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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여 이제가라


BY 사이비 아줌마?? 2001-08-08

조.중.동과 한나라당, 그 끈끈한 유착관계
언론인 출신 의원들이 DJ공격 선봉

1부 언론개혁과 그 적들
2부 언론권력의 정점 조선일보
3부 언론개혁, 이제는 실천이다


풍경1 ● 1997년 8월 10일 「경기동창회보」

1997년 8월 10일자 「경기동창회보」에 김덕형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경기고 57회)의 글이 실렸다. 제목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분이 되소서’이다.

“여당인 신한국당 대통령 경선에서 이회창 선배가 당선된 것은 한국 정상의 경기고의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올려놓은 쾌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대통령 고지는 낙관만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야당의 대선주자들이 호시탐탐 버티고 있고 또 당내에서 치열하게 경합해온 일부 주자들이 아직껏 툭 터놓고 승복하지 않으려는 내외우환을 이제부터 성심껏 추슬러 가야 할 것이다.”


풍경2 ● 1999년 11월 27일 경기도 고양시 뉴코리아CC

동아일보 핵심간부들과 한나라당 핵심인사들이 ‘필드’에서 만났다. 동아일보쪽에서는 김병관 회장, 오명 사장, 이현락 주필, 박기정 편집국장 등 4명이, 한나라당쪽에서는 이회창 총재를 비롯 김윤환·신경식·하순봉·김영구·박관용·신상우·김수한·김명윤·서청원 의원 등 12명이 참석했다.

한나라당 3명 당 동아일보 간부 1명이 한 조를 이루어 골프를 쳤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단란한 회식자리도 가졌다고 한다. 골프비용과 회식비는 모두 동아일보쪽에서 부담. 동아일보쪽은 “새천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권이 민생현안에 등한시하는 것 같아 격려와 당부 차원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풍경3 ● 2001년 7월 4일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실

16대 총선 이후 이회창 총재의 핵심측근으로 부상한 김무성 의원(총재비서실장)이 7월 4일 매우 민감한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다. 마치 편집국장이 기자들에게 지시하듯. 언론보도들을 종합해 그의 발언을 복기하면 다음과 같다.

“언론사주가 설사 구속된다 하더라도 비판 논객이 계속 편집국에 있어 비판논조가 유지된다면 우리(한나라당)가 (대선에서) 이긴다. 이번 싸움에서 공격하는 쪽의 진짜 클라이맥스는 언론사주가 구속되는 시점이다. 언론사주가 구속되더라도 언론이 비판적 논조를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주가 구속되더라도 마음을 독하게 먹고 길게 잡아 1년만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자면 비판 논객들이 편집국에 그대로 있어야 하며 사주가 구속됐다고 꼬리를 내리면 안 된다. 그렇게 버텨주지 않으면 언론사도 죽고 우리도 이기지 못한다. 언론사들이 각종 제보를 통해 현 정권의 비리를 축적하고도 안 쓴 것 많지 않느냐. 어느 때인가는 그것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당시 그 자리에는 지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로 사주가 검찰에 고발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자를 비롯, 4∼5명의 기자들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착의 과거 : 1997년 조선과 중앙의 이회창 띄우기

‘유착의 풍경’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선일보로부터 분사했지만 여전히 조선일보와 ‘한통속’인 월간조선 2001년 7월호를 잠시 들여다 보자. 두 개의 기사가 금방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하나는 ‘디제이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다른 하나는 ‘이회창 일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김대중 레임덕-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제목 아래 쓰여진 특집기사에서 월간조선은 디제이정부의 레임덕 현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사람은 물론 집권당까지 바뀌는 격변 속에 출범했다. 이런 격변으로 공무원 사회도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호남출신의 핵심 요직 독식과 그로 인한 조직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상황은 다시 반전되고 있다. 이회창 대세론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다음 정권에 대한 확신이 떨어져가면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공무원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김대중 레임덕’은 곧바로 ‘이회창 대세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3백96쪽부터 시작된 ‘이회창 일가 이야기-장수·수재 겸비의 명가’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이 기사를 쓴 조남준 월간조선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사회부장 대우)은 이회창 총재를 “반듯이 자라고 배운 가장 보편적인 상식인”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래서 “남들은 나를 온실에서 자란 ‘화초’라고 하지만, 어렵게 살아온 ‘들꽃’이다”라는 이 총재의 발언을 전문에 뽑아놓았다. 여기에서도 예의 이회창 대세론이 나온다.

