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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일기 6/14


BY 강물처럼 2002-06-15

잠속에 빠지신지 벌써 몇시간째.

강력한 진통제 주사는 온몸의 근육마져
다 마비시켜 버리는 것일까.

어쩌다 한마디 하시는 말도 어느땐
알아 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 끝나 버린다.

월드컵 축구를 한다고 병원안이 온통 떠들썩
한데도 아버진 깊은 잠에 빠져서 헤어날 줄
모르신다.

간간이 화장실에 가시겠다고 휘청거리며 일어나
간신히 걸음을 옮기실 때, 난 아직도 든든하게
느껴지는 뒷모습을 몰래 훔쳐보며 내곁에
살아 계심에 감사해 본다.

옆자리의 환자는 30살의 남자.
편도선 수술을 했다며 아이스크림을 달고 산다.
환자를 간호하는 아주머니 처음엔 그 남자의
엄마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장모란다.

나 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는 그녀.
딸이 둘인데 모두 다 출가를 시켰고
직장에 다니는 딸 대신에 사위를 간병하러 왔단다.

편안해 보이는 모습 만큼이나 인정도 넘치는 그녀.
식사시간에 사위와 겸상하며 밥을 먹으려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가 안되어 보였던지
자꾸 무얼 먹으란다.

처음엔 함께 밥을 먹자고 해서 사양을 했더니
컵라면을 주겠단다.
그도 마다고 고개를 저으니 이번엔 방울 토마토를
한접시 주고 돌아선다.

오전부터 수술한 자리가 아프다며
신음하던 앞자리의 환자.
그래도 입맛은 괜찮은지 밥 한그릇을 다 비운다.
보호자가 없길래 식판을 내다 주겠다고 했더니
웃으며 싫단다.
자기도 운동해야 한다면서.
빼앗다시피해서 겨우 식판을 건네 받아
내다 놓았다.

암인지는 뭘라도 한쪽 폐를 들어내는 대수술을
했단다.
폐가 있던 자리가 너무 허전하다며 자꾸 수술한
곳을 만지는 그 남자.
이제 50살이란다.

그래도 옆침대의 어린 학생과 벌써 친숙해 졌는지
친구처럼 장난도 치면서 아픔을 잊으려 필사의
노력을 한다.

팔 한쪽에 깁스를 한 13살의 어린 학생.
오늘 저녁엔 엄마가 초밥을 사온다고 했다며
눈동자에 생기가 초롱해 진다.
명랑하고 장난끼 가득한 듯하면서도 절대로
예의범절의 수위를 지키는 그 깍듯함을 보며
참 잘 키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창가 쪽에 누운 70대 후반의 환자.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듯한 얼굴이었는데
옛날 옛적에 구중궁궐의 내시였단다.

물려 받은 토지가 있었던지 재산이 수십억이라는데
찾아오는이 하나 없어 너무도 쓸쓸해 보인다.
옆으로 누워 쪼그리고 자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쓰러워서 얼굴이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다.
세월이 할퀴고 간 주름과 검버섯 가득한 얼굴에
남성으로써 누리지 못했을 그 무엇까지 한이 되어
서리서리 얽혀 있음을 본다.

토마토를 먹은 그릇을 돌려 주려고 보니
30대의 환자는 의자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고
장모님은 사위가 있던 침대에 누워 있다.
누가 환자고 누가 보호잔지..
웃음이 난다.
그런데 갑자기 장모가 다리에 쥐가 났다며 황급히 사위를
부른다.
아이스크림을 퍼 먹던 숫가락을 내동댕이친 사위
한걸음에 달려가 다리를 주무른다.
참 보기 좋다.
나도 나중에 저런 사위 얻어야지........


TV에선 벌써 축구가 한창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들 함성과 탄식을 지르며
환호하고 열광한다.
창밖을 보니 환히 불켜진 저편 건물에서도
의사와 간호사가 한데 어울려 TV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와~~~~
골인이다.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아버지가 눈을 뜨신다.

"한골 넣었구나.."
힘겹게 한마디 하시곤 그대로 눈을 감아 버리신다.

그토록 좋아하시던 운동 경기도 편히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침대속에 손을 넣어 본다.
축축하다.
기저귀를 갈아야 겠다.

이불을 덮어 드리고 지저귀를 채운다.
무장해제된 패잔병처럼 아버진 순순히
나의 손길을 받아 들이신다.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리신 듯한 얼굴.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온다.

축구가 끝났다.
대~~~한 민 국~~~~
이방 저방에서 함성이 터진다.
환자를 위해서인지 TV가 꺼진다.
적막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고맙게도 아는 분이 교대를 해 주시겠다고
오셨다.
이런저런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병실문을
나선다.

칠흙 같은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안겨온다.
무섭다...
외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큰길로 나서니 거리는 온통 축제의 한마당이다.

경적소리,함성소리.
붉은 옷을 입은 한떼의 무리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코리아를 외친다.

이렇게 또 하루가 흐른다.