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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BY 63 2001-07-06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 이정하 / 비 오는 날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