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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자존심이 상해 거절했다.
그 며칠간 나는 마치 야수처럼아주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모두 분노를 느꼈다.
심지어 나약하게 우는 나 자신까지도.
사하라 사막은 아름다웠지만 이곳의 생활은
피할 수 없을 만큼의 외로움을 대가로 지불해 자신을 적응해 나가야했다.
나는 사막을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길들여져 가는 과정에서 작은 좌절을 겪어야 했을 뿐이었다.
그 다음날 나는 호세가 먼저 적어놓은 메모를 들고큰 건재 재료점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았다.
점원은 내 주위를 오랫동안 맴돌더니 이리저리 계산을 했다.
그리고 2만5천 페세타가 필요한데 목재는 품절 됐다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얼른 나왔다.
우체국으로가서 우편함을 보기 위해서 였다.
가구를 만들려고 미리 계산했던 돈은 몇개의 나무판을살 돈 밖에 되지 않았다.
상점을 나와 큰 광장 쪽으로 가려다가
나는 그 상점에서물건을 포장하는데 썼던 커다란 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커다란 나무판 위가 철띠로 봉해져 있었는데 아무도 가져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다시 상점으로 뛰어들어가 그들에게 물었다.
"저기 문 밖에 있는 빈 나무 상자를 제가 가져가도 괜찮겠어요?"
이 말을 하면서 내 얼굴은 달아 올랐다.
내 일생 중 몇 개의 나무 상자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애원한 적은 없었다.
주인은 아주 부드럽게 대답했다.
"괜찮지요. 당신이 좋을 대로하세요."
"다섯 개를 가져가고 싶은데요, 너무 많나요?"
그러나 그는 그다지 못마땅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주인의 동의를 얻은 뒤, 곧 시내 광장으로 가서
두 대의 리어카를 빌려 다섯 개의 나무 상자를 실었다.
공구도 필요할 것 같아 꺽쇠, 망치, 줄자, 크고 작은 못 2근,도르래, 밧줄과 트레이싱 페이퍼를 샀다.
리어카 뒤를 따라 돌아오면서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나도 변한 것이었다.
호세처럼 3개월의 사막 생활 동안 과거의 나는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정말 몇 개의 빈 나무상자를 얻었다고
이렇게 기뻐할 수 있다니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보니 상자가 집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것을 문 밖에 놓아둔다는 것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웃들이 나의 이런 보배를 언제들고 가버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하루종일, 나는 5분마다 문 밖으로 나가
나무상자가 잘 있는지를 확인했다.
이런 긴장은 노을이 질 무렵까지 계속됐다.
어느덧 호세의 그림자가 문 밖 멀리에 비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얼른 마당으로 뛰쳐나가 손을 흔들어 우리만의 신호를 보냈다.
그는 우리의 신호를 알아보고는 곧바로 뛰어왔다.
문 앞까지 뛰어온 호세는 창문에 기대어져 있는 나무 상자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렇게 좋은 나무가 어디서 났지?"
나는 낮은 담 위에 올라 타 그에게 말했다.
"내가 얻어 왔어요. 지금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으니까
우리 빨리 도르래를 만들어 옥상에 얹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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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우리는 네개의 삶은 계란을 먹고는 뼈가 시릴 정도로
찬 바람을 맞으며 도르래를 만들어, 나무 상자를 옥상 위에 올려
놓았다. 나무에 엮인 철 꺾쇠를 풀려다가 호세의 손이 못에 찔려
피가 흘렀다. 나는 큰 상자를 잡고 발로 버티며 그가 한개한개
두꺼운 나무판을 뜯어내는 것을 돕고 있었다.
"나는 우리에게 왜 가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
왜 사하라 원주민들이 평생 자리를 깔고 사는 것처럼 살 수는
없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지."
"왜 우리는 변할 수 없지요?" 나는 세 개의 나무판을 껴안고
이 문제를 생각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
호세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건 종교적인 문제지 생활방식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당신은 왜 낙타고기를 좋아하지 않지?
기독교도들은 낙타를 먹을 수 없나?"
"제 종교에서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데서만 나오지
다른 곳에서는 안 나와요."
"그래서 우리에겐 가구가 있어야만 생활이 비참하지가 않아."
그 해석이 틀린 것이었지만 나는 가구가 있기를 원했다.
