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이삭 이 제법 누릇 누릇 해졌다
알 밴 토실토실 낟알들이 보리가시 속 에 숨어서
유혹을 한다
잘 든 낫으로 한 웅큼 베어다 불에 끄슬려 손으로
싹싹 비벼서 훌훌 불어 먹어면 충분한 요기감이 된다는걸
우린 알고 있었으므로 벌써 부지런히 눈 으로
서로 사인을 보냈다
긴 봄낮 은 가고 땅거미 내려앉자 제각기 집으로 갔다
말은 없어도 우린 그믐밤이 좋다는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 숟갈 강된장에 밥비벼 먹고 뒷마당에 으슬렁 으슬렁
나갔을때 벌써 낮에 눈맞춘 ?p눔들이 하일없이
땅바닥을 툭툭 차다가 침을 찍 찍 이빨사이로 뱉고있는 눔 도
고만 고만한 아이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굳세어라 금순아" 를 청승맞게 휘파람으로
불어제키고 있는 눔 , 뒷간 마려운 강아지 마냥 바지춤을 잡고
홀짝 홀짝 뛰고 있는 눔, 혼자서 구슬가지고 딱 딱 기가막히게
잘 맞추고 있는 눔 , 모두가 제각각이지만 머리속에
생각은 똑 같음을 난 안다
가자~`
긴 말도 필요없다
낮에 봐둔 논으로 숨어들어가서 한웅큼 베어서 나오면 되니까
어려운일도 아니다
그믐밤은 정말 컴컴하다
아무것도 잘 보이지않는다
온 들녘이 놀이터인 우리에겐 그러나 대낮보다 그곳으로 가는길은
훤 하다
자리를 봐둔 곳 쯤 에서 잠시 사방을 둘러보고는
낫 을 빼들고 모두 한웅큼씩 보리를 베기시작했다
이삭하나 흘리지 않고 순식간에 한 웅큼씩 베서
뒷산쪽으로 갔다
낮은 개울이 흐르는 곳인데 가뭄 끝이라 그런지 개울물이
많이 줄어있어서 불을 피우긴 좋았다
솔갈비 나무토막을 얼기설기 모우고 성냥통을 드득 그어서
불을 붙였다
불은 금방 활활 타올랐다
보리를 들고 아래,위,돌려가며 굽기 시작했다
더러 보릿대에서 보리이삭이 떨어져 나가고 했지만
결국은 다 떨어지고 말것이다
그래야 익을테니깐 말이다
불도 사위워가고 우리는 재 속에서 이삭들을 줏어모았다
보리가시가 타버리고 없는 보리이삭을 손바닥에 놓고
쓱쓱 비비면 알맹이가 나온다
우리는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가며 먹기 시작했다
하늘엔 별들이 쏟아질듯 있었고 밤 새 우는 소리가 뒷산쪽에서
들려올뿐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제 가자-
누군가 다 먹었다는 말 을 그렇게 했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서 집으로 향해 모두가 올때와는 달리
달음박질을 해서 갔다
꿈에서도 우리는 온 들녘을 헤메는 꿈을 꾸다가 일어난 아침
김서방-
막내 눔 일어났능감-
수갑이네 할아버지 음성이 대문쪽에서 들려왔다
아이구 어르신 어쩐일입니까-
황망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뒤이어졌다
자리에서 꿈을 깨지 못하고 뭉기적 거리던 내가 순간
막내라면 바로 나를 찾는게 아닌가 싶었다
문고리를 잡고 나갈려다가 이게 아닌데 싶었다
분명 어제밤 보리서리 때문이리라
- 허 이눔들이 내 보리논을 아주 못쓰게 해 놨네-
-아이구 어르신 죄송합니다-
이어서 아버지가 내 이름을 소리높여 부르시는 순간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을 알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나갔더니
-요놈 머리좀 들어봐라-
입 도 안씻고 잤더나-
증거가 확실하니 발뺌은 못하겠지-
- 허-
할아버지께서 껄껄 웃으시더니 보리밭을 그렇게 밟아놓으면
쓰냐고 걱정만 하시고 가셨다
조그만 손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눈 아래서 부터 새까만 손자국이
쭉 쭉 나있었다
아버지께 꿀밤 을 두어차례 얻어맞고 우물가에 앉아서
하늘을 보니 엷은 구름이 둥둥 한가롭게 떠있었다
짧은 봄 날이 그 속에 담겨있는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