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34

겨울생각


BY 바늘이 껍질 2000-12-02

우리네 국민학교 방학 무렵이면 코끝이 짠!하게 추웠습니다.
누나가 떠 준 색실장갑은 콧물 닦느라 끝이 얼어 붙어 손가락을 비벼
댔고, 앞에 선 여자아이 빨간 ?갰셈?따악 때리고 그 자지러지는
얼굴에 ??거리며 도망다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몸이 얼기 시작하면 해군 함포처럼 튀어 나온 남의
집 굴뚝을 감싸안고 지저분한 얼굴을 부벼 대며, 그 온기를 우리집
아랫목인양 좋아라 웃곤 했습니다.
그때 겨울방학은 정말 길었습니다.
해는 짧지요,밤은 길지요,학원도 없지요,사방 널린 게 얼어 붙은
논바닥이니 두날 썰매 어깨에 메고 사정없이 노는 게 주업무였습니다.
2주일쯤 지나면 슬슬 지겨워지고 밥상머리에서 어머니한테 툴툴거리면
'그래.시골 친척집이나 며칠 댕겨 오거라'
책은 한 권도 없이 옷보따리만 들러메고 내려 가, 들로 산으로 토끼
잡으러 참새 잡으러 쏘다니고 논둑에 불 지피고......
집에 돌아오면 으레 어머니는 제 손에 덕지덕지 내려 앉은 껍질을
벗기시며 눈물이 쑥 빠지도록 혼줄 내셨지요.

그때 겨울은 참으로 겨울다웠습니다.
난방수준은 보잘 것 없었지만 데웠다가 식히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고, 주변의 사물들이 겨울나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책에
담겨 있는 어려운 내용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기특한 생각이 절로 들었고
소위 순리대로 사는 방식을 이미 배웠던 것 같습니다.

다시 2000년의 겨울입니다.
을씨년스럽던 옛날 풍경은 반듯한 두부처럼 빌딩과 아파트가 늠름하게
대신하고, 사람들은 따뜻한 욕조에 몸을 맡긴 채 달팽이요리 추어탕
붕어찜 스파게티를 떠올리며 식욕을 돋굽니다.
어찌 보면 이제 겨울은 동면하는 계절이 아니라, 스키 타고 수능 보고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절 즉 사람들이 주어가 된
계절로 둔갑한 듯 합니다.
그래도 한번쯤은 삽상한 겨울 공기를 들이 마시며 예전의 겨울을
음미해 보고, 고드름처럼 순수한 추억들을 차갑게 느끼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곰곰이 씹어 보자는 것이 제 소박한 외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