그러한 마음이 나에게 수치심을 주었다.
그 다음날 호세는오지 못했다.
그의 월급이 다 바닥나 버렸기 때문에 그는 또 특근을 해야만 했다.
그 다음날도 호세는 오지 못했다.
그의 동료가 차를 타고 와 내게 알려주었다.
옥상 위에 쌓아놓은 키가 크고 두꺼운 나무 상자들이
아침에 마을을 갔다 왔더니 반이나 줄어 있었다.
이웃들이 가져다가 울타리를 만든 것이었다.
나는 줄곧 옥상 위에만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쓰레기장에 가서
몇 개의 빈 깡통을 주워 구멍을 뚫고 나무의 네 모서리에 매달았다.
사람들이 훔치려고 하면 곧 소리가 울려 올라가 잡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바람에 열 번도 넘게 속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깡통은 소리를 냈다.
그날 오후 나는 배편으로 부쳐 온 책 상자를 정리하면서
무심코 여러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한 장은 긴 예복을 입고
털가죽 코트를 걸치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긴 귀고리를 걸고
있었다. 막 베를린 가극 극장에서 나오다 찍은 것이었다.
다른 한 장은 마드리드의 겨울밤에 거리를 방황하는 소녀들 무리와
옛 성 안의 작은 술집에서 춤추며 노래를 부르며 포도주를 마시다
찍은 것이었다. 사진에 있는 나는 정말 아름다웠다.
긴 머리는 빛났고 매끄러웠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나는 한장 한장, 과거와 과거가 겹쳐진 사진이 바닥에 뒹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심정은 마치 죽은 육신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이 살던 곳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고개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지붕 위의 빈 까통이 나를 또 불렀다.
나는 나무판을 지키러 올라갔지만 이번에도 아무도 없었다.
나보다 나무 상자가 더 중요했다.
금요일은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었다.
호세가 집에 돌아와 일요일까지 묵고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호세는 낭만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나 역시도 사막에 있는 동안은 바람도 꽃도 눈도 달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이란 오직 환경을 개선해 물질적이고도
정신적인 큰 곤란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전의 나는 너무도 어리석었다.
밥 짓고 반찬을 만드는 솥이 하나여서 두 번에 걸쳐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쌀과, 야채, 고기를 한꺼번에 넣고
음식을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야채밥은 나를 너무도 간편하게
했다. 금요일 저녁 호세는 촛불 아래서 세세하게 아주 많은 모양의
가구그림을 그리고는 내게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그 중에 제일 간단한 것을 골랐다.
토요일 아침 우리는 두꺼운 털옷을 입고 일을 시작했다.
"먼저 치수를 전부 재는 거야. 당신이 먼저 나무판에 앉으면
내가 치수를 잴께." 호세는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나는 치수를 잰
나무판에 번호를 적었다.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흘렀고
태양이 우리들 머리 꼭대기로 올라왔다.
추위가 더위로 빨리 바뀌었다. 나는 젖은 수건을 호세의 머리 위에
덮어주고 웃통을 벗은 호세의 등에 기름을 발라주었다.
호세의 손에서는 땀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글나 나는 나무판을 누르고 있을 때도 있었고 얼음물을 호세에게
먹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산양과 아이들을 쫓을 수도 있었다.
태양은 마치 강철을 녹일 듯이 따가웠다.
나는 우리의 그림자로 지구가 조금씩 회전하고 있음을 느꼈다.
호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마치 희랍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와 같이 거대한 돌을 끊임없이 밀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호세와 같은 남편을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지난 날에 나는 호세가 단정하게 차려입고 문서를 다루는 것만
보다가 오늘의 모습을 보니 그가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야채밥을 다 먹고 호세는 바닥에 누웠다.
내가 부엌에 갔다 오는 사이 그는 이미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그를 깨울 수가 없어 조용히 지붕위로 올라가 치수를 매겨
놓은 의자와 책장, 옷장과 주방에서 쓸 가구들을 분류해 따로따로
쌓아 놓았다. 호세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노을이 질 무렵이었다.
그는 펄쩍 뛰면서 내게 화를 냈다. "당신 왜 나를 깨우지 않았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은 여자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의 체력이 걱정돼서 쉬게 했다는
투의 변명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호세의 머리는 최고급 시멘트로 만들어져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밤 열한시까지 일을 하고 나니 의자 하나가 생겼다.
