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말그대로 막간만 나면 쌈하고
쌈이 거의 생활화 되어있는 좀 웃기는 부부다..
믿지 않을란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지금도 잔 쌈은 셀수도 없거니와(아예 세지를 안한다)
1년에 한번은 니죽고 나살잔 식의 쌈을 한다.
아 참 작년에는 이 연례행사를 까묵었는지 빼묵었는지
야튼 못했다.
부부 쌈끝에 남편이 가출한적이 있는가?
당연히 없을꺼다.
근데 울집 성질 더러븐 1번은 간도 크게시리 했었다.
그것도 자그마치 4일씩이나...
완전 날 물로 본거다.
용서해줬냐고?
안해줄라고 하다가 지 인생이 불쌍해서 해줬다.
그런데도 감사하게 생각할줄 모르는 뻔뻔한 남자다.
나는 얼팡하고 메주인 대신 좀 순둥이과에 속한다.
반대로 울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기질로
성질이 더럽게 급한 대신 뒷끝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순둥이도 한번씩 발짝나면 겁나게 사나워진다는걸
아는 사람은 알꺼라...
보통땐 걍 투닥투닥 말다툼하다가 말지만 조금 센 쌈이 되면
경상도 토종 울 남편은 말이 통제가 안된다.
"니 죽을래?" 글카면
아이구-- 더러버서 꼬리를 내려야겠다 싶어
"됐네요. 됐어"
하고 말지만 진짜 내가 성질나면
"그래. 쥑이라. 쥑이라" 가 나온다.
울 남편<-- 말은 그리 하지만 물건 하나도 아까워서
못 부수는 사람이고 날 죽일려고 폼은 내지만
"아휴 저걸마..."
카다가 마는걸 뻔히 아니까...도통했지 뭐.
사실 쌈도 아주 사소한거에서 부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닌.....
그 역사적인 가출4일의 쌈때도 그랬다.
친정의 사촌뻘 동생이 좀 안좋은일로 공직에서 사직을 했는데
그전날 내 동생하고 얘기할때는 쥑일놈. 살릴놈 이라면서
그 사촌을 욕 해댔지만 막상 내 남편이 그 사촌에 대해
안좋게 얘길하니 뱃꼴이 땡겼다.
남편이 친정에 대해서 안좋은 소리하면
그것만큼 듣기 싫을때 없다.
(지가 내 친정에 해준기 뭐 있다고....)
요소리가 절로 나온다.
친정 사촌은 부하직원 잘못까지 책임을 덮어쓰고
사직을 했기에 욕을 하면서도 동정의 여지는 있었는데
남편은 무조건 결과만을 두고 얘길했다.
속으로
(자기 사촌같음 안저럴껀데...) 싶기도 하고
또 좀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속이 뒤틀렸는데
결정적인 말 한마디가 내 속을 확 뒤집었다.
"하여튼 처가 사람들 이상해"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처가를 싸잡아 얘기하는거 아닌가!
세상에 만만때때한기 처가가?
처가사람들 이상타니...처가에 정신병원 간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슴 내가 말도 안한다.
"아니. 들어보니 억울한 면도 있드라.
근데 그기 왜 처가를 싸잡아 도매금으로 집어 넣어요?"
발단은 그기서 부터 났다가 공 구불리듯 크졌다.
주거니 받거니 하든 음성은 점점 높아지고
"당신 집은 뭐가 잘났는데? 누구는 뭐 어떻고..."
평소에 섭섭하든 시집에 대한 얘기랑 조상까지 들먹이며
내가 일사천리로 대들자 화가 난 남편.
"이기 죽고 싶어 환장했나?"
그소리에 드디어 내 화가 폭발했다.
사실 경상도쪽 남자들 말투는-- 좋을땐 참 감칠맛 있고
박력있게 들리지만 한번 뒤틀리게 듣기 시작하면
무지 情 떨어지게 들린다.
"그래 죽고 싶어 환장했다. 어쩔래? 쥑이봐라"
내가 바락 바락 대들자 울 남편 차마 때리진 못하고
"너 죽을래" 소리만 연발했다.
"그래 죽을끼다. 한번 죽지 두번죽냐?"
나도 완전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와서 그동안 시집식구에
당한 안좋은 감정이 겹쳐서 서러워서 악을 써댔다.
시누이가 6명이나 있다보니 한사람이 한마디씩이라도 6마디고,
잘해준건 생전 빛도 못보고, 어쩌다가 본의아니게 잘못된건
도마위에 횟거리처럼 난도질 당했었다.
아무리 잘해줘도 시집 식구는 친정식구하고 달랐다.