“‘안동수 법무 파동’ 이후, ‘역시 여당은 안 되겠다, 그래도 이회창밖에 없지 않으냐’는 인식이 널리 퍼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김대중 죽이기와 이회창 띄우기’다.

‘반디제이’ 저널리스트의 선봉장인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 겸 편집장은 2001년 7월호 월간 『참여사회』와의 인터뷰에서 차기대선과 관련 “한국 보수세력이 정권을 탈환할 거라고 본다. 현재로선 이회창씨의 집권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노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편향’과 ‘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자신들의 권력을 만들기 위해 ‘지독한’ 편향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역시 1997년 12월 17일 터져나온 김대중 주필의 발언이었다. 당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면총력전’을 통해 선거분위기를 김대중과 이회창 후보의 2강구도로 몰아갔다. 그러자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 관계자들이 두 신문사로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김 주필의 그 유명한 ‘취중독설’이 터져나왔다.

“너희 국민신당과 국민회의는 이번 18일 투표가 끝나면 싹 죽어. 까불지 마. 내일 모레면 없어질 정당아 ….”

사실 한나라당 또한 지난 대선 당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우호적 언론’으로 규정해놓았다. 미디어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1997년 12월 3일자)이 입수해 보도한 당시 신한국당 내부보고서 중 ‘선거전략 및 언론관리방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특히 우호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조선·중앙 양지를 100% 활용하는 방안 적극 모색.” 1997년 대선 당시 보여준 ‘일그러진 신문권력’의 모습은 한국언론사에 두고두고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가 펴낸 『IMF 이후 대표적인 왜곡보도 사례모음』에는 그 당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그러진 모습’을 이렇게 꼬집어 놓았다.

“문제는 두 언론의 특정후보 편들기가 이념과 정책, 노선의 차이에 따른 의사표시가 아니라 언론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해졌다는 것이다. … 두 신문사의 선거관련 논조는 여당의 분열이 김대중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준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김대중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표심을 결집시키기 위한 ‘언론의 외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유착의 현재 : 언론탄압규탄대회에서‘김대중칼럼’ 낭독

지난 대선 같은 특정후보와 특정정당 편들기 양상은 지난 6월 20일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 이후 다시 등장했다. 당시 국세청은 23개 언론사가 총 1조3천5백94억 원의 소득을 탈루한 사실을 밝혀내고 5천56억 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조선·중앙·동아 등 빅3신문의 논조(‘언론자유 억압’)는 대체로 비슷했지만 그 강도는 조금씩 달랐다. 가장 극렬하게 반응한 곳은 역시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6월 21일자 신문의 1면에 “비판언론 죽이기”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큰 제목으로 뽑았다.

이때부터 ‘1등신문’을 자랑하던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기관지’로 탈바꿈했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매일 조선일보의 지면을 도배했다. 그래서 노무현 고문이 민주당 당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이회창 총재의 기관지”라고 강하게 쏘아붙인 것이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도 “조선일보는 브레인이고 한나라당은 하수인”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조선일보의 신문기사 제목들은 다음과 같다.

“언론계 전면개편 의도 아니냐/재집권 노린 여 승부수/합법을 가장한 제2의 언론통폐합/비판적 논객 물러나는 상황 올지도/국정홍보처가 홍위병으로 나섰나/언론을 민중언론으로 만들 의도냐/개혁이란 이름으로 언론말살/언론이 한목소리 낸다면 더 이상 민주공화국 아니다/언론 세무사찰은 제2의 유신/비판언론에 청부폭력.”

중앙일보도 조선일보와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신문기사 제목도 조선일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게 많았다.

“언론 약점 잡아 재편 의도/신문 무가지 세 추징 국세청 징세권 남용/형평 잃은 언론탄압/언론을 비리집단 매도/재집권용 정치각본/방송을 언론장악 도구로 활용/방송·시민단체 홍위병처럼 내세워 언론 굴복 요구/차기 집권 방해물 치우기/교활한 포퓰리즘.”

