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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만줬으면....


BY 나의복숭 2002-03-04

겨울같지 않든 겨울이 지나가고
벌써 따뜻해지는걸 보니 봄이 오는모양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희망의 계절이란 봄.
근데 봄이 올때마다 옛날처럼 가슴설레이고 기쁘지 않음은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은탓일까?
아니면 속세에 때가 많이 묻은 탓일까?

2년전의 그봄.
마당의 연산홍이 피빛 향내를 풍기면서 그 고운
자태를 들어낼때 저승사자같은 그 사람들이 왔었지.
젤 앞쪽에 곤색 양복을 입은 사람은
풍채도 넘름하니 들어와선 여기 저기 딱지를 마구 붙였었다.
주인의 몰락을 모르는 개는 죽어라 짓어대는데...

티비. 냉장고. 화장대. 오디오.....또..또..또...
아끼고 아낀 물건앞에 명찰표처럼 붙어있는 꼬리표.
확 다시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인제 저건 내게 아니란다.
부도나서 망한 집의 마지막 물건임을 표시해주는것
더도 덜도아닌 서러운 이름표일뿐이란다.
그래
누굴 원망하랴.
봄.
치욕스런 봄.
두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봄.
그해의 봄은 나에게 엄청 아픔을 주면서 찾아왔었다.

친구고 지인이고 모두 외면하고
오직 먹고 살기위해 찾아온 새로운 도시는 서러웠었다.
군데군데 검문소가 있었고 시퍼런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지.
눈치빠른 아들은 휴학계를 내고 군입대를 해버리고...
좁디좁은 집에서 덩그라니 남은 남편과 나는
망연자실하여 약속이나 한듯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한 순간에 바뀔수있을까?
그건 지금까지도 의문투성이지만 그럴수도 있단다.
imf 로 인해 우리처럼 수많은 집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 앉았고 남편의 친구는 자살까지 했다는데...

아침을 먹고나면 할일이 없었다.
뭔가 새로 시작한다는게 두려운 모험였고 그래서
도망치듯 매일 뒷산을 하루 몇번씩 오르락내렸다.
내 피빛으로 엉어리진 가슴속의 절규를 글로
표현할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나를 토해놓는것도
내키지 않았다.
실날같이 붙어있는 자존심때문이리라.

어느날
노란색 민들레가 피어있는 들길을 걸어가는데...
한번도 말은 안해봤지만 안면있는 여자가
파랗게 쑥이 자란 뚝길에 앉아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호기심보다는 쨘한 연민에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왜 그러세요?'
말없이 고개드는 ?角?눈속에서 나는 그녀의 절망을 보았다.
연산홍이 흐터러지게 피었든날 내가 지었든 그 절망을...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늙으신 어머니가 있는 나로선 당혹했고 얼른 위로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왜 이러고 있어요? 빨리 어머니 뵈러 가야지...'

그녀는........
조선족이란다.
불법 체류로 힘들게 한국에와서 공장에서 일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갈수가 없단다.
돈이 뭐냐며 서럽게 우는 그녀에게
손을 꼭 쥐어줄뿐....난 아무말도 해줄수 없었다.

그래.
그녀보다 난 얼마나 더 행복한가?
남편이 있고 보고 싶으면 언제나 달려가서 볼수 있는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늘 격려해주는 형제들.
따뜻한 지인들이 있는데....
힘이 났다.
쑥을 뜯어와서 쑥국을 끓였다.

그날부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니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오고 힘이 났다.
돈이 없어도 사는게 예전처럼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남편도 조금씩 안정이 되어갔고
집도 작은 서민아파트긴 하지만 이사를 했다.
작년의 봄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그 옛날 가슴 설레이게 맞았든 그 봄은 정녕 아니다.
연산홍도 아직 피지 않았고 민들레도 아직은 노란
색깔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인제 봄은 내 인생에 두번다시 절망을 가져오진 않는다는것을...
세상은 살아볼 가치도 있고
또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걸...
희망을 가지고 산다면 봄날처럼 따스한 행복이
언제나 내 곁에 머무리라는걸...

조선족 그녀는 지금쯤 어떻게 변해있을까?
나처럼 웃고 있을까?
봄이 오니 생각나는 그녀.
봄나들이가듯 불현듯 그녀를 만나러 가고 싶다.
어디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만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