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김대성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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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 lowsaejae@dreamwiz.com
▲ 조선일보 3월 27일자 1면.
예기치 못했던 노무현 태풍을 망연자실 관망하던 <조선일보>가 이인제 고문의 음모론, 색깔론 제기를 계기로 서서히 '본색(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계개편 이미 시작"
2002년 3월 27일자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톱기사의 제목이다. "한나라 의원 영입 접촉 사실 밝혀" "야 '거대한 음모 실체 드러나' 비난" 등의 부제를 단 이 기사는 다른 신문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화끈한(?) 편집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파격적인 편집에 비해 실제로 기사 내용을 보면 그리 큰 알맹이는 없는 편이다. "통화가 시작됐다"는 한 대목이 유일한 근거인데, 그것도 당사자들은 정계개편에 대한 상징적 표현에 불과한 것인데 침소봉대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조선일보>의 눈물겨운 여론조성은 3월 29일에도 이어졌다. 우선 「누구를 위한 정계개편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배치한 것이 눈길을 끈다. 아울러 이인제 고문의 입을 빌려 4면과 5면에 '노무현·이인제 '음모론·색깔론' 공방 확산' 등의 기사를 배치해 노무현 고문의 과격성과 급진성을 부각시키기에 급급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제목들이 시선을 확 끌었다.
이 "노, 토지도 매수 분배하자 했었다"
이 "노, 노동자 주인되는 세상 선동"
이 "당 강령은 중도…노는 급진좌"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러한 행보는 이제 시동을 건 것에 불과할 뿐, 앞으로는 더욱 체계적이고 노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게 기자의 판단이다. 사실 과거 대선 국면마다 <조선일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고, 그 책략과 비법은 이제 어느 정도 파악된 상태다.
앞으로 전개될 <조선일보>의 행보를 예측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대선 국면에서 그들이 보여줬던 보도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 조선일보 1997년 11월 1일자 1면.
DJ, 집권하면 양심수 석방
1997년 1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톱기사의 제목이다. 그것은 당시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 대한 <조선일보>의 일주일에 걸친 색깔론 논쟁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김 총재가 어떤 발언을 했기에 <조선일보>가 일주일 동안이나 색깔론 미사일을 동원해 가차없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 전날인 10월 30일 밤 광주 TV토론에서 했던 김 총재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우리가 집권하면 조국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이들 중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면하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독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양심수 석방에 대한 원론적 입장을 밝힌 이 발언을 들으면서 사상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다시 한번 읽어 보라.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라.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사람들' 중에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사면하겠다는 것이 친공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조선일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것 다 봐주다 보면 '색깔론' 장사는 영원히 할 수 없지 않겠는가.
<조선일보>는 바로 다음날인 11월 2일자 1면 중앙에 다시 '양심수 사면 파문 확산'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색깔론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물론 이 기사는 전날 <조선일보>의 대대적인 보도를 보고 흥분한 우익단체와 신한국당 등의 반응을 엮어서 만든 것이다. 자신들이 파문을 만들어서 확산시켜 놓고 짐짓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파문 확산'이라고 보도한 셈이니, 북 치고 장구치는 솜씨가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여론조성을 통해 겨냥했던 <조선일보>의 본심은 11월 2일과 3일자 '팔면봉'(八面鋒)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거니와,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린 것이다.
"DJ 양심수 석방 발언. 또 색깔론 자초. 그 색깔 말곤 없소?"(11월 2일자)
"DJ 양심수 사면 비판에 곤혹. 양심(兩心)을 먹지 말아야지."(11월 3일자)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는 발언에, 그래서 어느 언론도 문제삼지 않은 발언을 자신들만 나서서 의도적으로 빨간색을 덕지덕지 칠해놓고, 이제 와서 "김대중씨, 당신은 그 색깔 말곤 없소?"라고 묻고 있는 셈이 아닌가. 과연 세상 그 누가 이렇게 완벽하게 능청을 떨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실력이다.
<조선일보>는 양심수 사면 발언과 관련 사설도 두 번씩이나 썼다. 11월 2일자 'DJ 양심수론'과 11월 6일자 '양심수 재론'이 바로 그것인데, <조선일보>는 이 사설을 통해 "양심수 논쟁을 끝까지 벌이자"고 '선동'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의 격앙된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그 말대로라면 문민 이후에 와서도 우리 사직당국과 사법부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 조국을 사랑했던 사람들까지 무차별 감옥에 넣은 사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민정부는 그날로 간판을 내려야 할 판이다. 검찰은 양심수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11월 2일자 사설 「DJ 양심수론」)
'의도적 오독'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 버리겠다고 작심하는 데야 누가 당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요지는 "군사정부도 아니고 문민정부 아래서 어떻게 양심수가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인데, 4년 후인 2001년 그 신문사 사주가 엄청난 탈세를 하고도 양심수 흉내를 낸 것을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은 웃음을 참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조선일보>는 11월 6일자 사설 '양심수 재론'에선 아예 "언필칭 양심수라며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은 적군과 내통한 자를 방관하라는 말이나 진배없다"고 규정한 뒤 "양심수 논란에 전 국민이 참여해서 끝까지 논쟁할 것을 제언한다"고 선동했다.