그 다음 날은 안식일이므로 당연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호세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없다며
쉬지 않고 옥상에서 망치질을 계속했다. "밥을 조금 더 줘. 저녁에
안 먹어도 되게 말이야. 옷장은 벽안에 놓아야 하는데 이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식사를 하는데 호세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를 보고 웃었다. "당신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저 나무 상자가
원래 무얼 포장했던 것인지 알아? 그날 그 트럭 기사 마틴이 내게
말해 주었어." "저렇게 크니까 뭐 커다란 냉장고가 아닐까요?"
호세는 내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말해 줄까 말까?"
"도대체 무슨 기계를 포장했던 것인데요."
"관. 건재상에서 스페인으로 부터 열다섯개의 관을 사왔어."
나는 너무나 놀랐다. 그제서야 건재상의 주인이 매우 다정하게
우리집 식구가 몇 명이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묘지 구역에 살면서 관을 포장했던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있다니......" "당신은 어때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무렇지도." 호세는 입을 닦고는 일어나 곧바로 옥상으로 올라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너무도 의외의 일이어서 흥분이 됐다.
나는 달랐다. 더욱 내 새 의자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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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지 않아 법원에서 결혼해도 좋다는 통지가 왔다.
우리는 결혼을 마치고 곧바로 호세 회사의 총무부로 가서
호세에게 아침 통근버스 차표와 결혼 보조금, 방세 보조금,
면세 혜택,그리고 나의 보험료 등을 신청했다.
우리가 결혼 했을 때는 집에 책장과 의자가 생겼고 침실에는
길게 걸 수 있는 옷걸이가 있었고 주방에는 작은 탁자와 양념통을
놓을 수 있는 받침대, 그리고 사막에서 나는 마(麻)로 만든 색색이
수놓아진 커튼이 있었다. 그러나 손님이 와도 자리 위에 앉아야
했으며 우리들은 아직 침대의 매트리스도 사지 못했다. 벽은 여전히
콘크리트 벽 그대로였고 회분도 칠하지 못했으니 페인트는 당연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혼 후 회사에서는 2만 페세타의 가구 구입
보조금을 주었고 월급도 7천여 페세타가 올랐으며 세금도 감면 됐고,
방세 보조금도 한달에 6천 5백 페세타씩 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름간 결혼 휴가도 주었다.
결혼 서약서에 서명을 함으로써 우리 가계에는 많은 보탬이 있었다.
이 때문에 나는 예로 부터 내려오는 결혼의 풍습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결혼에는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좋은 친구들은 서로 호세의 업무를 대신해 준다고 했고,
그덕분에 우리는 한달 내내 우리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첫번째 일은 당신을 데리고 인산 광에 가는 일이야." 회사 지프를
타고 우리는 인산을 캐는 광에서부터 수송을 하는 곳 까지 백여리를
여행했다. 인산은 배에 실려 바다로 나갔다. 호세의 회사에서 하는 일
들을 일목요연하게 견학할 수 있었다.
"아이구!이건 꼭 제임스 본드의 영화 같아요.
당신은 007이고 저는 영화 속의 나쁜 동양여자예요."
"장관이지!" 호세는 차 안에서 말했다.
"저 엄청난 일을 어느 회사에서 맡아 하는 거예요?"
"독일의 한 회사에서." 호세는 선뜻 말하지 않았다.
"나도 스페인 사람이 저렇게 굉장한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삼모, 내 입 다물고 있게 도와주겠어?"
허니문 여행 동안 우리들은 지프를 빌려서 길 안내를 받으며
서쪽으로 갔다. 마크페이스를 지나 알제리로 들어갔다가 다시 서부
사하라로 돌아와 스마라에서 모리타니를 가로질러 새로운 미지의 세계
로 횡단해 갔다. 다시 다른 길로 서부 사하라의 아래 지방인
왜야시내로 갔다가 아융으로 돌아왔다.
사하라를 횡단하는 동안 우리들은 사하라가 쳐놓은 애정의 그물 속에
둘 다 걸려들어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황야를 절대로 떠날 수 없다
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의 감미로운 집으로 돌아오는데는 일 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돌아오자마자 초라한 집을 미친듯이
꾸미기 시작했다. 울는 집주인에게 벽을 칠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우리는 마을로 가서 방세가 어느 정도나 되는
지 알아봤다.모두가 미화 3백 달러 이상이어서 다른 집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날 밤 호세는 이리저리 계산을 해보더니 그 다음날
마을로 가서 석회와 시멘트를 사고 다시 사다리와 공구를 빌려 결국
우리 스스로가 집을 단장하기로 했다.
