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쁜 엄마다. 그리고 아기에게 무관심한 엄마다.
이 말은 돌쟁이 우리 아기에게 책을 사주지 않는다고 한 방문판매 사원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아기에게 0~3세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고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시기인데, 경제적인 이유로 책을 사주지 않으니 나는 참 나쁜 엄마란다.
사실 0~3살까지 형제가 없이 첫째 아이만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유아교재 방문판매 사원들에겐 놓칠 수 없는 고객이다. 다른 형제가 있다면 옷이나 책, 장난감 등을 물려 쓰지만 첫 아기는 모든 것을 새로 장만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생길 우리 아기의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지금쯤은 책이며, 장난감을 꼭 구입해 놓아야 한다고 권유한다.
첫 아기를 임신해서 지금까지 거의 2년 동안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들의 고객이었지만, 한번도 책이나 장난감을 구입해본 적은 없다. 계속해서 경제적인 이유를 대고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요즘 내로라 하는 유아교재 회사들의 경우 놀이감만 해도 50만원을 웃돌고, 책이나 교육교재의 경우는 1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아기에게 꼭 필요한 건지, 과연 엄청난 돈을 들인 만큼의 기대효과가 있을 것인지 의문스러워 선뜻 거액의 돈을 주고 구입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또 한가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조기유아교육의 열풍에 생각 없이 휩쓸리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 때문이다.
주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회사의 교재들이 과연 쓸만한지, 어떤 회사의 교재가 좋은지에 대해 미리 사용해본 주부들에게 자문하는 내용들이 많다. 결혼하기 전, 한 선배가 "집사람이 백일 된 아기에게 100만원짜리 장난감을 사주었다"며 황당해 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 선배가 정말로 이상한 여자와 결혼한 줄로 알았다. 그러나 요즘은 거꾸로 아기에게 아무 것도 투자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누가 뭐라던 나의 소신대로 아기를 키우겠다는 자신감에 불탔지만, 지금은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엄습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 혼자 독야청청 소신있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아기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많은 엄마들이 이와 비슷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다수를 상대로 한 막연한 경쟁심에서 오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아기들은 말도 배우기 전부터 이성도 감성도 최고가 되도록 만들어준다는 교재를 접한다. 이 교재들이 과연 교육적인 효과가 있는 것인지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엄마들의 원인 모를 불안감과 막연한 경쟁심으로 인해 아기들 앞에 놓여진다. 모두들 아기에게 최고가 되는 교육을 시키는 동안 자칫하면 내 아이는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뒤쳐지고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불안감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경쟁심의 실체인 것이다.
유아기 시절의 자극과 경험의 중요성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결과들이 상술에 이용되면서 아기 엄마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싼 장난감과 책만이 유아기를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뭐든 남들을 한발 앞질러 배운다고 앞선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조기교육 열풍이 오히려 우리 아이들의 유아기를 망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주부는 아이를 맡긴 유치원의 원장과의 상담했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유치원, 놀이방 선생님이 그러하듯 엄마에게는 그저 공손하고 입에 발린 칭찬을 많이 하지요. 여기 선생님도 칭찬을 아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아이의 성질을 파악하고 있었고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장점 등을 말하더군요. 나도 몰랐던 부분들이 무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단점, 고쳐야 할 점도 얼마나 예리하게 알고 계시던지. 그 원인이 부끄럽게도 못난 엄마 때문이더군요. (중략) 여러분들 유치원에 보내는 기준을 무엇으로 생각하셨나요. 눈에 보이는 시설, 교구들이 무조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자질을 먼저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장난감이나 비디오가 아닌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엄마가 애정을 갖고 구입해준 비디오를 정성스럽게 틀어주고는 무관심하게 지켜보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우리들이 정작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기들의 장난감이나 책, 비디오가 아닌 바로 우리 아이들 그 자체인 것이다. 유아교육 역시 올바른 좌표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엄마들은 비싸게 구입해준 장난감과 책을 아이가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 오늘 배운 영어를 제대로 말하는지를 감독하는 감독관도 아니고 조련사도 아니다.
"요즘은 세상이 험해서 아이들도 독하게 키워야 한다"는 한 아주머니의 말은 사랑과 평화보다도 경쟁심과 우월감을 채찍질하는 작금의 풍토가 그대로 담겨 있다. 내 아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부모의 마음을 먼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오영주 ellee@hanmi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