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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의 틱


BY mee60 2001-08-28

오늘 다급한 목소리에 불려나가보니 어젯밤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해서 목사님이 다녀가셨다고 합니다.
화가 나서 지금 목사님 운운 하게 생겼느냐고 당장 신경정신과로 가서 진단서 끊으라고, 아예 변호사사무실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상담하도록 했습니다.

그 아이는 불과 한달전만 해도 견딜수 있었던 아이였지요. 망나니아빠를 만나서 불행했던 그 아이는 오늘 결국 틱 증세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화가 나는군요. 참을수 없이 화가 납니다.

술만 마시면 온 집안을 들부수는 아빠 밑에서 10년을 견디던 아이가 결국 못 견디고 그토록 고통스러운 내면을 드러내는데 그 아빠는 제 탓이 아니라 하고 진작 도망갈 기회를 놓친 그 엄마는 상황 판단도 흐릿합니다.

한 사람의 그릇된 삶의 방식이 온 가족을 불행에 몰아넣어도 우리 사회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술문화에 너무도 느긋한 우리 사회가 밉습니다. 십여년 남의 집에 떠돌며 맞고 부수어져도,경찰에 신고해서,몇번이고 신고해서 경종을 울린 사람은,아래층 살던 외국인 교사 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남의 나라 사람 말입니다.(우리는 가정사까지 남의 나라 사람이 떠들어줘야 하는 덜떨어진 국가입니까?)

도박과 마약, 술주정에 가족들이 대항하지 못하는 것은 남성, 그리고 가장의 권한이 법 안에서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더러 남편의 행태에 분노한 여성들이 이혼을 감행하지만 저는 자꾸만 말립니다. 이혼 그 뒤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큰 어둠이 이혼한 엄마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손가락질하고 험담하는 이웃들과 절대로 나는 그런 곤경에 처하지 않으리라는 얄팍한 우월감, 경제적 불평등, 기회의 무수한 박탈, 질시...

술주정이 도를 지나친다 해도,본인이(술 먹는 남자가), 그리고 그 친족(시어머니와 시아버지 - 실상 문제의 시발점인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살인이 날 때까지 방기되는 사회 - 선진국 어떻다고요? 오이씨디가 어쩌라구요? 우리가 말입니까?

도박중독으로 사돈에 팔촌까지 빚더미에 올라앉아도 눈 뜨고 구경만 해야하는 대한민국(심지어 왜 일찌감치 남편을 말리지 않았느냐는 책망까지 들어야 하는 나라)

벌써 육년째 알고지낸 한 가족이 이렇게 허무러지는 걸 보고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벨이 울립니다. 시댁에 전화하여 이제 아이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었으니 하고 말을 꺼내자마자 시어른 하시는 말 - 내가 어쩌라구 하며 끊어버리더랍니다.

분노로 덜덜 떨며 전화한 그녀에게 나도 소리칩니다. - 밤새도록 전화 해! 새도록 악 써! 당신이 술주정으로 키운 자식,이제 그 자식이 내 자식을 잡아먹고있다고. 자식을 그렇게 키워놓고 아랫목에 잠이 오느냐고! 오늘 잠 못 드는 밤 너무 억울하다고,억울하다고,억울하다고...

꼬챙이처럼 말라버린 그녀가 어떻게 이밤을 보내는지요. 어릴 적 그토록 영특하던 한 아이, 또 한 아이가 희생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이혼하는 데만 6개월에서 일년, 지금 당장 환경을 바꾸고 아빠를 안 보아야 하는 저 아이가 무슨 수로 그 세월을 견딜까요? 참다가 놓쳐버린 저 아이를 안고 그녀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울어야 할까요?

주정뱅이 아빠모임 하나 꾸리실 분 없나요? 도박하는 아빠모임 하나 안 만들실래요? 왜 이토록 엄마들은 나약할까요? 결국 끝을 맞닥뜨리도록 대한민국 여자들 왜 이렇게들 살까요? 저마다 개성과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에 희생되는 아이들을 돌보아주실 분은 없나요?

이렇게 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아직도 덜 자란 여성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심지어 조기교육 운운 하며 자기 자식을 불구로 망가뜨리는 엄마들까지 있는 나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에 희망의 불을 지펴야 하는 저는, 멀리 갈 돈도 넉넉잖은 우리는, 오늘 아프고 슬프고 외롭습니다.

너무 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