우리들은 밤낮으로 일을 했다. 빵과 우유 그리고 각종 비타민제제로
무장 했으나 장거리 여행에서 돌아와 쉬지도 못한 후유증으로 눈에
띄게 말라갔고 눈이 쑥 들어가 커다란 눈동자만 반짝 거렸다.
걸음걸이도 휘청휘청 했다. "호세, 전 쉴 수 있지만 당신은 다음 주
부터 출근해야 하는데 한 이틀 쉬고 일하는 것이 어떨까요?" 호세는
사다리 위에서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우리 이렇게 절약할 필요
가 없잖아요. 제 돈이 은행에 있는데." " 당신 이곳의 미장이가
한 시간에 얼마나 달라는지 알아. 그리고 난 그들 못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지독한 사람, 당신은 돈을 싸들고 죽을 거예요.
그러면 애들이 나중에 돈을 막 쓴다구요."
"만약에 우리에게 아이가 생겨 그 애가 열두살이 되면 일을 하게
할 거야. 공부하면서 일하게 말이야.
그 애한테 용돈도 주지 않을 거구."
"그러면 돈은 누가 쓰는데요?"
나는 사다리 아래서 그에게 물었다.
"장인, 장모님을 부양해야지.
우리가 사막을 떠나게 되면 당신의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지."
나는 호세가 천리 만리 밖의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을 알았을 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부모는 우리들을 잘 이해하지만 내심으로는 고집이 있으세요.
아버지는 특히 외국에서 살기 싫어하세요."
"아버지가 원하시건 원하지 않건 당신이 돌아가 두손으로 모셔와야
하고, 그들이 다시 대만으로 가려해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일이 잖아." 나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공중 누각을 위해 석회
와 시멘트를 열심히 배합해야 했고 사다리 위로 올려보낼 때는 젖은
시멘트 뭉치들이 뚝뚝 떨어져 내 머리와 콧등을 때렸다.
"호세, 당신 빨리 중국어 배워요."
"안 배워. 그것만은 거절하겠어."
호세는 뭐든지 잘 했다. 그러나 언어에만은 소질이 정말 없었다.
불어도 10여년을 공부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썩 잘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중국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또 내가 억지로 배우도록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 그 집 안팎은 모두 흰색으로 칠해졌다.
정말 묘지구역 안에 선 군계일학이었다.
문패를 달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드디어 7월치의 월급을 받게 되었다.
호세는 퇴근을 하며, 멀리 비탈진 언덕에서부터 뛰어와 문에 들어서자
마자 주머니 속의 돈을 모두 땅위에 쏟아놓았다.
초록색 돈이 한 무더기였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놀랄 만하지는 않았지만 호세에게 있어서는
평생 가장 많이 번 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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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리 와봐.
이제 이불과 담요도 살 수 있고 침대도 배게도 살 수 있어.
외식도 할 수 있고 물통도 살 수 있고 거기다 새 솔도
새 텐트도......" 돈을 사랑하듯 두 사람은 땅위에 꿇어 앉아서 함께
셈을 해본뒤, 나는 웃으며 8천 페세타를 따로 떼어놓았다.
"뭐하는 거야?" "당신에게 옷을 사주려구요.
당신 바지가 다 떨어졌고 와이셔츠 목도 다 해졌어요.
양말도 모두 구멍이 났어요. 신발도 발바닥이 나올 것 같구요."
"됐어, 먼저 집치장에다 돈을 들여야지. 나는 그 다음에 장식해도
돼. 사막에서는 옷을 잘 입을 필요가 없어."
그는 여전히 구멍난 구두를 신고 그 다음날도 출근했다.
나는 벽돌을 방 오른쪽에 쌓고 위에 관을 포장했던 나무를 올려 놓았다.
두 개의 두꺼운 스폰지 판을 사서 하나는 벽에 기대놓고 하나는
판 위에 깔았다. 그리고 커튼과 같은 밝은 색에 수를 놓은 천을
덮어 뒤에는 실로 세밀히 꿰맸다.
