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26

옆집 지은이


BY mee60 2001-07-13

옆집 지은이는 세살입니다.
지은이 엄마는 마음이 넉넉해서 산책을 잘 다닙니다.

오늘도 지은이는 장마비가 잠시 그어진 틈을 타서 산책을 갑니다. 산책이라고 해 봐야 수퍼에 다녀오는 게 고작이지만 지은이는 즐겁습니다. 이리저리 달아나는 지은이를 따라다니느라 엄마는 식은 땀이 나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엄마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건 어쩔수 없습니다.

이 발랄한 지은이가 어느 날, 몹시 곤란한 얼굴로 내집 현관에 왔습니다. 시무룩한 얼굴로 발을 꼬고 서서, 들어오라고 해도, 무얼 줄까 해도 웃지를 않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고개를 까딱까딱해 가며 아는 체를 할 터인데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 지은이 화 났네. 누가 지은일 섭섭하게 했을까"
하며 아이를 따라나서고보니 지은이 엄마가 허둥거리며 아이를 찾습니다.

"지은이가 뭔가 곤란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 심각한 얼굴인데"
내 말에
" 밖에 못 나가게 해서 그래요. 얼마나 나부대는지.."
지은이 엄마는 웃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돌이 갓 지난 꼬마아가씨는 자신을 통제하는 엄마가 견딜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너무나 속이 상해서 옆집 아줌마한테 제 편을 들어달라고, 얘기하러 왔던 것입니다.

길다란 복도식 우리 아파트 8층에는 아이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 돌짜리 셋은 아침마다 열린 문으로 인사를 하러 옵니다. 괜스레 오락가락하며 어정어정하며 똑똑 문을 두드려가며 아이들은 아는 체를 합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수줍게 웃으며 뒤돌아서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두 손을 쳐들고 막무가내로 안겨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는 다시 엄마 생각이 난듯이 달려갑니다.

아이들은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중 내 임무는 힘들다는 엄마를 꼬드겨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나가서도 먼길을 돌아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웃아줌마 덕분에 수퍼 옆 문구점에 들른 지은이는 판매대 뒤에 숨으면서 눈웃음을 짓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심히 빗물 웅덩이에서 철벅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지은이는 기쁨과 행복이 빛나는 눈길을 보냅니다. 길을 나서면, 이상한 들길을 가기도 하고 한번도 보지 못한 낡은 마루턱에도 가고 돌맹이 흙덩이 물 웅덩이 곁을 배회하게 됩니다.

엄마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돌아오는 길 위에서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작은 발로 밟아다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속속들이 느끼며, 말할수 없이 사랑합니다.

그 눈동자 속에는 자신이 살아야 할, 그리고 살려고 온 세상을 알고싶어하는 귀여운 욕심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은 산책길에서 몇번이고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틀어 뒤돌아봅니다.

너무나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가두어 기릅니다. 만져서도 느껴서도 밟을수도 없는 세상은 신기루일 뿐입니다. 가두어진 아이는 생각과 꿈과 기쁨마저 가둡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도록 통제된 아이들...

인생은 행복할 때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단아하고 아름다운 행복은 머나먼 관광지나 알록달록한 거짓 동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머리결을 만지고 지나가는 옅은 바람결 속에, 온갖 장난으로 더럽혀진 손바닥보다도 작은 신발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바로 세상을 살러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