동아일보는 대체로 야당과 여당의 주장을 나란히 제목으로 올려 조선일보와는 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과 논설위원을 지낸 강인섭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을 2단 상자기사로 싣는가 하면,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정일 위원당 답방 사전정지용”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1면 머릿기사로 크게 실어 색깔론을 부추겼다.

다음은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동아일보의 신문기사 제목들이다.

“언론 목조르기 결정판/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 무차별 계좌추적 진상 밝혀라/일부 언론을 없애려는 속셈/실정비판 언론 공격 배후 조종세력 의심/민중언론을 만들겠다는 것인가/방송은 무죄인가/국정홍보처가 왜 나서나/언론장악 ‘99년 문건’대로 진행.”

한나라당도 빅3신문에 못지않았다. 지난 7월 12일 이환의 한나라당 부총재(MBC 사장 출신)는 광주 서구 지구당의 언론탄압규탄대회에서 “현 정권은 특히 김대중·류근일·조갑제 등 훌륭한 언론인들을 현 위치에서 내보내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탈루를 빙자해서 빅3의 손과 발을 자르려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지어 대구 동구 지구당의 언론탄압규탄대회에서는 규탄사 대신 조선일보 6월 29일자 김대중칼럼인 「너, 조선일보에 아직 있냐」가 낭독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잠시 한나라당 출입기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빅3신문과 한나라당의 유착관계 의혹을 이렇게 증언해주었다.

“당시 하순봉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아침마다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회의석상에서 가끔씩 미리 준비한 메모를 읽곤 했다. 그때 그때의 정세, 현안에 대한 코멘트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읽은 문장이 그날 발행된 조선일보의 사설 속에 그대로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한나라당을 취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전에 그런 일이 몇 차례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선 최병렬, 중앙 고흥길·홍사덕, 동아 강인섭

조선·중앙·동아 등 빅3신문 출신 정치인들도 한나라당과의 유착관계에 중요한 ‘인적 연결망’이 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 출신 의원들은 5공과 6공 시절 상승가도를 달렸다. 다음은 한 전직 기자출신의 증언이다.

“조선일보 출신들은 5공 때부터 문민정부 시절까지 승승장구했다. 김윤환, 최병렬, 허문도, 김용태 등이 대표적이다. 금배지를 달거나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 발탁되었다. 사실 조선일보, 특히 방우영 회장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에 출입했던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개각 예상명단을 정확하게 알아맞혀 눈총을 받았다. 본인은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다른 기자들은 개각명단을 조선일보에 흘려주는 청와대 내 친조선일보 인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와이에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이 흑석동에 있는 방일영 고문의 집이었다. 또한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공관에서 유일하게 와이에스와 독대할 수 있었던 사람은 방 회장과 조아무 목사뿐이었다는 얘기가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았다. 심지어 방 회장이 와이에스에게 세 사람을 개각명단 후보에 천거했는데 그 중 두 사람이 청와대 요직에 발탁됐다는 후문도 있다.”

조선일보 정치부장 출신인 김윤환 현 민국당 대표는 구 여권시절부터 조선일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한나라당을 탈당하기 전까지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왔다. 김철 전 한나라당 의원(현 민국당 대변인)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정치부 차장 출신이다. 그는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의 언론담당 특보로 활약했다.

조선일보와의 파이프라인이었던 김윤환·김철 등이 탈당하면서 현재 한나라당에 남아 있는 조선일보 출신 의원은 서청원 의원과 최병렬 부총재가 유일하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광주특파기자였던 서 의원은 현재 모든 당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반면, 최병렬 부총재는 이 총재의 핵심측근으로 부상해 있다. 최 부총재는 1959년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1963년 조선일보로 옮겨 정치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냈다. 노태우 정권 때만 정무수석, 문공부장관, 공보처장관 등 언론관련 요직을 꿰찼다. 이 총재의 서울대 법대 직계후배이기도 한 그는 “이 총재의 가장 비중 있는 조력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김대중 주필과는 서울대 법대 동문으로 친분이 매우 두터운 것으로 언론계와 정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김윤환 대표와 최병렬 부총재는 방일영 현 조선일보 고문과도 매우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방 고문 생일잔치에 두 사람을 비롯, 조선일보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는가 하면 방 고문과 두 사람이 따로 밖에서 만나는 것이 일부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기자는 취재도중 아주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입수했다. 그것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핵심측근인 최아무 부총재와 정아무 의원, 그리고 조선일부 간부 김아무씨 등 세 사람이 서초구에 위치한 D사우나의 회원이라는 것이다. D사우나의 회원인 한 연예인이 기자의 취재원에게 증언한 바에 따르면 “최아무, 정아무, 김아무 등 세 사람이 아침에 자주 모이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D사우나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회원 신상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기자의 취재원은 “거의 확실한 정보”라고 말했다.

