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은 잠잘 때 이불 속에서만 입는 거니까,
신혼 때에는 잠옷 입은 맵시도 신경쓰고 그랬지만 이제는 그런 때도 아니고 하니까,
사실 내복을 입든 앞치마를 두르든 내가 그게 잠옷이라면 잠옷일 수 있는 옷이 바로 잠옷이니까,
그러니까 잠옷이 찢어졌으면 당연히 꿰매서 입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는 어제 밤 열심히 남편의 찢어진 잠옷바지를 꿰매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잠옷이 왜 찢어졌냐 하면 바로, 낡아서! 찢어졌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슨 흥부네 마누라같지만,
잠잘 때만 입는 옷 잠옷을
우리 남편이 생활복으로도, 운동복으로도, 청소복으로도 이용하다보니
그냥 맨살/엉덩이 부분이 헤어져서 찢어졌다. 우두두둑 하면서...)
솜씨 좋은 내가 옷을 다 꿰매놓고 보니 아무리 잠옷이지만 좀 너무하다 싶고 괜히 남편한테 미안하고 그래서,
"우선 이렇게 그냥 입고 조만간 내가 새로 사 줄께.
전에 무슨 영화에서 봤던 미키마우스+미니마우스 커플 잠옷으로 살까?"
어쩌고저쩌고 떠들었다.
말을 하고 나니 정말로 예쁘고 맨질맨질한 새 잠옷이 마구 입고 싶어졌다.
언제 살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살까?
에구,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날보다 지나간 날이 더 짧은데 그건 안 되겠고,
5월 어린이날 선물로 살까?
(어린이날하고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핑계가 있어야 선물을 살 거 아니겠는감유?)
근데, 이 잠옷 한번 빨고 나면 꿰맨 부분이 너덜너덜 떨어질 것 같은데 4월 결혼기념일 선물로 사야될까?
그러다가 생각이 가지를 뻗어 이번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회장님이나 사모님이 한밤중에 잠이 안 와 위스키 한 잔 할 때 걸치고 나오는 나이트가운이 생각이 났다.
나도 그런 나이트 가운 하나 있으면 폼이 날라나?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나이트 가운까지 소화를 하기에는 나나 우리집 모양이 좀 그렇다 싶어서 포기를 하던 차에,
주로 그런 나이트 가운들은 타올 같은 느낌의 천들로 되어 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내가 바느질을 잘 하거나 미싱이 있으면 우리집에 커다란 타올 많은데
그걸 이어붙여 잠옷을 만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났다.
(참 생각나는 것도 많네~)
그러다가 문득, 내 생각이 흘러가는 방향을 보아하니
4월 결혼기념일에도,
5월 어린이날에도,
어쩌면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에도 나는 잠옷을 안 사고 계속 버팅길지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사이 잠옷이 또 찢어지면 또 꿰매면서,
그러다 도저히 안 되면 정말로 타올로 이어붙인 잠옷 하나 만들어낼지도 모르겠다는 무섭고도 서글픈 예감.
... 여기까지 써 놓고 한번 읽어보니 가볍게 웃을 만한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제 밤 잠옷을 꿰매면서 이리저리 흘러다녔던 내 생각들 때문에
나는 어쩐지 무지 우울하고 슬퍼졌다.
봄이라는데 눈은 펑펑 내리고,
유리창은 하얗게 얼어붙은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