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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수...


BY 태그태그 2000-06-10






⊙김용택님의... 강 끝의 노래


섬진강의 끝
하동에 가 보라
돌멩이들이 얼마나 많이 굴러야
저렇게 작은 모래알들처럼
끝끝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작은 몸들을 갖게 되는지
겨울 하동에 가 보라
물은 또 얼마나 흐르고 모여야
저렇게 말 없는 물이 되어
마침내 제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청정한 산 그림자를 그려내는지
강 끝
하동에 가서
모래 위를 흐르는 물가에 홀로 앉아
그대 발밑에서 허물어지는 모래를 보라
바람에 나부끼는 강 건너 갈대들이
왜 드디어 그대를 부르는
눈부신 손짓이 되어
그대를 일으켜 세우는지
왜 사랑은 부르지 않고 내가 가야 하는지
섬진강 끝 하동
무너지는 모래밭에 서서
겨울 하동을 보라



***

섬진강... 여행 중에 차 안에서 지나치듯 본 게 전부지만
햇살을 머금고 환하게 웃던 섬진강의 모습이 뚜렷이 기억나네요...
그러고 보니 '섬강에서 하늘까지'라는 영화도 생각이 납니다.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섬강에서 잃은 선생님이
아내와 아들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고
자신도 섬강에서 그들의 뒤를 따라간 진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였지요.
밝은 미소와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그 강가에서 아이들과 예쁜 삶을 사는 시인 김용택님은
섬진강을 빌어 진정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간단치 만은 않은 이 세상...
한 계단 오르면 또 다른 계단이 보이고,
계단의 끝에 서면 또 다시 다른 계단의 시작이지요.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 안처럼
사람들에게 부대끼고 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구요.
속상한 맘에 흐느껴 울다가 문득 보게 된 거울 속에서
참으로 미워 보이는... 그렇지만 안쓰러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나를 그렇게 아프게만 하지는 않지요.
최선을 다해 살다가 '정말 너무해!' 하는 맘이 들 즈음
입가에 작은 미소를 담을 수 있는 행복을 주기도 합니다.
힘들게 계단에 발을 디딘 만큼,
지하철 안에서 다른 이를 배려하면서 자신을 지켜 세운 만큼요.

시인의 말처럼, 작지만 빛나는 몸이 되기 위해 돌은 숱한 세월을 굴러왔고
청정한 산 그림자를 품기 위해 물은 오랜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결국 우리네 사는 모습도 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거겠죠.
지금 우리가 힘들게 구르는 혹은 흐르는 노력은
절대 무의미 한 것도 무위로 끝날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창을 가득 메우던 그 부드러운 강줄기가 다시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속에서 빛나고 있을 모래알들과
품안에 맑은 산을 안고 있는 물줄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