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kcast.com/music/player/link_one.asp?idx=19
위의 주소를 붙여 넣으시면 음악이 나옵니다.
::주인잃은 기타가 흐느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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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비틀(Quiet Beatle), 세상에 작별을 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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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비틀즈의 리딩기타 세션으로는 유일하게 외부에서 맡았고, 그것도 당대의 기타천재로 불리던 에릭클랩톤을 과감하게 기용해 만든 곡으로 화이트앨범으로 더 유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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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자 일간지 사회면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안타까운 폐암투병기 옆 꼭지제목은 비틀즈 멤버인 조지해리슨의 죽음을 조용히 전하고 있었다. 기사를 내려가던 나는 충격과 함께 쓸쓸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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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9일 오후 1시경, 20세기 청년문화의 상징이자 세기의 신화를 창조했던 비틀즈의 전 멤버인 조지해리슨이 지병인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8세.
::고향인 영국 리버풀에서가 아니라, 타향인 미국의 LA에서 그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인사는 평온하게 치뤄졌고, 수많은 문상객들이 뉴욕의 스트로베리필드거리와 리버풀에 몰려 들어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이제 비틀즈 생존멤버는 폴매카트니와 링고스타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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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도자들이 조의를 표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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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토니블레어 수상과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이 자국의 '국민가수'인 그에게 조의를 표하는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프랑스의 리오넬조스펭 총리와 아일랜드의 총리까지 이례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죽음은 한 나라 대중음악인의 것이 아니라, 60년대를 거쳐온 한 세대의 문화사적 고별과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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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빌클린턴 전 대통령도 취임 무렵 학창시절 비틀즈의 <엘리너릭비(Eleanor Rigby)>를 들으면서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웠다고 술회한 바 이제 50대를 막 넘어선 서구의 지도자 중에서 비틀즈의 음악과 함께 청년기를 보내면서,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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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영원한 청년으로 살았든지 노회한 정치가가 되어 세계를 탐욕의 공간으로 만들었든 간에 비틀즈는 만국 보편의 문화코드였음에는 분명했다. 이제는 그 문화코드를 창조하고, 오랜시간 체화하며 살아가던 증인들 중 4분의 2가 사라졌다는 안타까움이 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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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비틀(Quiet Beatle)의 숨은 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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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비틀즈 멤버 중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익숙한 인물들은 뭐니뭐니해도 지난 80년 암살로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주며 하직한 존레논이 단연 꼽히며, 그의 필생의 라이벌이자 벗인 천재 팝아티스트 폴매카트니가 꼽힌다. 비틀즈의 탄생부터 해산에 이르기까지 두 기둥의 이야기로만 묶어도 충분할 정도로 링고스타와 조지해리슨, 다른 두 사람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가리워졌다.
::더구나 음악을 히트곡 위주로 따져서 듣고 평가하는 악습이 유행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질 게 없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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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작곡 실력을 뽐내던 존과 폴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던 조지는 나이로나 음악적으로나 늘 막내의 자리에서 묵묵히 비틀즈를 뒷받침했었고, 상대적으로 어둡고, 말수가 없던 그는 세간에서는 차가운 사나이, 혹은 '조용한 비틀'로 불려졌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차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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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에 관심을 기울이던 그는 인도전통악기인 시타르에 매료되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소설로 더 유명해진 <노르웨이숲(Norwegian wood)>에서는 시타르로 몽환적이고 허무한 철학의 여운을 동시대 청춘의 가슴에 강렬하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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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계속되는 비틀즈 작품에 그는 동양철학적 사고관이 담긴 난해한 실험곡과 당시로서는 생소한 악기인 무그신서사이저를 과감히 채택하는 실험을 감행해 혁신적인 연주세계를 열어갔었다. 존레넌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지던 풍자와 사회비판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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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틀즈가 화려한 활동을 접고, 공백기를 가질 무렵 인도철학여행이라는 깜짝이벤트를 벌였던 것 역시 조지해리슨의 아이디어와 주장이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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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마저 팝역사에 남긴 비련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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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66년에 그는 매력적인 여인 패티보이드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했다. 하지만 그 여인 패티가 팝음악사에서는 거론되지 않을 수 없는 비운의 여인이 되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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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버즈]라는 전설적인 프로젝트 그룹의 멤버였고, 당대 최고의 기타천재로 꼽히던 신예 에릭클랩톤과 조지는 기타연주 영역에 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에릭의 솜씨를 그보다 한수 위로 선선히 인정하고, 그와 함께 활동하고 도움을 받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엔 우정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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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화이트앨범' 제작 당시 비틀즈의 외부세션으로는 파격적으로 기타리딩(보통의 락밴드에서 리드기타는 곡의 흐름 뿐만 아니라 밴드 전체의 음악적 성격 및 권력관계까지를 상징하기도 한다!)를 맡기도 했고, 그 파격은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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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지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에릭클랩톤은 그의 부인 패티에게 점점 빠져드는 악마의 심정으로 괴로워해야 했고, 그 괴로운 심정과 남모를 연정은 훗날 에릭클랩톤 최고의 히트곡이자, 팝의 명곡으로 꼽히는 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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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클랩톤의 끝없는 구애는 조지해리슨과 패티보이드의 법적이혼 전후에도 계속되었고, 마침내 1979년 결혼하기에 이르렀지만, 그토록 바라던 여인을 향한 이상과 현실은 달랐나 보다. 에릭클랩톤 역시 결국 80년대말에 다시 이혼하고 말았다고 하니 사람마음이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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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비틀즈내에서 흔한 스캔들 한번 없이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던 이 '조용한 비틀'은 사랑과 이별로도 유명세를 톡톡히 치뤘고, 하필이면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긴 가슴 아픈 비련의 사나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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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사랑을 택해 우정이 무너지면, 평생 원수가 되고 마는 우리네 각박한 인생사와 달리 조지와 에릭은 에릭의 알콜중독이 겹쳤던 침체기 동안에도, 그리고 조지가 세상을 하직하는 그날까지 끈끈한 우정으로 이어져 사사로운 情을 뛰어넘는 교감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묘한 인연, 사랑과 우정 사이, 우리로서는 얼핏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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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울려 퍼질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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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8일은 존레넌의 21주기다. 존레넌에 이어 조지해리슨의 죽음으로 현존하는 비틀즈 멤버는 두 명뿐이다. 네 명 중 절반이 영원한 돌아올 수 없는 피안(彼岸)의 땅으로 사라져 간 것이다.
::해산 이후 신화의 주체들인 비틀즈 멤버조차 다시 복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던 비틀즈 신화는 이로써 공식적으로나 산술적으로나 현실에서는 '물건너간'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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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그들이 다시 만나려 해도 지상에선 베이스와 드럼의 육중하고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만이 남은 빈 자리를 아쉬워할 것이고, 주인없는 기타의 경쾌하거나 혹은 애절한 소리만이 마음 속에 울려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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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그 절반과 절반이 다시 만나 이제 온전히 그들만의, 그들만을 위한 환상적인 하모니를 연주하게 될 것이다. 미움과 질투와 반목도 사라진 천상에서... 어쨌든 오늘도 주인잃은 기타는 서럽게 흐느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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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리포터 박기원/ shia2004@ko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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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으로 따질 수 없는 소중한 추억과 감성을 남겨준 비틀즈 신화의 4분의 1인 故조지해리슨의 명복을 빌며
제목처럼 온화하고, 점잖게, 하지만 애처롭게 흐느끼는 듯한 에릭클랩톤의 기타연주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