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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얘기나 쓸수있다고 해서 쓴 일기


BY zoo 2000-12-06

12월 6일 오후 4시의 일기.
계속된 신입면접, 테스트, 평가, 소장과의 의사교환, 밀려든 일...
방금 전에 남편회사에 전화했다가 오늘 출근을 안했다는 걸 알았다.
필경 어제 마신 술이 안깨서 집에서 처박혀있으리라.
생각하는 순간 속이 끓고 화가 났다.
수퍼맨이 아닌이상 그럴테지 암..
내가 그렇게 얘기해도 안 듣더니만, 결국에는 출근도 못하고 있는 꼴이란.
연주(5살, 딸)도 어린이집에 못가고 집에 있을 것이다.
하루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텐데.. 생각하니 속상하다.
어린이집에 연락이나 했을까. 이런게 한두번도 아니니 그쪽에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으련만 보육교사 보기도 챙피할 때가 있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자기 아이 맡기면서 멋대로라고...
어린이집이기에망정이지, 학교같았으면 어휴..
도대체 이 남자는 언제나 제대로 철이 들까.
나이가 먹어가면 그에 맞추어 행동거지가 어른스러워야 할텐데 언제까지나 철없는 행태를 보이려나 한심스럽다.
믿음직스럽고 신뢰할 수 있는 남편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저 좋으면 앞뒤생각 물불안가리고 낄낄대면서 어울린다.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 기분파가 아니라 줏대가 없어서 그러는 무줏대파라는 말이 맞을거다.
가정과 아내와 아이에 대해서 책임감있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술마신다고, 친구만난다고, 누구모임이라는둥 어쩌고 저쩌고 하는 온갖일에 관여해서 제 처지, 분수 모르고 시간보내지는 않을거다.
이런 사위를 보는 우리 엄마는 말만 안했지, 이미 속으로 끓여서 보다가 이제는 내놨을거다 한심무지로서니 하면서..
그렇지않아도 한참 젊은 나이인데 지금이 어느때라고 하면서 혀를 끌끌..차시곤 했는데..
요새 장모들처럼 사위한테 한소리하는 사람같았으면 벌써 해도 할만큼 했겠다.
우리 엄마 절대 나서는 법 없다.
아무리 좋은 소리, 싫은 소리 한다한들 그게 귀에 먹히는 사람이어야지 들어먹는다는게 엄마 철칙이다.
그런면에서 울엄마는 사위절대무간섭주의자다.
누가 그러던가, 바라는게 없으면 섭섭한 마음도 없다고..
맞는 말이다.

결혼해서 이런저런 갈등을 다 겪어보고 이제는 좀 익숙해지고 포기하면서 지낼만 하려나 했더니만 올해는 더한 상황을 겪었다.
그 속이야 안 당해본 사람은 어떻게 알까..
같은 여자들끼리, 같은 상처입은 사람들끼리는 긴 말 안해도 알더라.. 그들한테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절대, 다시는 그 악몽의, 지옥같은 생활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련다.
아이낳고 키우면서 겪었던 그 수많은, 기억하고도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 아이가 죄는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겪었던 남편과의, 시집사람들과의 쓰라린 기억들과 얽혀진 악몽같은 시간들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절대로.

많이 잊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안 좋은 기억이란 빨리 잊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그런데 가끔가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이렇게도 한심스럽게 보인다.
한 사건만 존재했었다면 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결혼해서 사는 여자생활이라는게 다 그러는건지,
시집과 남편과 돈에 질려서 그 얽히고 설킨, 풀리지 않는 타래에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스럽고 싶다.
지금은 그때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셈인가... 연주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