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재형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길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있는 한 아주머니를 봤습니다.
겉모양을 보니 차는 새로 뺀 듯이 깨끗하고 지붕 위에서는 내리는 비로
연신 빗물이 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아마도 제가 보기에도 초보티가 역력합니다.
빼는건지 주차를 시키는건지도 확실하게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으니..
그 시간이면 주차장에 차도 그리 많지를 않으니 수월하게 주차를 할 수도
있겠는데 중형차인 때문인지 쉬워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고개를 쭈~욱 빼고는 앞에도 보고 뒤에도 보고...^^
시간이 바빠서 잠깐 재형이 손을 붙들며 본 터라 그 후로 잘 빼고 나갔는지
어쨌는 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일로 해서 제 초보때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누구나 할 것없이 초보시절 얘기하라하면 하루종일 걸려도 다
못할 재밌는 -그 당시에야 등골이 서늘했겠지만 - 얘기거리가 많겠지요.
89년도에 면허를 따고 운전을 시작한 것은 90년 1월이었으니 운전대에
손을 놓아본 지도 하마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즈음에 우리집에 처음으로
<포니2>중고승용차가 들어왔습니다.
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마침 그때 처음으로 음주운전 단속이 들어갈
시기였는데 한마디로 재수없게(?) 우리 친척 어른 한분이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되는 바람에 졸지에 떡방앗간을 하고 있던 우리 친정으로 건너
건너 그 차가 팔려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친정에 성인이라고 해봐야 부모님과 저..그리고 제 동생..
나머지는 다 학생이고 그나마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은 달랑 저 혼자였습니다.
그때 저는 직장생활을 할 때라서 아버지께서 연수 삼아 니가 몰고다니면서
자기도 가르쳐주면 면허를 따서 아버지가 몰고 일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졸지에 자가용이 생긴 저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사실 운전이라해도
가물가물한 기억속에서 엑셀이니 브레이크가 생각이 날 뿐 기어변속하는
방법도 다 까먹었을 때라 거금을 주고 다시 도로연수를 받았습니다.
90년 초만해도 제주에서 여자가..그것도 자가용을 몰고 직접 다니는 여자는
보기가 드문 편이라서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면 지나가는 다른 차나 버스
에서 휘익휘익하고 휘파람 부는 소리도 들리고 일부러 차창을 내려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는 그런 희귀한 풍경도 있었던 때입니다. ^^
스무살 중반의 나이에서 할일도 많고 다닐데도 많았던 저는 아주 차가 생기면서
신이 났습니다.
고물차라서 잘 가다가 도로 한중간에 그냥 서버려도 겁도 별로 나지를
않았고..외려 옆에 태운 친구가 더 안절부절 못하고는 무서워했을 정도니..
떡하니 뒤에다가 초보운전이라고 써 붙이고는 온 시내를 연수삼아 돌아
다녀보던 어느날..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윗 상사 한분이 부산으로 출장을 가시면서 저보고
그럽니다..
"요즘 미스김 운전 배운다고 열심이던데..포니픽업으로 연수하고 싶으면
내 키를 주고 갈께..기름값도 절약되고 좋잖아..주말과 휴일에 쓰고 월요일에
바로 타고 와서 주차장에 파킹만 시켜놓아요.."
좋다고 키를 받아들고는 제일 친한 친구랑 퇴근 후에 만나서 차를 한잔 마시고
얘기를 나누다 그 친구를 집까지 태워다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길도 잘 뚫려서 금방 가는 길이지만 그때만해도 버스로 한참을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친구였거든요.
조금은 불안해 하는 친구를 걱정말라고 옆에 태우고 드디어 출발...
혹시 <포니픽업>이라는 차를 아시나요?
요즘은 거의 보기가 힘든 차인데 화물을 싣게끔 되어있는 소형화물차입니다.
