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사람 사는 나라가 아니고 자동차가 사는 나라다.’
아줌마가 미국에서 몇 달 살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어디 가나 사람을 보기 힘들다.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것은 자동차이지 사람이 아니다.
뉴스를 보던 아줌마는 신기했다.
사람들이 바삐 오고 가는 길거리 모습이 화면에 나타난 것이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서울에서 살던 아줌마는 문득 사람이 그리웠다.
남편에게 물었다.
“어디 가면 저렇게 많은 사람은 볼 수 있지요? 난 도무지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던데…”
남편은 워싱턴 중심가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아줌마는 정말 그런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사람 구경을 하고 싶어서, 남편을 졸라 중심가라는 곳을 갔다.
그러나 그 곳도 텅 비어 있었다.
남편 가라사대
“일요일이라 그런가 봐!”
아무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인파를 구경하고 싶은 아줌마의 소원은 무산되었다.
미국에서 사슴을 보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자기집 뒤뜰에 가꾸는 채소를 사슴이 와서 다 뜯어 먹었다는 하소연도 많다.
사슴은 산 속에만 살지 않는다.
나무가 많아서인지 주택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느 날은 길을 가다 사람보다 사슴을 더 많이 보는 날도 있다.
해질녘이면 사람 사는 곳에 떼로 몰려나와 돌아다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사슴그림이 있는 표지판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사슴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자동차와 부딪쳐 죽어있는 사슴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다.
특히 늦가을 짝짓기 철이나, 해질녘 어스름에는 조심해야 한다.
사슴과 부딪쳐 자동차가 망가지는 것은 다행한 일이고, 그런 사고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아줌마가 미국에 살면서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지도를 살피는 것이다.
미국은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어디든 혼자서 찾아 갈 수가 있다.
아무리 조그만 길이라도 길 이름 표지판이 있고, 건물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번지가 표시되어 있어 찾기가 쉽다.
도로 표지판도 잘 정비되어 있어 헷갈릴 염려가 거의 없다.
지도를 보면 길을 따라 점을 꼭꼭 찍어 놓은 길이 있다.
씨닉 로드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런 길을 따라 운전하면 길 양 쪽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전개되기 마련이다.
지도를 보면서 씨닉 로드 외에 아줌마가 잊지 않고 살피는 곳이 하나 더 있다.
꽃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워싱턴 인근에 브룩사이드 가든이 있다.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잘 가꾸어 놓은 곳이다.
입장료도 없다.
주로 자원 봉사자를 활용하여 꽃과 나무를 가꾸고 있다 하였다.
아줌마가 지도를 살피다 찾은 곳이었다.
아줌마는 철 따라 바뀌는 꽃과 나무를 보기위해 이 곳을 자주 찾았다.
‘코리안 코너’라는 슈퍼마켓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러 한 바퀴 돌아볼 때도 있었다.
가을이었다.
브룩사이드 가든에는 다알리아와 장미가 한창이었다.
혼자보기 아깝다는 생각을 한 아줌마는 며칠 후 남편과 함께 그 곳을 다시 찾았다.
모처럼 남편과 같이 찾아간 그 날, 브룩사이드 가든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쇠창살로 된 문이었다.
아줌마가 여러 번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후문 쪽으로 가보았지만 그 쪽도 마찬가지로 굳게 닫혀 있었다.
굳게 닫힌 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deer proof gate’
아줌마는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날은 일요일도 아니었고, 다른 특별한 공휴일도 아니었다.
문을 닫을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아줌마는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모처럼 남편과 꽃 구경을 하려고 했었는데…
며칠 후 남편과 같이 다시 그 곳을 찾았다.
그 날도 브룩사이드 가든으로 들어가는 쇠창살 문은 양 쪽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날은 쇠창살 안 쪽에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아줌마 같은 사람을 위해 그 곳에 있었던 지, 자동차에서 내린 아줌마가 다가가니 묻기도 전에 자동차를 문 가까이 가져오란다.
자동차로 문 가까이 간 아줌마는 비로소 ‘deer proof gate’의 뜻을 알았다.
자동차가 쇠창살 문 가까이 가니 그 문은 자동으로 열렸다.
자동차처럼 무거운 것이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열리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슴이 그 앞에 서도, 사람이 그 앞에 서도,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걸어서 통과하는 사람이 없고, 자동차를 탄 사람만 그 문을 통과하는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문이었다.
꽃과 나무를 가꾸는 정원에 들어가고 싶어, 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슴을 문전 박대하기 위해 고안된 문이었다.
사슴이 꽃과 나무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한 아줌마는 ‘deer proof gate’란 표지판을 보고도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