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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교예단


BY 임진희 2000-06-05

어릴적 시골 장터 부근에 천막을 치고 서커스를 공연 하면,나는

엄마를 졸라서 기어히 그곳에 갔다. 의자도 없이 맨 바닥에 앉

아서 그네타기 외줄타기 공 굴리기를 공연 하는 사람에게 정신

을 빼앗기곤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소녀가 무엇을 안다고

곡예하던 남자 아이에게 웃읍지도 않은 마음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이 다음에 크면 저렇게 멎진 곡예사가 되어야지..하고

입술을 앙 다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스릴 있는 곡예사

는 되지 못했어도 한 가정의 주부라는 위치에서 내나름의 곡예

를 한적은 있다. 사노라면 순간 순간 어려운 고비도 있기 마련

이다.남들이 보기에는 우리집은 항상 평온 하고 행복 할것이라

고 하지만 인간 세상 그렇게 순조롭게만 되어가지 않는다.

고생하는 사람에게 비하면 행복한 고민 이겠지만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다. 항상 좋기만 해서 짠돌이 정신이 부족

한 남편과 사노라면 내 나름의 현실 돌파 기질을 발휘하지 않으

면 안되었다. 원래 셈에 둔한 내가 통장을 들여다 보며 궁리

하게 된것도 순전히 남편 덕택이다.

일요일 오후 평양 교예단 구경을 갔다. 거금인? 오만원 표 두

장을 예매 했었다. 서둘러서 나갔지만 주차장은 이미 꽉 차서

탄천에 세워두고 들어갔다. 남편은 동춘 서커스를 보러 가자고

할 정도로 구경하기를 좋아 한다. 덕분에 이 나이에도 극장 출

입이 잦은 편이다. 그러나 나는 어릴적의 곡예사의 꿈도 사라

진지 오래라서 동춘 서커스에 가지않아 남편을 조금 삐지게

했다.새삼스레 평양 교예단에 관심을 가진것은 뉴스 시간에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그모습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기 때문

이였다. 그런 연유로 해서 거금을 썼던 것이다. 드디어 체육관

에 들어섰다. 한시간 반의 관람에 대비한 여성들이 화장실 앞

에 죽 늘어서 있었다. 해결하고 가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 해서

대열 뒤에 붙어섰다. 그러나,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떤 용감한 아줌마가 남자 화장실이 비었어요.

그쪽으로 갑시다. 하고 나아가자 몇 사람이 우르르 따라갔다.

나는 저쪽 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이미 공연 시간은 임박해 오고 있었다. 그래, 가는거야. 나도

뒤따라 갔지만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 보자 웬 아저씨의 시선과

부딪혔다. 엄마야. 쏜살같이 되돌아왔다. 앞서간 아줌마들은

다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내가 서 있던 줄 보다 훨씬 뒤로

밀려났다. 한번 이탈 했다 돌아오면 그만인것이 하나의 규칙이

리라.그러나 그후에도 용감한 아줌마들은 어깨도 당당히 남자

화장실로 돌진해 들어갔다. 다행인 것은 가까스로 공연 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음악이 울려 퍼지고 아름다운 평양

아가씨의 사회로 현란한 곡예가 시작 되었다. 잊혀졌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완벽한 세련

됨이랄까. 새처럼 가볍게 허공으로 비상하는 연기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것은 왜 일까. 이념도 사상도 정치적인 제스쳐도

배제 한체 ,단지 우리들에게 최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그 들에게 한없는 애정이 갔다. 우리보다 뭐든지 뒤떨어 진다

고 생각 했었는데 음악도 좋았고 기술도 앞서 있다고 생각 했다

손 바닥이 아플만큼 환호와 탄성의 시간이였다.그들에게 감사

의 박수를 보냈다. 우리 작은 아이가 최전선 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었을때 나는 아이에게 말했었다. 어차피 군대에 갈거

라면 후방보다 최전선 복무가 더욱 보람있을 것이라고...

그랬었는데 그때 몇 발의 총격전이 있어서 이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가. 별 문제 없이 끝났지만 놀랐던 가슴

잊혀지지 않는다. 원래 삼월 입대였지만 아들아이가 미리 앞

당겨서 한 겨울에 입대 했었다.불만 없이 군 복무를 마친 아이

는 복학해서 지금 삼학년이다. 가슴 미어지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인들 없겠냐만은 나는 아이 앞에서 되도록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면회도 몇번 가지 않았었다. 늘상 엄마에

게 전화 해서 먹을것을 부탁하고 있는 모임의 아이를 보면 우리

아이가 잘 견디었다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당연히 할일을 했

을 뿐인데 이렇게 느끼고 있는것 또한 옛날 어른들에 비하면

과잉보호 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자식들의 병역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는 부모도있는데 그것 역시 부모들의 지나친

자식 사랑의 댓가인 것이다.군 면제 받으려고 돈을 쓰는 부모

를 부러워 해본 적이 없다. 아이 역시 그런말을 한적도 없고..

그렇게 까지 해서 내 자식만 편하게 하면 결국 자식에게 그만

큼의 마이너스로 돌아온다고 믿는다.남편도 군에가는 아이를

걱정하지 않았었다. 전쟁중에도 가는데 이렇게 편한 세상에서

당연한 거라고...

전선을 마주하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평양 교예단은 모처럼

남북이 한 마음이 되어 박수를 칠수 있게 해 주었다.

어려운 이념이나 사상 보다도 인간으로 느껴지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 겠는가.

총을 든 통일이 아닌 평화의 통일을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