그런데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연상케 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조선일보>가 당시 여당 정치인의 비슷한 발언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삼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조선일보>에 김대중 총재 양심수 논쟁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간 다음날인 11월 2일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도 평화방송과의 대담에서 "진정한 의미의 양심수라면 정치인 사면과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김대중 총재의 발언과 큰 차이가 없었건만 사상검증의 감별사를 자처하고 있던 <조선일보>는 어쩐 일인지 그에게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블랙 코미디 같은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며칠 전인 3월 25일자 <조선일보> 사설 '음모론, 무엇이 진실인가'도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사설 중에서 문제가 된 부문은 이인제 후보측이 제기한 '김심'과 관련해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우선 '김심' 개입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김 대통령이 '정치초연'의 약속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와대는 '근거 없는 말'이란 소극적 해명에서 나아가 '왜 근거가 없는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 사설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풍자적 반론을 올렸는데, <하니리포터> 지용민 기자가 소개한 사례 중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풍자1>
조용히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이놈! 너 도둑질했지?"라며 생사람을 잡았다. 나는 아니라고 울며불며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놈! 도둑질을 하지 않았으면 니가 입증을 해야 할 것 아닌가"라며 막무가내였다. 경찰은 이제 아무나 잡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조선일보 사설의 논리대로라면 말이다.
<풍자2>
시중에는 <조선일보>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은 정론언도를 걷겠다던 사시를 정면으로 뒤엎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일보>측은 '근거 없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치고)에서 나아가 "왜 틀린 소문인지"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론지를 자처하는 언론사에서 나온 글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허점이 많은 사례는 또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조선일보> 3월 19일자 홍사중 칼럼 '동식서숙(東食西宿)의 나비들'인데, 이 칼럼에서도 2002 대선을 바라보는 <조선일보>의 본심, 즉 '조심(朝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한나라당 내분을 안타까워하며 이회창 총재에 맞서는 탈당파와 비주류를 공격한 바 있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단맛을 따라 날아다니는 제비처럼 오늘 이 당에 붙었다 내일 저 당에 기어들어가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새 당을 꾸미겠다는 우리나라 정치꾼들…아무리 옹졸한 리더십에 비위가 뒤틀린다 해도 지금 당을 깽판 내면 틀림없이 지난 번 대선 짝이 되리라는 것을 모를 그들도 아닐 것이다."
아무리 이회창 총재의 리더십이 옹졸해도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비주류는 무조건 참으라는 얘기가 아닌가. 이게 과연 언론인이 정치인들에게 해줄 말인지 의아해진다. 홍사중 씨가 필봉을 휘두르며 특정세력 편들기와 이중잣대를 적용한 사례는 12년 전에도 있었다.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칼럼을 보기 전에 우선 그 글이 나온 배경부터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당선의 '일등공신'이자 김대중 '저격수'였다. 그런데 1997년 그 김대중이 다시 살아나 여론조사에서 국민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또 다시 '김대중 죽이기'에 나섰는데, 국민회의-자민련의 DJP연합에 대한 집중공격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일보> 지면을 장식한 사설(2개), 용어, 만평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설: 'DJP 계약의 속과 겉', 'DJP연합의 문제점'
용어: 술수, 야합, 오월동주, 권력나눠먹기
만평: 불신 속에 진행되는 계약관계
물론 DJP연합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색깔이 다른 그룹과의 악수도 불사"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조선일보>의 비판은 기본적으로 정당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은 성격의 정치적 행위인 1990년 3당합당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확인 결과 전혀 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설(2개), 용어, 만평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설: '통합 신당론이 명심할 일', '정계대개편에 대한 당부'
용어: 포석, 선택, 대응, 비상대책
만평: 낡은 집을 부수고 새로운 집을 건축
<조선일보>가 비슷한 성격의 정치행위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알 수 있거니와, 1997년 DJP연합과 1990년 3당합당에 대한 두 개의 사설을 각각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정권창출을 보증하기 위한 김대중 씨의 '인심 좋은 투자'와 김종필 씨의 '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결합…'상대적 진보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돼 온 DJ 야당과 '유신 본류'임을 자처한 구 여당의 야합…단지 집권이라는 목표 아래 연합을 꾀하고 있는 오월동주의 전형…선거도 하기 전에 장관직부터 나누어 먹자고 계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격과 모양새가 너무 술수적이다."
부정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인 용어가 총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주관적 차원에서는 1노2김의 자구적 선택이자 노 대통령 임기만료 후를 내다본 차기 정권에의 포석이다.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이번 선택은 그러한 전망을 의식한 하나의 비상대책의 성격을 갖는다. 객관적인 차원에서는 정계의 파편화에 대한 보수적 중산층과 경제계의 위기의식과 불만을 의식한 나름의 대응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중립적이고 때로는 호의적인 용어가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 조선일보 1990년 1월 24일자 <홍사중칼럼>.
홍사중 씨의 눈부신 활약은 바로 이때 발휘됐다. 그는 3당합당에 대한 전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며 거대여당이 코너에 몰리자 <조선일보> 1990년 1월 24일자에 칼럼 '누가 제일 득 봤나'를 발표하고 이런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3당합당의) 결과만 따지면 된다. 동기는 하나님이나 따질 문제다. 우리는 보수대합동으로 국민이 얼마나 득을 볼 수 있겠는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역사에 있어서는 어느 일이나 그것이 일어날 만한 까닭이 반드시 있다. 아무리 보수합동이 불합리하고 엉뚱하게 보여도 거기에는 보수 3당이 합칠 수밖에 없게 만든 여건들이 있었다…정치판이란 원래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깨끗한 게 아니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정계개편을 말하면 거기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강변하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정계개편을 말하면 음모이고 술수라는 주장. 이런 강변과 주장을 늘어놓는 신문을 과연 진정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 동안 그런 신문을 언론이라 인정하고 대선을 치러왔다.
2002년 대선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이 뒤틀린 이중잣대부터 국민의 힘으로 꺾어버려야 할 것이다. 뒤틀린 잣대로는 민심의 척도를 올바르게 잴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의 희망을 말하기엔 아직도 극복해야 할 장벽이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