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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 9 단


BY 양파속 2001-06-04

내 어릴적 우리집에서 불리워진 별명은 엄살 9단이었다
얼마나 엄살이 심했던지 붙여진 별명이지만
결코 영광스런 별명은 아니었다
엄살은 주로 아프면 나타나는데
병원가는것이 너무 무서워서 온 동리를 발칵뒤집어
놓기도 했다
6살 무렵오른쪽 팔에 종기가 났는데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있다
너무 어릴때라 자세한 것 은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한복을 입으시고 교육청에 다니시는 아버지께
전화를 하시고는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셨다
시장통에서 포도를 한 광주리 사서 예쁘게 담으시고는
-이것 다 줄께 울지말아야 한다-
이러시는데 어린 맘 에도 분명 좋지않은 예감이 들었나보다
그때부터 때를 쓰면서 끌려간곳이 "곽의원"이란 간판이
붙은 곳이었다
어머니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 6살 꼬마는 어디론가
사라졌더란다
인구 2만정도의 작은 시 였고 60년대 초무렵이니
미아보호소 니 뭐 그딴것은 있을리도 없고
흉흉한 소문속으로 문둥이가 어쩌구 하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을무렵이라
엄마는 꽤 많이 혼이났다고 했다
해가 설핏해지자 결국 근무중이신 아버님께 연락을해서
교육청 시커먼 찝차로 방송을 하며 다니셨다는데
선창가에 웬 계집애가 한나절 가까이 울고있다는 제보에
가보니 포도한송이를 들고 얼굴은 새카맣게 타서 울고있더란다
엄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 병원에 갔긴했는데
그때부터 6살배기 꼬마하나 붙잡기 위해 간호원 두명이
다리를 누르고 팔을 누르고 해서 의사가 간단한 수술을 하실수 있었단다
그런데 웬 계집애가 악다구니를 하는지 온 시내가 시끄러웠다고
했다
며칠 치료차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께서
- 욕쟁이 오나 아이구 쪼그만 하게 어디서 그렇게 욕을배웠을꼬-
하시며 웃으셨던건 분명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랫니가 흔들려서 마침 옆집에 돌팔이 의사선생님이 세들어
살고 계셨는데 무면허지만 꽤 잘 보셨던 분 이셨다
아랫니가 며칠 아파서 밥도 못먹고 다니자
할아버지께서 내 손을 잡으시더니
-옆집에 호두아버지께 가보자-
이러시는거였다
안그래도 엄살쟁이인데 간이 콩알만해졌다
안끌려갈려고 마당에서 몸을 뒹굴며 애고 데고 울며
난리를 쳤지만 할아버지의 힘 을 도저히 당할수가 없었다
끌려서 옆집에 갔는데 너무 억울해서
-동네사람들~~~내 ~죽는다~-
땅바닥을 치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이 를 뽑고말았다
초등(국민학교)시절엔 회충약 먹는 날이 있엇는데
약 먹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혀 밑에 감추었다가
선생님께 꾸중들은일 ,예방주사 안맞으려고
선생님께 거짓말 하고 살짝 빠져나와서 빙빙 운동장가에
맴돌다가 결국 붙잡혀서 주사를 맞던일
그런 시절을 보내다가 19살
고등학교 막 졸업을 하던 그 해
어금니가 갑자기 말썽을 부렸다
밤잠을 설치며 쑤시고 아프더니
시일이 가자 흔들리는것 같았다
아무말도 안하고 혼자서 칫과를 찾았다
아무래도 아가씨 치아가 ??어서 냄새라도 나면 안되겠다 싶어서
용기를 내어 갔는데
칫과란 곳이 예나 지금이나 기구들이 얼마나 무서운가
죽지못해 가긴 했는데 겁이 나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의자에 앉아 간호원이 시키는대로 있으니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께서 어떤 이 냐고 물어보셨다
입은 대답을 하면서도 눈 은 의사선생님 손으로 자꾸 모아졌다
- 아따 그 아가씨 겁도 많네 아직 아무것도 안가지고 왔소-
껄껄 웃으시며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에이 죽기밖에 더하랴 싶어
눈을 질끈 감고 있으려니
아픈 어금니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마취주사를 놓는 모양이다 하고 온 몸을 웅크렸다
- 입을 크게 벌리고 가만 있으세요-
이젠 집게를 가지고 뽑겠지
에궁 이젠 죽었다
속으로 셈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 아가씨 입 헹구세요 다 끝났어요_
상냥한 간호원아가씨 말에 그만 너무 놀래서
-증말입니꺼 진짜라예 진짜 내 이를 뽑은기라예-
기어이 증거물을 보고야 실실 웃음이 나왔다
너무 흔들려서 마취주사를 놓고 자시고 할것도 없었단다
ㅋㅋㅋ
괜히 놀랬잖아
머쓱해져 나오려는데
의사선생님 말씀
-아가씨 시집가서 아기는 우째 낳을라요-
그런데 선생님 시방요 제가 셋씩이나 낳고 삽니다요
이런것도 유전인지
우리집 큰딸애가 칫과에 가서 내 애간장을 다 녹였다는것
아닙니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