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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선거권도 드릴까요?


BY wwfma 2002-05-20

난 사실 정치라면 거의 냉소적 입장에 가깝다.
내 이름에 여자이름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정치 政자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 젊은 시절 정치에 관심 있는 인사가 주위에 너무 많았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난 정치 얘기에 침 튀기는 놈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날이면 날마다 정치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세울 팔자가 되어버렸다.
아무 사회단체라도 가입해서 고인 물처럼 사회와 유리되어버린
아줌마의 일상에서 탈피하고자 민주언론연합이라는 단체의 신문 모티터 팀에 합류하고부터
그런 기미의 시작이 보이더니 급기야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문의 선거보도감시팀이 발족된 것이다.

매일매일 신문도 안보거니와 1면서부터 줄줄이 정치관련 기사가
무슨 선데이 서울 주간지보다 더 흉측하게 비하인드 스토리와 추측기사로 칠갑을 하다가
나중에 '아니라더라...'하는 농간에 넘어가기도 귀찮아서 외면해버렸던 신문이 아니던가.

그 옛날 사이비든 아니든 모래시계 세대의 첫머리에 서 있던 우리 세대의 남정네들은
틈만 나면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도라무통 고기구이 테이블을 하나씩 끼고 앉아
혀가 꼬부라지도록 이 민족의 앞날과 나아갈 바를 걱정하곤 했다.
나중엔 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을 마시기 위해 씹을 안주감을 찾아대는 건지가 헷갈리도록
역사와 혁명과 민중에 관해 날이 새도록 젊은 혈기를 사르곤 했었다.

"짜식들... 니들이나 건실하게 살어!"
침을 탁 뱉어주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웬지 멋있어 보일 때도 있었다.
나도 어쨌건 모래시계 세대니까...

그런 세월이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변했을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난 사실 점점 더 정치와는 무관한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여자의 참정권을 이루어내기 위해 그렇게도 애쓰셨던 선열이 있었건만
그런 분들이 보면 땅에서도 분루를 삼킬 짓을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다.

"아우, 걘 너무 못 생겼어."
"그 마누라 촌스러운 거 봤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정치인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심심하면 가끔 선거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대부분 남편의 정치적 선호도에 휩쓸리면서 말이다.

그랬던 이 아줌마가 선거 판에 끼어 어떤 건 공정보도가 아니고 어떤 건 의도성 음해이고
또 어떤 건 언론의 권력 남용이라는 걸 지적하려다 보니
일천한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이 여간 걸림돌이 되는 게 아니다.
둘러보니 우리 남자들은 어찌 그리 치열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던지 내가 다 황송스러울 따름이다.
참 이럴 수가... 내가 같은 시대를 멀쩡히 살고 있는 인간이기나 한건지...

날마다 들여다보는 신문의 행간을 읽기도 어렵거니와
보다 객관적인 우리 시대의 보편적 역사 인식을 파악하는데도 횃불 없이 동굴 들어가 더듬는 격이다.
괜스레 짜증이 솟는다.
'이거 남자 놀음에 내가 끼어 피박 쓰는 거 아니여?' 하는 의심도 든다.

아니, 아니지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리 없는 열사들이 있기에
이 대한민국이 조금씩 나아가는 걸 테지... 겨우 마음을 돌이킨다.
어쨌든 역사라는 수레바퀴는 조금씩 조금씩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이 참에 외쳐본다.

“대한민국 남자들아, 그렇게 대통령과 정치판이 중요한 건 아니란다.
그 때문에 나라가 오락가락 하는 것도 아니란다.
좋아보이던 사람도 다 권좌에 앉으니 그 한계가 있지 않더냐?
무슨 메시아가 나라 구하듯 누가 되기만 하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란다.
세상은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하나하나가 바꾸는 거다.
작은 일상에서부터 기본에 충실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며
약자 위에 군림하지 말고 서로 도와 하나가 되는 사회를 내가 만드는 만큼,
딱 고만큼씩만 세상은 변하는 거다.

그러니 쓸데없이 편 갈라 아웅다웅하느라 몰켜다니지 말고,
나라 구해보겠다고 핏대올리며 처자식 등시렵게 하지 말며,
내가 선 자리.. 내가 어울리는 사람.. 내가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그 한사람에게 만이라도
아름다운 세상을 선사하도록 해보라.
괜스레 이권 개입해서 한 탕할 생각 말고, 인생사 파도타기처럼 시운만 타려하지 말고,
나라 걱정하느라 밤새 술 마시며 마누라 세상 살기 싫게 하지 말고
스스로 건강하게 아름답게 불편부당하게 살아내거라.

정치.. 그게 세상 바꾸는 거 아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하나하나가 바뀔 때 저절로 바뀌는 게 역사란 말이다.
알겄냐? 이 정치 좋아하는 한국 아저씨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