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년 전 일이다. 아내는 운전을 배워서 한창 재미를
느낄 때였다. 여기 아주마님들도 운전하시는 분들은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음 운전을 배우면 자다가도 천장에
운전대가 아른아른, 오락가락 했던 것을...
우리 마눌 시누가 넷이다. 셋은 서울에 살고 셋째 시누만 대전서
산다. 다 손위이고 성질 또한 한 가락씩 하는 시누들이라서
결혼해서 처음은 무척 스트레스 받았다. 이제는 이력이 나고
배짱이 생겨서 아주 '내배째라'가 되었다.
그래도 지 남편과 피를 나눈 시누들이니 평소에야 핑계대고
안만나면 되지만 시부모 제사에는 참석해야 하니 안 부딛힐
수 없지. 그 해 4월에도 시아버지 기일이라서 나는 직장 때문에
참석 못하니 혼자서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서울에
살면서 혼자 달랑 내려가면 또 시누들 눈치하고 지랄들 하니
연락을 했다. 그러니 차를 가지고 간다고 하니 같이 타고
가자고 했다 한다. 혹떼려다 혹붙인 격이지. 우리 마눌 될
수 있으면 시누들 하고 같이 자리를 안하려 하는데 같이
차를 타고 가자고 하니. 사실 큰 시누는 친정 엄마하고
나이가 같고 성질 또한 더러워서 마눌 두드러기 돋는다.
시집이라야 부모님 다 돌아가셨으니 형님이 제사를 모신다.
서울에서 4시간은 걸리니 아침 일찍 큰 시누집으로 가서
세 명의 시누를 태우고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침에 신랑과
애들 두 명 출근과 등교시키고 큰 시누집으로 갔다. 가서
또 빈손으로 들어가기도 그래서 음료수라도 한 박스 사려고
들어가려고 생각하니 핸드백이 없는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속에 지갑이 있고, 신분증은 물론이고 면허증,
온갖 카드 등등 다 들어있으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침에 주차장에서 트렁크에 짐을 싣고
정리 한다고 옆에 차 트렁크 위에다 핸드백을 놓고서 출발할
때 그냥 출발한 것이다. 이러니 아침 출근 시간에 그 차나
다른 차 주인의 눈에 띄었을거고 돌아올 확률은 50:50인 거지.
즉 양심이 있으면 전화로 돌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카드
까지 불법으로 사용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반은 체념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아내가 헐레벌떡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했다. 차를 다시 돌려서 가는데
차가 밀리니 내가 택시를 잡아타고 먼저 가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외출신고를 하고 직장동료의 차를 빌려타고 지름길로
달려서 갔다. 그런데 그 시간까지 차가 있을 턱이 있나. 다
출근을 했지. 그래서 포기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다. 아내
에게 핸드백이 없으니 포기하고 천천히 안전하게 운전하라고
연락은 했는데...
그래도 화는 났다. 에이구, 이노무 마눌! 내가 운전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냥 고속버스 타고 가라고 해도 운전연습 겸
차가지고 간다고 그 고집을 피우더니 결국 일 저지르고 말았군.
그러나 어쩌랴. 벌써 벌어진 일인데. 나는 이미 끝난 실수로는
절대로 사람 다잡지 않는다.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데어가지고.
아버지는 누가 실수를 하면 아주 쥐잡듯 하셨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전화가 왔다. 핸드백을 찾았다고. 그래서
어떻게 찾았냐고 물으니 어떤 아주머니가 찾아 왔다는 것이다.
바로 옆에 댄 차의 남자가 아침에 핸드백을 발견하고 자기 차에
싣고 직장으로 간 다음에 자기 아내한테 우리 집으로 가서 알려
주라고 했단다. 자기 명함에다 연락처를 써서 바닥에 놓고 왔는데
연락이 없고 많이 당황했을 것 같으니 집 주소로 빨리 찾아가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 남자의 아내가 찾아 온것이다. "핸드백을 자기
남편이 가지고 있으니, 시간 약속하고 직장 앞에서 만나서 찾아가라."고.
아내는 즉시 그 남자한테 연락을 취해서 시간약속을 하고 점심무렵에
만나서 식사나 하라고 사례금을 주니 받지 않아서 핸드백만 찾아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 마눌, 이 핸드백 찾지 못했으면 자나깨나 잔소릴 하고 살텐데.
그 핸드백 사건으로 시집에도 못가고 그 보기싫은 시누들은 먼저
고속버스 타고 떠났으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인가???
우리가 세상이 많이 각박해졌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 "서울에
가면 눈 감으면 세워놓고 코를 베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은근히 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살벌하면 세워놓고 코를
베어가나 하고. 그래도 이 세상에는 정직한 사람이 더 많고, 따뜻한
인정이 살아있다. 그래서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훈훈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오늘은 온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운 일요일. 전국에 아컴님들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