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줌마컴에 어김없이 들어와서 좋은글 많이 읽고나니 포만감에 넘 좋다.
글을 읽다보면 정말 너무하는 시어머니 못된 며느리도 많아서 가끔은 글을 읽으면서 참 생(生)이 서글프고 안타까울때가 많다.
그래서 난 오늘 밝고 읽는 분들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글을 쓰고 싶어 울엄마(친정)와 울 할머니(친 할머니) 그니까 두분의 관계는 시어머니아 며느리겠죠.
이 두분의 각별했던 사랑얘기를 하고 싶은거다
울 친정엄마는 스물 여덟 늦은 나이에(그당시는 완존 노쳐너인 나이죠) 울 아빠(젊었을때 좀 망나니여서 그 마을에 사는 딸가진 사람들이라면 절대 딸을 안줄라고 했다고함)에게 줌매장이의 뻥튀기를 ?굅? 기양 얼굴한번 딱 보고 결혼하셨다고 한다.
울아빠는 8남매의 차남인데 (울 외할머니가 차남이라 부모님 안
모셔도 되겠다 싶어 그거 한가지는 맘에 들어서 보냈는디 막상 시집와서 보니 큰아들인 울 큰아버지는 다른집에 양자를 보내고 없었다 한다 워낙 힘든 시절이라 입하나라도 덜려고 남의집에 보냈다니 울엄마 초장부터 쏙았다)
그래서 무지하게 여성스럽고 착한 울엄마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았는데 울친할아버지 그니까 울엄마의 시아버지되시는 분께오서는 천하의 한량에도 노름꾼이라 거의 집에 안계시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지 않았던분 (그당시에는 왜 그리 남정네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정신못차라리는 분들이 많았는지 원....) 이라 울 할머니가 얼마안되는 땅뙈기에서 나오는 소산물로 근근히 연명했다고........
근데 울 할머니는 애석하게도 논일 밭일은 영 소질이 없어서 엄마가 집에 들어오시고 나서는 " 얘야 집안일은 몽땅 내가 할터이니 니가 밭일 논일을 하라고 맞바꾸기를 했는데 엄마는 속으로 넘 좋았다고 사실 부엌일이 더 힘들더라고...
쌔가빠지게 한다고 해도 표시도 안나고 식구는 좀 많아. 끼니때마다 챙겨먹이는게 넘 중노동이어서 은근히 속으로 차라리 들일을 했으면 했던차에 잘 되었다 싶어 그날부터 좋아라 하고 논밭을 누비며 신나게 일을 했다는데..
울 할머니 유난히도 정이 많은 양반이라 며느리도 친 자식처럼
맛있는거 하나라도 몰래 숨겨 두었다가 힘든일(당신이 워낙 들일을 못하니까 굉장히 힘든일로 생각하셨기에) 하고온 엄마에게 살짝 (다른 친자식들 몰래) 주시곤 하셨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엄마도 자연 점점더 정이 가고 웬지 모르게 시어머니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시어머니와의 잔재미에 친정어머니(울 외할머니)는 까많게 잊어버리고 사셨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드뎌 첫아이를 가지게 되었고(바로나) 할머니는 예전보다 더욱더 없는 살림에 보리한말 쌀한말을 읍내까지 맨발로 (신발 닳는다고 맨날 맨발로 다니고 저기 멀리서 사람이 오는게 보이면 얼른 신발을 꺼내서 신고 가셨다고 한다)
달려가서 메누리 군것질 거리를 사가지고 오셨다니....
지금의 시대를 사는 나로서는 참 신기한 남의 나라 얘기 같기도 하다.
엄마가 가끔씩 들려주시는 임신했을때 먹고 싶은거 못먹으면 아이가 짝눈이 된다고 할머니는 먹고싶은것 웬만한것은 다 구해다 주셨다고 한다.
엄마가 한번은 꽃게가 먹고 싶다고 하셨는데 당장 닭을 몇마리
가지고 가셔서 돈 바꿔서 꽃게를 한 광주리를 사가지고 오셔서 둘이서 부엌에서 실컷 배터지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뒤로 물려버려서 지금도 꽃게는 잘 안드신다
그리고 근 30년만에 처음으로 집안에 애 울음소리가 들리니 할머니와 울엄마의 사이는 더욱어 화기애애하고 절정을 맞이했다는데....(첫딸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닌 넘 좋아하셨다고)
내가 태어난후 엄마는 거의 날 안아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맨날 할머니께서 집안일 해가며 아이까지 도맡아 봐주시고 젖먹일때만 내주셨다고 한다. 그래도 울엄마는 섭섭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하긴 그 시절엔 워낙 먹고살기 힘들고 피곤한 육체적 노동으로 일관하다 보니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자기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열망이나 의식을 느낄 여유도 없었겠지.....
오히려 시어머니가 다 알아서 (밤에까지 데리고 주무셨다고함)
해주시니 엄마는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날건달이던 울 아버지께서 많이 사람(?)되었고 째지게 가난하던 집안이 엄마가 들어 오시고 난후 살림이 피고 좋아지셨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며느리 칭찬에 침을 튀기셨다나..
옛날분들께서 많이들 그랬던 것처럼 밥을 꼭꼭 씹어서 손주입에 넣어 주기도 하시는등 노다지 업고 있어서 다리가 휠지도 모르는데 라는 불만등도 있었다고 하셨지만 엄마는 지혜와 신뢰로 거의 환상적인 고부간을 창출해 내셧다고 하면서 여기에 실렸던 많은 고부간 얘기를 들려 드리면 참으로 안타까워 하신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일곱살 되던해에 할머니는 일찍 (61세) 세상을 떠나 버리셨단다. 딸도 아들도 아닌 며느리의 손을 꼭잡고서
그날 초상집에서 끝없이 꺼이꺼이 너무나도 서러운 울음을 삼키시는 울엄마를 보고 문상객 모두들 친딸인줄 알았다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후 울 부친께오서는 또다시 날건달로 돌아가시기 시작하셔서 엄마속을 넘 많이 태우셨다.
오히려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의 길은 가시밭길이 되버렸으니 시시때때로 시어머니 생각이 절로 난다고
지금도 울 엄마는 아부지땜에 많이 속상하고 그럴땐 늘 할머니 묘를 찾아가셔서 눈물찍고 오신다.
혹자들은 당신 아들이 속썩이니까 며느리 한테 미안해서 잘해 주셨다고 할지 모르나 어디 나쁜 시어머니라면 그런거 따지나
아무리 당신 아드님이 천하에 나쁜놈이라 해도 내새끼 내 아들은 무조건 잘났고 최고지.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 먹거리가 지천이고 편하디 편한 세상이 되었다 좋은옷 좋은음식에 다양한 문화혜택....
이런것들을 체험할때마다 엄마는 늘 할머니 얘기를 빠뜨리지
않으신다.
" 넘 일찍 돌아가셨다" " 불쌍한 양반이 남편복도 없고 자식복도없는 양반이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이런 좋은것들 다 해보시고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 하고 눈시울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