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20

양귀자소설-- 부엌신---4회


BY 토마토 2001-03-08



p33

거기까지만 하려 했는데 남편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
마당 가운데에 자리한 수령 높은 모과나무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층 마루의 창가에 좁다란 다탁을 길게 붙이고
키가 큰 의자를 몇 개 사다 놓자는 것이었다.
멋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식사 후 한 잔의 차나 한 개피의 담배를 위한 장소로
아주 적절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다였다.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내게 아주 흡족한 시설이었다.
방들은 아담했고 마당은 정겨웠다.
누구라도 자신의 집처럼 편하게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가정집 구조였으므로 영업장소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이미지,
초기의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은 바로 그런 이미지였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전략도 나쁘지는 않았다.
투자금액을 최소화하면서도 천박하지 않는 음식점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가장 추천할 수 있는 인테리어 방법이기도 했다.
덕분에 초기 투자금액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역시 그 덕분으로 장사에 대한 압박감이 덜해서
손님에게 성심껏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던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장사의 전망이 아직 미지수일 때,
드나드는 고객의 취향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은 장사의 초기에 무리한
시설 투자를 하는 일은 모험일 수 있다.
어차피 영업 장소의 시설이나 인테리어는 끊임없는 보수와 개조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므로 다소 아쉽더라도, 기회는 계속해서 온다는 사실,
그것을 잊지 말 일이다.


<거꾸로 일하기>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음식점 경영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가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쯤에는 틀림없이 마음속에 물음표 하나를 매달고 있을 것이다.
이거 뭐 이래.
음식점을 처음 시작하려면 먼저 무슨 메뉴를 가지고 장사를 해보겠다는
결정부터 확고해야 그에 맞추어서 주방 시설도 하고 내부공사도 하는 것이지
이건 순전히 거꾸로?아...... 맞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것은 완전히 순서가 뒤바뀐 것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발에 맞춰 신발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어거지로 발을 맞추는 꼴이 되어서 개업한 후에
요모조모 불편한 점이 많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을 나는
그때 전혀 몰랐던 것이었다.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상인들이 가장 먼저 물었던 것도 무슨 메뉴를 가지고
장사를 하냐는 것이었다.
중국집인지 냉면집인지, 혹은 갈비집인지 설렁탕집인지를 묻는 그들의 질문에
초보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아니요. 한식입니다"라고 답했다.
말하자면 나는 중식이냐 일식이냐 양식이냐등을 가르는 소위 상위 메뉴만
정하고 있었을 뿐 구체적인 식단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락가락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랬어도 상인들은 오직 물건파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므로
한식에 쓰임직한 기물들을 쑥쑥 잘도 뽑아주었다.
나는 그것이면 되는 줄 알았다.
주방의 작업대 배치도 "그냥 한식......"이라는 내 어정쩡한 주문에
별다른 의문없이 시원시원하게 이루어졌다.
아주 평균적으로. 메뉴가 정해져야 조리시간을 효율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작업동선이 그려지고,
그 메뉴에 따라 경력있는 주방장도 구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기물들도 딱 그에 맞춤한 것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그 무렵까지 특별히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음식점에서 어떤 음식을 팔 것인지는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므로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마지막까지 최종선택을 미뤄가며,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믿은 바대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모르니까 저지를 수 있는 실수였다.


건물을 수리하고, 주방시설을 들여오고,
여러가지 비품들을 구입하던 순간까지도 나는 최종적으로
내가 한정식이라는 메뉴를 선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음식점의 메뉴를 정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고민들 속에서도 단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한정식이라는 메뉴였다.
말하자면 나는 -한정식만 빼고- 나머지는 모든 한식 메뉴를 다 상정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충고에 한결같이 한정식은 안 된다는
간곡한 당부가 들어있었던 탓이었다.
게다가 내가 태생이 전주사람이었다.
고향의 한정식집에 대해서 내가 들은 소문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 태반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많은 종류의 음식을 올리려면 재료비며 인건비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손님은 자꾸 새롭고 신기한 음식점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이문이 남을 턱이 없었다.
한정식은 말고 이런 것이 어떠냐는 권유는 많았다.
제일 많이 추천을 받았던 종목이 -칼국수-였다.
권유 순위 2위는 -낙지철판볶음-이었으며 이어지는 3위는 -떡갈비 정식-이었다.


칼국수는 애호자가 많은 음식인 까닭일 터이고
낙지 철판볶음은 95년 그 무렵 한창 유행이던 메뉴였다.
3위의 떡갈비 정식은 명절 때마다 내가 만든
갈비찜을 먹어본 남편의 추천이었다.
그러나 칼국수는 밀가루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의 식성 때문에 먼저 제외되었다.
주인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내걸고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낙지 철판볶음은 음식 자체는 맛이 있었으나 생낙지를 철판 위에서
잔인하게 죽여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내 포기했다.


남은 것은 떡갈비 정식이었는데, 메뉴보다 넘저 결정된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란 상호에 견주어서도 검토해 볼만한 식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정하기 위해 남편과 나는 그 무렵 원도 없이 외식을 했다.
누군가가 맛있다고 소개한 음식점이나 신문에서 본 맛기행 따위의 자료를 들고
우리는 강남으로, 강북으로, 심지어는 성남까지도 원정을 갔다.
남편은 원래 식탐도 없고 소식인 사람이었다.
신혼시절, 내가 밥상에 아주 약간 신경만 쓰면 어김없이
"누구 생일인가?"하고 진지하게 묻던 사람이 남편이었다.
이름 붙은 날도 아닌데 밥상에 굴비가 오르고 부침개가 오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했고, 상이 조금 거하다 싶으면 무엇부터 먹을지 몰라
차라리 물 말아 얼른 얼른 끝내는 것이 편하다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이었지만 강남 어디에서 근사한 한정식을 한다는데,
하고 내가 운만 떼면 얼른 자동차의 시동부터 걸었다.
개업 공사를 할 때도 먼지를 뒤집어 쓰고 돌아다니며 일꾼들을 부렸고,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내가 상인들과 흥정을 시작하면 옆에서 바람도 잡아주었다.
이 모든 것이 음식점을 한 번 해보자고 먼저 나를 부추긴 죄였다.
목표가 있는 외식은 그렇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요식업소와 아무 상관도 없는,
예전의 그 단순한 식객들이 아닌 탓이었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요모조모 노려보고 따져보고 하는 사이
정작 입맛은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과연 우리가 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못할 것인지 자신이 없어져서 돌아오는 길에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런 날들 중의 어느 하루, 남편은 진심으로 내게 말했다.
이쯤에서 그만 두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당신은 성실한 소설가로 남으라고 했다.
자기가 먼저 음식점이나 하나 해볼까,
해놓고 내가 너무 열심히 참여하니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이쯤에서 그만 두다니, 그러기로는 그동안 내가 공부한
여러가지 장사 실습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설 쓰기도 그러했듯이 이 삶에서도 나는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실하고 싶었다.



. . . . . . . . . . . .


오늘도 좋은 하루 맞이하시길...
감사합니다.^^*

출판사...살림
제목...부엌신
가격...8,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