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작은 학교를 꿈꾸고 들어온 사람들이지만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행사를 없앨수도 없고 학년당 한 학급 뿐이지만 총회 학년회는 다 있어서 이래저래 바쁜 것이 작은학교 학부노노릇이다.
학교운영위원회부터 누구나 오라고 공지하는 바람에 얼결에 전학 온 엄마가 엄마들과 교장선생님이 맞대놓고 설왕설래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스쿨버스를 얻어보려고 일사불란하게 서명에 나서는 모습에는 당황하기도 하더니, 어머니회에서 다 준비되니까 진짜로 자기 김밥도 쌀 것 없다는 봄소풍에, 과자와 사탕만 그득한 선물보따리와 이기고 질 것도 없이 전교생이 땀범벅이 되도록 그저 즐기면 그만인 소체육대회 겸 어린이날 행사에 이르러서는 탄성을 내고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스승의 날이다. 교사가 직접, 새로 이사 와 멋모르고 봉투를 내민 학부모를 어머니회에 슬며시 일러주는 형편이다 보니, 촌지는 언감생신 누구도 내밀 길이 없다. 촌지야 당연히 안 할 일이지만 날은 날인데 이 날을 어쩔 것인가.
멸치 반 포에 저녁 한끼로 떼운 여러 해를 거치고 나니 '참, 그래도 스승의 날인데...' 하는 소리가 슬며시 나오게 되었다. 만원쯤 대여섯 명이나 걷으면 어떨까 하는 회장엄마의 말에 대뜸 총무는 그나마 꽃이나 접고 촛불이나 하나 켜면 된다고, 돈 소리는 낼 것도 없다고 쥐어박다가, 그래두 남들처럼 바리바리 들고갈 거야 없지만 빈 손으로 집에 들어가면 사모님 보기 뭣하지 않겠느냐는 소리에 마음이 풀려서, 하는 수 없이 오천원씩 삼만 오천원을 모아들고 백화점엘 갔다.
양말이나 사러갔지만 차마 양말은 못 사겠고,와이셔츠 한벌은 돈이 작아 못 사고, 세일코너에서 무난해보이는 여름남방 한벌을 역시 세일코너의 넥타이와 함께 사들고 돌아왔다. 어느 엄마가 케익을 굽기로 하고 어린이집 원장 하는 엄마가 꽃을 접기로 하면서 행사준비는 일단락되었지만, 그 와중에 연세든 할머니께 오천원을 받을 때, 직접 찾아뵙지 않고 전해받은 것에 대해 예가 아니었다고 핀잔을 듣고, 꽃 한송이 편지 한통을 '꼭' 보내달라고 했다가 부담 가는 소리를 왜 하느냐고, 꽃 한 송이도 버거운 애들도 있는데 하는 질책도 들어서 회장엄마는 여간 속이 상하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렵냐고 엄마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여긴 절차가 너무 복잡해 하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여긴 그렇게 한다고, 일일이 찾아서, 때로는 힌소리로 히히덕거리며 친분을 쌓으면서 일해야 한다고 말해놓고 총무엄마도 맥이 풀렸다.
개인으로 선물하겠다고 하자 니 부자가? 하면서 단박에 윽박질러버린 1학년 엄마들 얘기나, 회장이라고 꼭 하란 법 없다고 못 하노라 선언한 3학년 엄마나, 작은 학교 스승의 날은 즐겁고도 고단한 모색의 시간이다. 어디까지가 감사의 뜻이고 어느 정도가 지나칠까에 대한 한 바탕 치열한 격론장이다.
혹 꽃 한 송이가 준비 안되는 아이를 위해 종이꽃을 접으며, 격론 중에 상처 받은 서로를 위로하며, 그래도 이래야 작은 학교가 제대로 될 거라고 자위해 본다. 지난 날 다른 엄마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지켜내야 하고 또 그러면서 무언가 새로운 단계를 모색해가야 하는 작은 학교의 학부모들은 역사공부보다 어려운 현실공부에 눈이 팽팽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