그것은 이제 명실상부한 소파가 되었다.
눈처럼 흰 벽과 잘 어울려 밝고 아름다웠다.
탁자에는 흰 천을 덮었고 그 위에 어머니가 부쳐주신 얇은 대나무
발을 놓았다. 사랑하는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중국 닥종이를 붙인
등갓까지 부쳐주셨다. 도자기도 한세트 받았다.
친구들은 커다란 현대화를 보냈고, 선생님은 책을, 언니는 옷을 보내
주었고, 남동생은 재미있게도 목욕 가운을 호세에게 부쳐주었다.
목욕 가운을 입은 호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자 배우를 닮아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가 보내준 등갓이 낮게 걸려 있었고 거기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雲門舞集- 이라는 글씨가 마치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모양으로 씌어 있었다.
등과 현대화가 벽에 걸려 있는 우리 집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고 나니 우리 집이 더더욱 훌륭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호세가 출근하고 나서, 나는 책꽂이를 짙은 나무색으로 칠했다.
니스가 아니라 갈색 빛 나는 염료로 칠 했는데
중국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제 책꽂이는 더더욱 중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을 분석해 보았다.
사람에겐 힘들지만 헤쳐나가야 할 단계가 있었다,
사하라 사람들이 모두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물건들로 우리 집을
채우고 나니, 나는 문명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주변의 환경을 사하라에 오기 전과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생활이 다시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호세가 출근하고 나면 나는 집 앞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가서 쓸 만한
폐품들을 주워 모았다. 오래 전 차의 타이어를 주워다 깨끗이 씻어내
고 자리 위에 놓고 안에는 천조각을 채워서 마치 새둥지 처럼 만들어
누구든지 오면 앉으라고 했다. 짙은 녹색의 큰 물병에다가는 활짝 핀
야생 갈대를 꽂았다. 그것은 강렬한 고통의 시를 생각나게 했다.
똑 같은 사이다 병에다가 인디언들의 문양과 빛깔로 페인트를 두껍게 입혔다.
낙타의 해골은 이미 전부터 책장에 올려두었고, 호세를 협박해서 깡통과 유리로 램프를 만들라고 했다.
금세 썩는 양가죽은 사하라 사람들이 사용하고 버린 소금으로 문질러 닦으면 멋진 방석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마드리드로 돌아가 시부모를 뵈었다.
돌아올 때는 호세의 어린시절부터 대학 때까지의 책을 모두 가지고 왔다.
사막의 작은 집은 그때부터 책 내음으로 가득 찼다.
나는 사막이 정말 귀여웠는데 사막은 날 그렇게 봐주는 것 같지 않앗다. -불쌍한 문명인아 쓸데없는 물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하는 것 같았다.
"이 집에는 식물이 없어요. 푸른 기운이 없다구요."
어느날 저녁 무렵, 나는 호세에게 말했다. "없는 것이 많아. 영원히 만족하지 못할 거야." "아뇨. 돌아다니면서 찾아봐야겠어요."
그날 저녁 우리는 총독 숙소의 낮은 담을 넘어 들어가 뜰에 있는 꽃을 죽을 힘을 다해 파냈다.
"빨리 이 비닐 봉지에 집어 넣어요. 빨리, 그리고 저 큰 등나무도 파야지요."
"아이구 이 괴물은 뿌리가 왜 이렇게 깊이 박혔어." "흙도 가지고 가야 해요. 빨리 해요." "충분하잖아, 세 그루나 되는데." "한 그루 더요. 하나가 더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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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 한 그루를 뽑고 있었다.
그때 총독의 집 앞에 서 있던 병정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 간이 콩알만 해졌다.
얼른 비닐 봉투를 호세와 나 사이에 끼워 놓고는 급히 호세에게 말했다.
"나를 껴안아요. 꼭요. 그리고 있는 힘껏 키스하세요.늑대가 왔어요,
얼른." 호세는 나를 힘껏 안았다.
불쌍한 꽃은 우리 사이에서 납작하게 눌렸다.
근위병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총을 들이댔다.
"뭐 하는 거야. 당신들 뭐요?" "우리는....." "나가요 빨리, 여기는
당신들에게 사랑이나 하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데가 아니야."
우리들은 서로 손을 꼭 잡고 낮은 담을 넘어가려고 했다.