앞에는 승용차처럼 생겨서 운전석과 보조석이 있고..뒤에는 짐칸이 넓다랗게
있는 승용차크기만한 픽업트럭....
여자운전수도 드문 그 당시에 그것도 승용차도 아니고 화물차에 아가씨 둘이가
나란히 앉아서 ..뒤에는 떡하니 초보운전을 붙이고..ㅎㅎ
가는 길마다 다들 쳐다보는 눈길에 옆얼굴도 따금거리고..뒤통수도 따금거리고..
어찌어찌 그 친구가 사는 동네 어귀까지 갔는데 여기서 사단이 났습니다.
이차선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서 동네로 들어가는 차 한대 정도의
도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막상 좌회전을 하고 핸들을 돌렸는데 덜 돌아갔는지
그만 골목안으로 진입을 못하고 어귀에 세워놓은 커다란 바위-동네이름이
커다랗게 써져있는..-를 앞범퍼 모서리에 쿵하고 부?H쳤습니다.
이차선 도로라서 도로는 좁은데 도저히 그냥 핸들을 돌려서 들어갈 수는
없겠고..할 수 없이 후진을 해야하는데..아뿔사!
면허가 2종 면허라서 후진에 대한 것은 자세히 배우지를 않았단겁니다.
왼쪽으로 돌리면 차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가는 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으니
이차선 도로를 가로 막아서는 차를 빼지도 돌리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데 옆에서 친구는 아주 얼굴이 사색이고...
쩔쩔매면서 식은 땀이 나고 있을 때 조수석 쪽으로 버스 기사 한분이
창문을 내리고 한마디 해주십니다..
천천히 하라고...아가씨...천천히 헙서...급허문 되지도 안험니다...
별로 긴 시간이야 아니었겠지만 저에게는 정말 너무나 긴 시간이었는데
양쪽 도로를 거의 다 막아서는 다른 차들 오도가도 못하게 했는데 거짓말처럼
빵빵거리는 신경질적인 경적음 한번 안내고 다른 사람들이 기다려주었더군요.
저야 사태가 그 정도였는지 경황이 없으니 살피지도 못했는데...
웃으면서 기다려준 그때의 그 분들이 정말 얼마나 고맙던지..
겨우겨우 차를 뒤로 빼서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걸 포기하고 저 앞에가서
유턴하고 돌아와서 우회전으로 들어가려고 다시 이쪽 차도로 차를 와서
세우니 그 버스기사님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서는 '잘했수다,,아가씨.."
하면서 웃고는 신호를 받고 지나갔습니다.
신호를 받아서 저 앞에 우측에 가서 차를 대고는 한숨 돌리고 있자니 옆에
친구가 한마디 하더군요.
"어떻게 운전을 한다는 애가 후진이 안되냐?....차가 앞으로만 가냐..
뒤로도 가야지...ㅠ..ㅠ.."
힘들게 그 애 집앞에 친구를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오려니 아무래도 그
친구 마음이 안놓인다고 다시 조수석에 올라타서는 가자고 했습니다.
도저히 니 혼자 보낼 수 없겠다고...ㅎㅎ
결국은 인심 좀 쓰고 편하게 집으로 모셔다 주겠다고 했던 제 친구를 다시
옆자리에 태우고 그 길을 돌아나왔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집 앞에서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고...
그날 친구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돈은 돈대로 쓰고....에고 얼마나 미안스럽던지..
그 후로 공터에 차를 끌고가서 열심히 후진 연습을 했습니다.
핸들 돌리는 방향으로 차가 꺽인다는 그 기본적인 것도 알지 못하면서
차를 몰고 다녔다니...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황당한 지.
십여년 전의 일인데 지금의 도로 사정이나 운전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막히는 도로....여성 운전자에 대한 무시...조급함....
요즘같은 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마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지 않았을런지.
자주 느끼게 되는 일이지만 그때처럼 도로 위에서의 여유로운 마음들이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베풀어서 좋고...그 여유 받아서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