D사우나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정규회원의 경우 보증금 9백60만원에 연회비 1백17만원을 따로 내야 하는 고급스포츠센터다. 명예회원은 연회비만 내면 1년 동안 이용할 수 있으며, 사우나뿐만 아니라 헬스, 골프, 수영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은 왜 아침마다 D사우나에 모였던 것일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지만 “한나라당의 실질적인 지휘자는 최아무 부총재와 조선일보 간부 김아무씨”라는 세간의 추측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한나라당에는 동아일보 출신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다. 특히 지난 16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한 동아일보 출신 국회의원은 여야를 통틀어 9명이다. 한나라당에는 원내에 강인섭·이부영·김형오·박종희 의원과 원외에는 이경재 홍보위원장과 유경현 운영특보가 포진되어 있다. 이 중 강인섭·박종희 의원과 이경재 홍보위원장은 모두 한나라당 언론장악저지특위 위원이다. 동아투위 출신인 이부영 부총재만 한나라당의 족벌신문 비호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앙일보 출신 의원은 고흥길·홍사덕·이규택 등 3명이다.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지낸 홍사덕 의원은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 사전정지용”이라는 문제의 발언을 처음으로 꺼내 색깔론에 불을 붙였던 장본인이다. 언론개혁 국면과 관련, 홍 의원이 ‘전위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고흥길 의원은 ‘참모’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의원은 중앙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내다 지난 1997년 2월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고문의 비서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현재 이 총재의 공보특보를 맡아 한나라당의 언론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빅3신문사들이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조선일보는 변용식 사장실장을, 중앙일보는 이장규 워싱턴 특파원을, 동아일보는 김용정 심의연구실장을 각각 편집국장에 임명했다.

변용식 조선일보 신임국장은 김대중 주필과 함께 ‘조선일보 내 SS라인’(서울고-서울대)의 대표주자다. 그는 특히 ‘조선일보의 황태자’로 불릴 만큼 방우영 회장과 방상훈 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얼마 전 조선일보 사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영향력 면에서 정치권력을 능가하며, 그래서 정부도 자꾸 견제하려고 한다”고 말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언론계에서는 이번 조선일보의 인사를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보고 있다.

이장규 중앙일보 신임국장은 변용식 조선일보 국장과 서울고 선후배 사이다. 경제부장과 경제담당 에디터를 역임한 ‘경제통’이며, 전략기획실장과 회장비서실장을 역임할 정도로 홍석현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한다. ‘신문시장 1위 진입’이 목표인 중앙일보의 전략을 가장 잘 실행할 인물로 평가받는다. 최근 조선일보의 변 국장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공정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는 지켜야

의외의 인사개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김용정 동아일보 신임국장은 해직기자 출신으로 1975년 동아투위의 전신인 자유언론실천위원회 핵심위원으로 활동했다. 일부 기자들은 그를 ‘정권쪽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기자는 “최근 세무조사가 김정일 답방용 카드라는 야당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키고, 금강산 육로관광 합의서 문제를 무리하게 전면에 배치하는 등 전 국장(최규철)은 신문을 가지고 정권과 싸우겠다는 사람이었다”면서 “그같은 논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자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말해 신임국장에 대한 기대를 간접적으로 나타냈다.

‘언론권력’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에 의해 만들어져야지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최근 빅3신문 내부에서도 한나라당과의 유착관계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설사 언론개혁 흐름에 직접 동참하지 않더라도 언론 본연의 임무인 공정보도와 사실보도에만 충실해 준다면 그것 자체가 언론개혁의 큰 성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