하느님, 담을 넘을 때 재발 꽃이 떨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이봐요. 큰 문으로 나가요, 얼른." 근위병은 또 큰소리를 질렀다.
우리들은 천천히 서로 껴안은 채 걸었다.
나는 또 근위병에게 15도 각도로 공손히 절을 했다.
나중에 내가 이일을 외인부대의 대대장에게 말했더니 그는 오래오래
크게 웃었다. 나는 아직도 우리 집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다.
음악이 없는 곳은 산수화에 계곡과 폭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였다.
녹음기 살 돈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멀리 떨어진 외인부대의
복지매장에가서 채소를 샀다. 첫날 갔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여자들이 서로 밀치고 뺏고 난리를 쳤지만 나는 단정하게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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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 후에야 야채를 사서 돌아올 수 있었다.
가격은 일반 가게보다 1/3 이나 쌌다.
후에 자주 가다보니 그곳 군인들은 내가 확실히 교양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의협심을 발휘해 주었다.
그들은 심지어 나에 대해 편애까지도 서슴지 않고
내가 줄을서 있으면 그들은 공공연히 뚱뚱하고 거친 아줌마들을
무시한 채 큰 소리로 내게 물었다.
"오늘은 뭐가 필요하세요?"
내가 메모를 건네주면 조금 후에 그들은 후문으로 잘 포장된 물건을
건네주었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뛰어나와 택시를 부르면 택시가
서기도 전에 군인들은 짐을 들어 차 안에까지 넣어 주었다.
나는 반시간도 걸리지 않아 곧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곳에 주둔하는 병사들은 무척 많았다.
나는 특히 외인부대를 좋아했다.
(이전에 나는 그들을 사막 군단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남자다웠고 고생을 할 줄도 알았으며 경애와 존중을 받아야
할 어떤 부인을 존경할 줄도 알았다.
그들은 싸우기도 했지만 풍류를 즐길줄도 알았다.
매주 일요일 저녁 외인 부대의 교향악단은 시청 광장에서 주로 고전
음악을 연주했다. 얼마 후 나는 절약의 대가로 녹음기와 테이프를
군영 복지 회관에서 마침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TV,
세탁기를 사기에는 돈이 너무 모자랐다.
우리들은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음 계획은 백마 한 필이었다. 현대의 말인 자동차는 인수한 뒤
분할 해 돈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호세는 현대인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한번에 돈을 다 내야 한다고 우겼다.
우리는 그래서 당분간 걸어다녀야 했다.
마을로 향하는 가장 가까운 길로 가다보면 두 개의 사하라 원주민
묘지를 지나야 했다. 사하라 인의 매장 방식은 천으로 시체를 싸
모래 안에 넣고 그 위에 자잘한 돌들을 얹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습관대로 영원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안녕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돌이 쌓인 무덤을 돌아서 걸어 가고 있었다.
이때 나는 아주 늙은 사하라 원주민 노인이 무덤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호기심에 그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돌을 조각하고 있었다.
맙소사! 그의 발 아래에는 20여개는 족히 되는 돌이 쌓여 있었다.
입체적으로 조각된 얼굴, 새, 작은 아이가 서 있는 모습, 나부의 여인
이 누워 다리를 벌리고 있는 형상, 또 막 태어난 갓난아이의 모습과
많은 동물, 산양, 낙타등을 조각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기절 할 정도였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위대한 예술가여, 이것 팔지 않겠어요?"
나는 내 눈을 믿지 못했다.
얼마나 감동적인 자연의 창작품인가.
나는 꼭 그것을 갖고 싶었다.
그 노인은 고개를 들고 망연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미친 듯 했다.
나는 조각품 세개를 집어 ?磯?그에게 천페세타를 주었다.
시장 가는 일도 잊고 곧 집으로 돌아가려했다.
그는 그제서야 작은 소리를 지르더니 휘청거리며 날 따라왔다.
나는 그 조각들을 꼭 껴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나를 따라와 잡았다.
나는 곧정 그에게 물었다.
"모자랍니까? 지금은 돈이 없어요. 후에 더 드릴게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허리를 굽혀 두 마리 새 모양의 조각을 내 손 안에 쥐어주고는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그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바닥에 누워 그 위대한 무명씨의 예술품을 감상했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사하라 원주민 이웃들은 내가 이 예술품을 사는데
천 페세타나 썼다는 것을 알고는 나를 비웃었다.