마침 다음날은 토요일이라서 근무도 안하겠다
울어서 눈 부어봤자 이틀 놀면 담엔 괜찮을꺼고
그래서 울면서 악을 썼다.
성이 끝까지 난 울남편은
"애라이 오늘 다 부수고 끝장낼거다"
그러면서 두리번 두리번했다.
그때 울집엔 남편이 오디오광이라서
거실에 아주 성능이 좋은 마란츠 오디오 셋트가 있었는데
난 속으로 그걸 박살 내는줄 알았다.
이쪽 저쪽 두리번 하든 남편이 그 오디오엔 눈길도 안주고 방으로 들갔다.
(아이구 장농이나 내 화장대가 박살이 나겠구나.
부수고 싶음 지 오디오나 부수지 내걸 왜 뿌솨)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에서 후닥닥 나온 울 남편 손에는
크다란 프라스틱 휴지통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선 마루에 대고 발로 휴지통을 딥따 밟아 재끼는거 아닌가.
"다 뿌싸 버릴끼다" 를 연발하면서...
(흐흐흐. 그럼 그렇지. 당신 간으로 다른건 아까워 못 부수지)
차마 입으론 말못하고걍 찔찔 울면서 쳐다보고 있었드니
"그래 너그들끼리 잘 살어봐. 다 필요없어"
그러드니 부리프 케이스에 옷가지를 담고는 휭하니 나가버렸다.
"하이구 자기가 가긴 어딜가. 뛰어봐야 벼룩이지"
그랬는데 진짜 그날 안들어왔다.
(윽~ 이 배신감. 믿는 도끼에 발 찍킨다드니...)
처음엔 오기가 나서 이가 바싹바싹 갈렸는데 하루가 지나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묻기도 자존심 상하고...
이틀이 되니 속이 타고 입술이 탔다.
"뭐 이런 잉간이 다 있어" 하든 오기는 점점 줄어들고
"클났다. 어쩌지" 생각밖에 안나고....
그렇다고 찾으러 나설수도 없었고 설마 오겠지 생각했다.
요새처럼 휴대폰도 없었을때였으니까...
또 남편이 감히 외박한다는거 꿈에도 생각못해 봤으니까..
월요일 출근해서 남편 사무실로 전화를 했드니
아침에 전화로 하루 휴가를 냈단다.
"하이구 살긴 살아 있었구나"
첨엔 안심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무지 괘씸했다.
날 완전 엿 먹이는거 아닌가?
안보는척 하면서 신경은 전화기에 가있고....
나보다 애들이 더 안절부절 못했는데 속으론 나역시
애가 타면서도 겉으론 태연한척 애들을 달랬었다.
가출 4일만에 드뎌 남편이 돌아왔다.
속으론 눈물이 날만큼 반가웠지만 내 의지와는 반대로
차겁게 말이 나왔다.
"나갈려면 영 나가지 왜 들어왔어요?"
애들이 아빠를 부르며 마구 안기자 한번씩 안아주고는
손에 사온 과자를 나눠주곤
"이거 니 선물이다"
그러면서 크다란 봉투를 주는데 내가 또 예나 지금이나
선물에는 무지 약한 사람이다.
선물 소리에 간도 쓸게도 빼놓고 휠껏 돌아봤드니 젠장
오징어 하고 대구포 말린게 보인다.
(누가 이빨 운동 한다 했나?)
그담은 유카원칙에 의한 나의 증인 심문이 있었고...
남편은 맘도 달랠겸 동해 바다로 갔다가 내친김에 경포대와
설악산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너무 화가나서 내 버릇 좀 고칠려고 했다나.
"잘났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사실 오늘까지 쓰레기통이 한 몇개 더 부서졌슴을 솔직히
고백한다.
소리가 요란해서 부슬때 효과 만점이겠지 뭐.
부수면 난 또 담날 열심히 사다 놓는다.
1988년 10월 10일 귀싸대기 1찰 마즌 찬란한 역사도 가지고 있다.
(TV 에선 귀싸대기 맞는거 무지 멋있게 보이든데
마자보니 그거 장난이 아니드만...)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는건 올림픽 나든해 쌍십절(중국인 명절)
이기 때문이다.
(이참에 폭력 남편인거 공개 해뿌리야지. 히히)
근데 쌈도 애들이 없으니까 소재부족인지
아니면 나이 들었다고 기력 부족인지 큰쌈은 점점 안하게 되고
요샌 신바람나게 싸우든 그때가 오히려 그리워진다.
하긴 가출한기사 아직도 이가 빠싹빠싹 갈리지만......
님들.
난 고상하고 우아하게 폼재며 못살고 걍 무대뽀로 이리 산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