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 결혼해서 폐백을 시가 어른들께 드리던 그 순간부터해서
시가쪽은 사돈의 팔촌까지 불편한 꽃고무신에 한복입고 집집이
끌려(?)다니며 인사드리던 순간 순간......내가 왜 이래야 하지?
마치 내게 너무 안 맞는 스타일의 옷을 어색하게 입고 외출을 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것 같은 찜찜함, 불쾌함....내가 내가 아닌
듯하고 그랬다.
생전 못 본 시댁쪽 조상들 제사에 남자들 다음차례로 며느리들 죽
늘어서서 절할 때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싶던 그 느낌.
십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난 고스란히 그대로이다. 얼마나 더 살고 나면 남편 조상이 내 조상 같아지고 마구 정성을 다해 드리고 싶어지나?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우리 시댁은 유난스럽게 양반을 따지고 도리에 목숨을 거는 집안
이다. 결혼 십년이 지나도록 지금까지 노인네들의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내가 어떻든 함구하고 따라주는 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분들은 그저 유교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시는 가치관에 따르고
있을 뿐이니까.
본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하시는 것이고 지난세월동안 효자아들의 강압과 전 사회적인 분위기와ㅡ 거기다 자라면서 함부로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끔 억압하는 착한여자증후군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단 한번도 내 솔직한 느낌을 어른들께 전하거나
변화를 모색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실상 우리가 젊은 며느리가 말이지, 뭔가가 싫다고 느껴서
뭔가가 부당하다고 의견을 내면 그건 곧 지존하신 시부모께 맞서는 게 되어 불경중의 불경스런 사건이 되고 집안만 쑤셔놓은 벌집되기
십상이지 도무지 들어먹일 구석이 보이질 않더라는 거다.
실상 극한 두가지 경우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유교가 가치관인 시댁에 맞설 때(감히 아들도 아닌 며느리가) 첨엔 콩 볶듯 갈등이 사방으로 튀다가, 남편이 마누라와 자식!하고 택해서 긴긴
세월 시부모와 등돌리고 사는 집!
또는 결혼 햇수에 관계없이 울 나라 남자들의 덜 떨어진 흰소리-마누라는 갈아치울 수 있지만 엄마는 오직 한 분-하는 명제에 따라 결혼 이 후도 줄기차게 잡고 있던 시엄마치마꼬리 부여잡고 놓지 않아
자식 뿔뿔이 부부가 이혼까지 하는 경우.....
실제로 유교문화가 이런 지경까진 가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가정을 참 효도와 사랑과는 거리가 멀게끔 하고 셀 수 없는 가정을 고통받고 병들게 하고 있는 지를 생각한다면 참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이다.
왜 우린 이다지도 획일적인 가치관속에서 오직도 효라면 유교의 관습을 지켜야만 행해지는 거라는 앞뒤 전도된 생각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사실 조상이 중요한 효의 대상이라면 양가 집안 조상이 한 가정에서 똑같이 중시되어야 하고, 여성에게만 최소 20년이 넘게 키워주신 부모님 배신하디시피 하며 온갖 효와 정성을 결혼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댁 어른들과 시댁 조상들에게만 강요하는 이 비인권적 처사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매 맞고 학대받는 여성만 인권이 없는게 아니라
이 나라 전 여성이 인권이 짓밟혀 한이 쌓이고 인간성들이 뒤틀려 간다. 이러니 참 민주화가 잘 될 리가 없다. 각 가정이 먼저 민주적이지 못한데 어찌 민주사회가 이뤄질거며 민주국가가 성립되랴!
가까운 이들 중에 더러 결혼 십년이 지나니 이젠 사실 친정보다 시집이 더 편하다는 얘기도 간혹 듣게 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
낳아 똑 같은 정성으로 키워주신 부모와 그런식으로 정 끊고 생이별 당하듯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결국 정끊김을 당한 것이다. 사회적 관습과 관념이라는 이름하에......남북이산 가족만 이산가족인가? 명절에 내 집 못 가는 모든 며늘들이 다 이산가족이다. 왜?? 내 핏줄 내 맘대로 못 만나니까.
자 상상을 해 보자. 다음 명절에 남편에게
여보시오, 오랫동안 당신조상께 봉사 많이 했으니 우리
이번 명절은 내 친정쪽 조상제사에 함 참석해 봅시다.
하고 제안 한다면???
일년에 명절은 그래서 두 번 있는 거.. 아닌가? 답을 리플로 달아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