그들은 나를 백치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문화수준의 차이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 예술품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 다음 날 호세는 내게 2천 페세타를 주었다.
나는 그 묘지로 다시 갔지만 그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렬한 태양빛이 쏟아지고 있는 텅 빈 묘지에는 황사와 돌무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그 다섯 개의 돌이 마치 귀신이 내게 준 기념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격은 오래 계속 되었다.
집 꼭대기에 뚫린 구멍은 그리 오래지 않아 호세가 막았다.
우리 집에는 양가죽 북과 양가죽 물통, 양가죽 풀무,
물병, 사막 사람들이 손으로 짠 나무 침대보,
모래와 바람이 만들어 낸 기기묘묘한 모양의 돌로 장식이 되었다.
우리는 스페인 잡지와 중국어 잡지 이외에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라피- 도 구독했다.
1년후 우리 집은 정말 아름다운 예술의 궁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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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동료들은 휴가를 맞으면 하루 종일 우리 집에 와서
보내곤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 왔을 때는 난 언제나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신선한 과일과 채소 그리고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그래서 호세는 이렇게 우리들 일에 관한 것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도와줄 몇몇의 친구들을 사귀었다.
친구들은 언제나 그들의 어머니가 천리 밖 스페인에서 부쳐준 바베큐
소시지를 호세를 통해 내게 전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어느 주말, 호세는 돌연히 사막에서는 가장 비싸고 유명하다는
-천국새- 라는 꽃을 안고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손을 펴 받아들면서 큰 화분이 너무 무거워 힘이 들
정도였다. 붉은 꽃은 마치 천국으로 날아갈 듯 했다.
"마릴린이 당신에게 주래." 나는 황금보다 더 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이후, 매 주말마다 호세가 마릴린으로 부터 받아온 천국새는 담 위에서 자신들을 붉게 불태우고 있었다.
호세의 책은 대부분 대지와 깊은 바다, 우주를 소개하는 책 들이었다.
그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문제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또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분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늘
말해 왔다.
호세는 천국새를 매우 아끼며 물을 주었고 아스피린도 섞어주고
썩어가는 줄기도 떼어내 주었다.
마릴린이 어떤 마음으로 꽃을 주었는지에 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릴린은 불타는 천국새를 우리 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하루는 호세가 출근한 후, 나는 회사로 전화를 걸어 마릴린에게
좀 보자고 했다.그는 혼자 집으로 왔다.
나는 그에게 찬 사이다 한 잔을 대접하고는 엄숙하게 그를 바라
보았다. "말 해보세요. 마음이 편하세요?"
"저는 당신을...... 모르겠어요."
그는 손으로 머리를 쥐어 잡고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에도 조금은 눈치를 챘어요.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어요. 마릴린, 당신은 좋은 친구예요.
고개를 들어 보세요!"
"저는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너무 책망하지 마세요."
"이제 더 이상 꽃을 보내지 마세요. 저는 받지 않겠어요."
"좋아요, 가겠습니다. 제발 저를 이해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호세에게도요. 저는......"
"피커 씨." 나는 그의 성을 불렀다.
"당신은 잘못이 없어요.
오히려 당신은 한 여인에게 매우 큰 찬사와 격려를 해 준 거예요.
당신은 제게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어요,"
"다시는 귀찮게 굴지 않을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의 음성은 낮았고 마치 소리 없이 흐느끼는 것 같았다.
호세는 마릴린이 혼자 왔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후 일주일 뒤 호세는 퇴근해 돌아와 큰 상자를 하나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 마릴린 참 이상한 사람이야.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었어.
회사에서는 월말까지 근무해 달라고 하는데 싫다고 그냥 갔어.
이책은 그 사람이 우리에게 보낸 거야."
나는 무심코 그가 보낸 책 한권을 들었다.
그것은 -아시아의 우주 아래- 라는 책이었다.
나의 마음은 까닭없이 조금 싸늘하게 식었다.
그후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올 때면 나는 특별히 내말과 행동에
조심해야했다. 늘 함께 세상일에 관해서 논하던 주요 인물이 이제는
부엌 안의 주부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집은 편안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 졌다.
나는 한동안 무료 여자학교를 쉬기로 했다.
