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세미나 관계로 상경을 했다.
어릴때부터 공부하고 담 쌓았든 언니인 나와는 달리
학창시절 내내 1등만 하든 모범생인 동생은
시샛말로하면 성공한 케리어 우먼이다.
공부만 잘하면 내가 말을 안해....
같은 제조원료로 만들었는데도 어떻게
제품이 이리 틀리게 나올수 있나 의심될정도로
그녀는 예쁘고 완벽해서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지금은 노쇠하셔서 기력이 없으신 울엄마는
내 여동생만 보면 살맛이 난다 하셨고
그녀는 바로 울엄마의 자존심였는데....
사실 알고보면 그 자존심에 대한 일등공신은
나였다는걸 아무도 모르리라.
깍쟁이고 빈틈없는 내 여동생과 달리
나는 덤벙대고 얼팡하며 헛점 투성였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비교가 되랴...
'니 동생 본 좀 봐라'
내가 울 엄마한테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었든 소리였다.
성적표를 가져오면 내 동생 성적표와 너무나
대조가 되어 난 완전 맷깜였다.
울 엄마가 한석봉 엄마처럼 종아리 걷게하고
한찰 두찰... 세련되게 회초리를 때리는 엄마라면 얼마나 좋으랴.
또 요즈음 엄마처럼 자라는 애들도 자존심이 있다는걸
아셨으면 좀 좋으랴.
걍 밀고 당기고...머리끄뎅이 쥐어박키고...
성적표 받는날은 완전 팥쥐엄마의 표본이 울엄마셨다.
얼팡한 나하고는 달리 내 동생은 얼마나 영악한지
지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선 눈깔사탕이나 내가 좋아하는
다른걸로 꼭 나와 협상을 하자했고...
등신같이 예나 지금이나 뭐만 주면 좋다하는 나는 그 조그만
먹을거에 눈이 어두워 이왕맞는 매 한번 더 맞지 뭐..
요러면서 대타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 내 잘못도 내 잘못. 내 동생 잘못도 내 잘못.
나중엔 뭐 잘못한거 있으면 엄마는 물어보지도 않고 으례껏
날 의심했다.
변명하믄 말대꾸 한다고 맷깜이 더 늘어나니
입다물고 가만히 있길 무릇 기하인가?
만화책 같은건 안읽는 나완 반대로 여동생은 만화책을
엄청 좋아했다.
엄마 몰래 빌려놓고 읽다가 들키면 엄마는 으례껏
동생을 나무라는게 아니라
'공부도 못하는기 만화책을 빌려가지고 와서...?'
두말도 않고 나를 닥달하고 야단치셨다.
참말로 공부못하는 죄. 덜렁대는 죄로 도맷금으로
온갖 누명 다 쓰며 얻어터져도 내 동생은 언니를 위해
절대 십자가를 져주지 않았다.
한쪽에서 내가 맞는걸 곁눈질 해가며 어떤땐
선심쓰는척 언니 한번만 용서해주라고 얄미운
짓이나 하든 뇬였는데...
당연히 공부를 잘했으니 학문적인 길로 들어서서
선생님. 강사. 전임. 조교....
요런 코스를 밟아 지금은 대학강단에 어엿한
교수님으로 재직중이다.
그래도
옛날의 나한테 저지런 악명높은 전과때문인지
자라서는 내 말이라면 콩을 팥이라해도 곧이 들었고
지금은 뭘 시키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들을 정도로 바뀌었다.
그러니 우째 미워할수 있겠는가?
또한 엄마도 나이 드시니까 이상하게도
공부못하고 덜렁이인 나에게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시며
당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았지 공부잘하고 깍쟁이인 동생에겐
힘든 소리나 하소연은 절대 안하셨다.
모처럼 동생왔다고 육고기 사서 지글 지글 구워 먹였다.
사실은 그게 젤 요리하기 편하고 쉬우니까...
이런 저런 얘기끝에 집에 전화 자주 하냐는 내 물음에
내 속을 화악 뒤집는 대답.
'엄마 귀가 먹어서 말을 못알아 들어. 전화 함하고 나면
목이 쉰다. 짜증나. 언니야'
내가 진짜 귀싸대기 올릴려다가 말았다.
고기 맛나게 해준거 다시 물리고 싶을 정도고.
'너 말을 어찌 그리 할수 있냐? 그럼 나는 우째하는데?'
'언니는 원래 음성이 크잖나'
도대체 철이 있는건지 없는건지...나쁜뇬.
동생은 요조숙녀가 맞다.
지나 내나 경상도 뇬이면서 나는 사투리가 범벅이 된
말이지만 동생은 여우같은 서울내기 표준말을 사용한다.
음성?
내가 툭사발이 깨지는 소리로 시끄럽게 말하면
동생은 입을 오무리며 아주 이쁘고 우아하게 말한다.
교수들은 다 그렇게 말하는지 내가 교수가 안되봐서
모르겠다만...
울엄마
청력이 약해져서 보청기도 낄수 없을 정도시라
전화는 거의 아버지가 받으신다.
글치만 아버지가 안계신 낮엔 어쩔수 없이 받으시는데
그럴때는 큰소리로 얘길 해야하는건 당연지사.
큰소리로 얘기하는게 챙피한것도아니고
내 엄마니까 당연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 믿는데 뭐시라?
목 아파 짜증난다고?
'너 학생들한테 강의할땐 큰소리로 안하니?'
'그건 전화하고 틀리잖아?'
'야! 엄마에게 얘기하는게 니 학생에게 얘기하는거보담
못하니? 확~'
진짜 머리통 콱 쥐어박고 싶다.
엄마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얼마나 지를 공주같이 키웠는데...
지가 공주 대접 받을동안 나는 무수리로 얼마나 구박아닌
구박을 받았는데....
사실은 무지 맘이 아프다.
정정하시다가 나이 먹어 기력없고 귀가 먹으신 울엄마 생각하니
맘이 아프고
사랑받을땐 여한없이 받다가 그 사랑을 되돌려줄줄 모르는
여동생이 미워서 마음아프고...
이도 저도 아닌 나도 마음 아프고...
어쩌다가 정정하신 울 엄마가 이렇게 되셨는지 모르겠다.
세월앞에 약 있을까만 날 구석방으로 델고 가서
반 떡이 되도록 패도 좋으니 엄마가 옛날처럼 그렇게 기력을
찾으실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앙상한 뼈만 남아 자식들 말도 재데로 알아듣지못해
서러운 인생을 사는 내 엄마.
바로 언젠가의 내 자화상이 아닐런지...
미운 내 여동생.
그러나 내 딸도 저렇게 안변한다고 그 누가 장담하랴.....
흐르는 세월은 참으로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