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기다리다가.. 올해 딸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무척이나 작고 잘 먹지도 않던 아이, 또래보다 생일도 늦고 발달도 늦어서 항상 맘 한쪽이 아린 아이였는데 ...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읍내에 있는 학교다. 2년 전 느닷없이 시작 하게 된 시골생활에 기꺼이 동참하며 시골학교에도 잘 적응하면서, 어느새 시골 아이가 다 되어버린 딸이다. 중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돼지 않아 학교에서 환경미화가 있었나보다. 평소보다 늦은 귀가로 벌써 날이 저물어 버렸다. 학교 근처 친구 집에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는 딸애는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와 달라는 것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지만 인적도 없고 가로등도 없는 곳이라서 딸애 혼자 올라오라 하기가 조금은 수상스런 그런 길이었다. 밤길을, 아이를 기다리기 위해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집에서 키우는 진도개인 단비와 진별이가 따라나선다. 큰 길까지 개들이 따라 나온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에 한밤중에 개들을 혼내고 올려 보내고 나서 버스정류장에서 딸아이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무척이나 귀찮고 따분한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지 않는 딸애가 이제나 저제나 오려나 기다리면서 헤드라이트가 비칠 때 마다 고개를 돌려보지만 딸애를 태운 차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조금 늦게 나선게지...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나는 방학 때면 외갓집을 찾곤 했는데 외할머니는 항상 내가 언제 도착을 하던지 간에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었다. 어릴 때야 서울서 내려갈 때 몇 시 차 로 내려간다 라고 연락을 주고 내려가곤 했었지만. 나이가 들고 대학을 다닐 때 거나 직장을 다닐 때는 따로 시간을 알리지 않고 내려가곤 했었는데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꼭 동구 밖이나 아파트 단지 앞에 작은 의자를 갖다 놓으시고 오두마니 앉으셔서 나를 기다려 주셨던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할머니의 그 하얀 기다림은 모성부재의 내 마음속에 남아서, 언제까지 나를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었었다. 딸을 기다리다가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게 된 할머니의 모습, 내 모습이 할머니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셨던 게지, 딸애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이런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 낼까, 그리고 못 견디게 이 곳이 그리울 때가 있을까.... 차에서 내리는 유난히도 작은 딸애의 작은 손을 꼬옥 잡고 집으로 올라오면서 어느새 마음 하나 행복이 밀려온다. 재잘재잘 딸애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기다림도 행복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단비와 진별이는 겅중겅중, 산골의 밤이 깊어갔다. 이수정.(스타리) 월간 "좋은 친구" 에 올려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