이웃 여자들에게 1년정도 수업을 했으나 그들은 수학이나 위생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아직 돈을 셀 줄도 몰랐다.
매일 우리집에 와서는 내 옷과 구두를 빌려 달라고 했고, 립스틱,
아이펜슬, 크림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내 침대로 가 눕곤 했다.
땅에 자리를 펴고 자는 그들에게 침대에 눕는 것은 너무도 신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올 때마다 잘 정리 된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그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르면서도 마릴린 먼로나 오나시스등 유명한
사람들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잘알고 있었고 또 이소룡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스페인의 에로 스타들을 마치 그들의 우상인 양 사진을
잡지에서 보기만 하면 뜯어가 버렸다.
말도 없이 내 옷을 가지고 갔다가 며칠이 지난 후에 단추를 다
떨어뜨리고 충분히 더럽혀진 다음에 가지고 오는 일은 흔했다.
이 집은 그들이 와서 따로 편집을 할 필요도 없이 자기네들이 연출하고
주연을 맡아 끔찍하고도 놀랄 만한 재난의 피해를 담은 영화를
만들어 놓고 가버리는 장소가 되었다. 호세가 TV를 사온 후, 그들은 매일 문을 두드리며 마구 욕을 해댔다.
나는 아무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TV는 전기가 들어 올때 우리를 외계와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TV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침대보를 손으로 빤 이후에야 작은 세탁기가 우리집에 들어 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차가 필요했다.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한 필의 말.
나는 시내에서 사는 유럽 부인들 몇 명을 알게 되었다.
나는 본래 이웃집을 쏘다니며 수다를 떠는 일 따위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런데 호세 상사의 부인 가운데 나와 매우 마음이 잘 맞는 중년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자진해서 쟈봉일을 가르쳐주겠다고 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연히 회사의 고급관료들의 숙소에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양장의 소매를 붙이는 방법을 물으려고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때 집 안에는 한 무리의 부인들이 앉아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나에게 무척 잘 대해 주었다.
왜냐하면 내 학력이 그들보다 높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속물 들이었다.
학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다니? 학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조금 후 이상하게 생긴 여자가 내게 물었다.
"어느 동네에 사십니까? 저희들이 다음에 놀러가지요."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대답했다.
"호세는 아직 고급관리가 아니라서 숙소를 배정받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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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찾아갈 수 있어요.
당신이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세요.
시내 어디쯤에 사십니까?"
"전 시외에 살아요. 묘지 구역이에요."
방안이 갑자기 참기 힘들 정도로 적막해졌다.
호세의 상사 부인은 곧 나를 감싸 주기 위해 말했다.
"삼모의 집은 정말 품위가 있어요.
전 정말 사하라 사람들이 세놓은 집을
마치 화보에 나오는 궁전처럼 꾸밀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정말 아름다워요." "그 구역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전염병에 걸릴까 무섭네요." 다른 부인이 말했다.
그들의 말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저는 사막에 까지 와서 그들의 생활상을 보고 겪지 못한다면
한 개인의 경험에 있어서 큰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사막은 무슨 사막이에요. 그만둬요.
우리들은 숙소안에 있기 때문에 전혀 이곳이 사막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당신은 정말 불쌍하군요. 어떻게 시내로 이사오지 않고
사하라 원주민들과 함께 살아요. 쯔쯔쯔."
나는 먼저 일어나 나왔다. 상사의 부인은 조용히 말했다.
"다시 놀러와요. 다시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계단을 달려 내려와 나는 나의 작고 하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결심했다. 절대로 시내로 이사 가지 않기로.
서부 사하라는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양분 될 때 야단 법석을 떤 곳이었다.
. . . . . . . .
토마토의 말...
마릴린이 남자 였네요...
마릴린몬로는 여자였기에... 저도 뇨자인줄로만...
하지만 호세에게도 추파를 보내는 뇨자가 나타납니다.
며칠 후에 쯤..말이죠..
지금 계속 5회.. 쓰는 중입니다....다시 아침이 되었네요...
서울에 어제 눈이 많이 와서 여러분들 어떡하죠? 출근길 말예요.
남편분들도 많이 힘드시겠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어렵겠네요.
제가 사는 곳은 남쪽이여서 눈이 안 왔답니다....
설겆이하고 좀 쉰다음..
11시 쯤에 다시5회 계속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