 H&G 채널등에 고정한다. 실은 생각하는 아줌마가 아닌 보고 즐기는 아줌마라서 그럴테지만.
일전에 그 E채널에서 란제리 특별방송을 한 적이 있다. 란제리라면 불어이지만 한국에서도 외래어로 그냥 표기하고 우리 눈에 쉽게 띄는, 백화점이나 잡지, 광고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여성속옷류, 특히 실크등의 고급소재를 사용하거나 장식이 많은 밤을 위한 특별한 속옷등을 지칭한다.
화면 가득 가득 늘씬한, 그야말로 구등신 미녀들이 아슬아슬한 브라에 팬티를 걸치고, 또는 진짜 선녀날개 같은 나이트 가운을 걸치고 나오는데 절로 침이 꿀떡꿀떡 넘어가는거다. 빵빵하게 터질 것 같은 그 아름다운 몸매에 걸친 차라리 환각적인 작품들은 몇백불을 호가하는 것도 있단다. 가끔 샤핑몰에 나가면 빅토리아즈 시크릿이나 할리우드 뭐라는 란제리 전문매장을 힐긋거려 보지만, 이 몸매에 윈도우 가득 메운 모델의 뇌쇄적인 몸매와 시선에 주눅들어 감히 매장안에 들어 서지 못한다. 그리고는 우편배달되는 광고책자의 미녀들을 보며 거의 포르노 사진의 환각마저 맛보는 거다.
어쨌거나 이 날의 주제 또한 미국인들이 즐기는 논쟁에 걸맞게 란제리 찬반론을 이끈다. 물론 방송사의 성격상 그 결론은 뻔한 여성미 예찬론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먼저 란제리 업체의 사장 인터뷰가 소개된다. 그녀 또한 마치 전직 모델인양 그 육체적 아름다움이 눈부시다.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자사의 상품이 여성의 자긍심에 지난 80여년간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자랑한다. 곧이어 성치료전문가인 여성 심리학박사가 소개된다. 그녀는 항변한다. 란제리를 입고 아름다운 몸매를 흔들거리는 모델이며, 장사속이며 다 좋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그것을 보며 환상과 착각에 빠져 모든 여자는 그런 속옷을 입을 만큼 몸매가 빵빵해야하고, 또 그 빵빵함으로 섹시함이 인정받고 그렇지 못할 경우 남자로부터 당연히 사랑 받지 못한다는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을 심어 주고 있는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 트러블은 이러한 란제리류의 광고에서부터 기인할 수 있다는 전문가다운 지적이었다. 헌데 이를 어쩌나? 그녀의 미모가 앞서의 여사장님보다 뒤처지는 것을. 잠시 나의 아주 속물적 판단이 스친다-아이구, 저 여자가 지 미모가 빠지니까 배가 아파 저러나 보다.
또 얼마전에는 여성 속옷의 변천사라는 특집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비비안 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유모 할머니가 발로 버티고 조이고 하던 그 엄청난 코르셋은 물론이거니와 십자군 원정당시의 정조대, 지난 세기의 위대한 출발과 함께 등장한 브라며, 결국은 요즘의 환상적 란제리까지 소개된 끝에 결론은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속옷을 입기 위해 투쟁해 왔다는 것이다. 남자를 위한 여자의 속옷이 아니라. 그랬던가?
요즘은 우리의 콩쥐나 팥쥐까지 야그에서 브라를 하고 나온다. 산신령과 콩쥐브라 이야기는 한물간 이야기라 꺼낼 필요도 없겠지. 여자는 무얼까? 결국 남자의 여자가 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야시시한 속옷을 입으며 게슴츠레 눈을 떠보며 애써 앵두입술을 만들어 보는 남자의 여자인가? 한때, 미인 선발대회는 성착취와 억압의 대표적인 산물이라는 대회주최의 반대 목소리들을 들은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못난년들이 배 아파하는 소리라고 비웃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지난 수십년간 인기를 고수하던 '바비인형'-한국에서는 마론인형이라고도 알려져 있다-이 그 아름다운 빵빵한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와 죽 뻗은 다리를 버리고 근자에 들어 성형수술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보통의 가슴과 엉덩이에, '박세리'의 다리마냥 건강함과 싱싱함이 가득 찬 그러한 튼튼한 다리와 베기바지, 배꼽 티셔츠등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금발의 백색피부에서부터 다갈색의 검정머리, 펑퍼짐하고 죽 찢어진 눈매까지 온갖 얼굴을 하고 다시 태어나고 있다. 왜?
많은 부모들이 남자애들에게는 호전적이고 좋게 말해 모험적이며 투쟁적인 오락프로그램을 사 준다. 그러나 과연 몇몇의 여자아이들이 똑같은 게임을 하며 자랄까?
남녀 성차별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존재한다.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나라는 교묘한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그 억압과 불평등의 현실을 덮어씌우는 거다. 어떤 이는 말했다. 하나님이 태초에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으니,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이며, 남자는 애써 여자를 보호해야 할 지어다. 글쎄올시다. 똑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 "여자는 남자의 부족함을 보완키 위해 갈비뼈를 통해 재창조된, 더욱이 남자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으로 빚어진 하나님의 더욱 완벽한 창조물이니라"라고. 요즘 미국에서는 동성연애자에게 결혼의 권리를 부여하는가하는 안에 대한 찬반 투표논쟁이 꽤나 어지럽다. 그 논쟁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누구에게나 인정돼야 한다는 진보적 인본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설득력 있게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이전에 과연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이 땅위에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 앞에 존재하고 있는지, 다른 형태의 불평등과 착취를 논하기 전에 벌거벗고 서 있는 남자와 여자 앞에 과연 평등과 존엄성이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너무 이야기가 과격하게 흐르는 것 같다. 물론 많은 시간들이 흐르면서 여자들에게 많은 자유와 존엄성이 주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룸살롱에 가는 아저씨들은 "다 그런거지"이면서 호스트바에 가는 아줌마는 불륜의, 인간말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미운거다. 아내앞에서 트림이며 방귀며 뿡뿡 껴 대면서 아내가 훔짓 급한 맘에 방귀 한번 꼈다고 교양운운 하는 아저씨들이 밉다. 지들은 꼭 한손으로 술을 따르면서 여자가 따를 때는 두 손이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남자 동창녀석들이 미운거다. 원래 여자는 여신마냥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여서 그런가?
나는 급진적 여성운동가는 아니다. 아직은 돌아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는 그냥 그런 여자이다. 헌데 나의 작은 반란이 나의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얘기하면? 여자의 겨드랑이 털은 미용상 흉하므로 제모해야 한다는 발상이 싫다. 아니 아저씨들은 듬성듬성 온갖군데 다 털복숭이 이면서. 목이 돌아가도록 그 자리를 헤집고 면도기를 들이대거나, 제모제를 바르고 신경쓰는 일이 싫다. 나는 여름이 와도 그냥 그렇게 원시적인 모습으로 감히 탱크탑 따위를 입을 것이다.
누가 그랬다지? 면도를 안한 불란서 여인의 겨드랑이를 보고 색다른 욕정을 느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